숙명이란 단어 그리고 에스메랄다

by 무량화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찾은 공연장이다.

서귀포 예술의 전당 대극장에서 뮤지컬 공연 영상을 상영한다기에 보러 갔다.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접하게 된 '노트르담 드 파리'다.

덕택에 시원스런 공연 무대를 통해 문화적 갈증을 약간이나마 해갈시켰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뮤지컬은 레 미제라블과 쌍벽을 이루며 한국에서도 대단한 흥행몰이를 해왔다고.

노트르담 사원의 구석진 벽에 새겨진 '숙명'이란 단어에서 영감을 받아 비롯되었다는 소설이다.

숙명적인 너무도 숙명적인, 종지기 콰지모도나 프롤로 부주교나 에스메랄다란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낸 그마저 소설을 위한 설정이라지만.

원작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 시대 배경은 르네상스 직전의 중세다.

빛의 시대가 도래하기 직전 가장 어두운 시기였던 중세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사원이 무대다.

‘대성당의 시대’에서 새 천년(2000년)이 오면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란 가사가 나오는데 뉴밀레니엄은 그러나 조용히 지나갔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후에 정말이지 한 번도 경험 못한 암흑세계가 도래했으니, 일상을 무너뜨린 대재앙 역병이 덮쳤던 것.

꼬박 삼 년 동안이나 세상을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놓고는 진을 빼고서도 뭐가 미진한 지 계속 변이를 몰고 와 지구촌을 위협했다.

따라서 다중이 모이는 장소는 무조건 기피하게 됐고 대중교통이나 식당 이용도 부득이한 경우 아니면 일단 꺼려졌다.

철저한 방역수칙에 따른 거리 두기로 한 칸씩 자리를 비우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썩 내키지 않는 밀폐된 공간인 극장이다.

하지만 이번은 프로그램 제목을 보고 단번에 혹했다.

예술의 전당 대극장은 밝고 넓어 분위기 아주 쾌적했다.

막간을 이용한 하바나 음악 공연을 감상하며 일곱 시 시작 시간을 기다렸다.

조명이 한꺼번에 스러지자마자 길거리 시인인 그랭구아르의 노래가 폭발하듯 도발적으로 울려 퍼졌다.

영상촬영을 삼가 달라는 주문대로 뮤지컬 무대 사진은 한 컷도 담지 못하고 대신 노래 녹음만 초반에 잠깐 해뒀다.

프랑스 공연인데 노래와 연기는 물론 극적 요소가 조화 이룬 뮤지컬이 두 시간여에 걸쳐 굉장히 다이내믹하게 펼쳐졌다.


특히 부주교를 유혹한 적 없는 그녀라 아무 죄도 없건만 집시라는 이유로 죄인으로 몰리는, 불꽃같이 붉은 에스메랄다의 드레스 자락이 왠지 슬퍼서 인상 깊었는데.(무색의 드레스임에도 붉디붉게 느껴진)


숙명이란 단어는 길거리 여인으로 태어난 그녀에게도, 그런 그녀를 뜨거이 사랑하게 된 성직자에게도 당연히 해당되는가 싶지만 대성당의 종지기로 살아가는 몰골 험한 콰지모도의 삶이야말로 어찌할 수 없는 숙명 아니랴.


노력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운명과 달리 숙명은 어떠한 의지나 노력으로도 바꿀 수 없는 고정불변의 것이다.


태어날 때 결정되는 가정환경, 성별, 신체적 특성 따위 피할 수 없는 요소에 의해 족쇄처럼 채워지는 숙명이라는 가혹한 형벌.


신화 속 오이디푸스의 숙명처럼.


그래서 동양에서는 전생의 업보라 여기기도 한다.


왜 그는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아지 못할 전전생의 인연이기에 불가에서 설하는 인연법, 인과법, 연기법에 대입시켜 봄 직도 하다.


암튼 두어 시간짜리 영상임에도 무대에 빨려들어가 환몽이듯 삽시에 흘러간 시간.


비록 뮤지컬 영상이긴 하지만, 신체적인 다양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역동적인 무용수와 곡예 같은 아크로바틱 체조가 함께 어우러져 시종일관 무대는 힘이 넘쳤다.


외국어가 전혀 안 들려도 대충 전후맥락 꿰고 있는 스토리라 뮤지컬 속으로 깊이 매몰돼 갔다.


배우들의 무대인사가 끝나고도 한참 머뭇댈 만큼 흠뻑 빠졌던 뮤지컬의 파장 그 여진에 휩싸인 채라 귀갓길 초겨울비도 맞을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