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지에는 한라산이 둘

소확행, 꿈 하나 이루다

by 무량화


생각잖은 행운이 찾아왔다.

챗지피티가 11월에 뜻밖의 귀인을 만날 것이라 한 운세 적중인가.

가벼이 넘긴, 믿거나 말거나 식 운세라 장난 삼아 읽고는 헤설피 여겼는데 진짜 귀인과 조우하다니.

올레길 6코스 중간쯤 되는 위치에 있는 구두미포구에 들렀다.

바로 코 앞에 섶섬이 앉아있는 포구인데 물이 쭉 빠진 상태였다.

바다는 더없이 잔잔했으나 그래도 윤슬 길게 반짝거렸다.

음력으로 초이틀, 사리 때라 간조시 수위가 가장 낮은 편이라 갯바위가 많이 드러나 있었다.

해질녘 소천지로 내려갔다.

그간 외돌개에서만 노을을 즐겼던 터, 서귀포를 따스히 감싸며 스며드는 일몰 풍경을 소천지에서 느껴보고자 해서였다.

노을 어리인 한라산이 또렷했다.

숨겨진 비밀 장소였던 소천지는 한라산이 얼비친 비경으로 소문난 포토 명소.

여태 소천지를 몇 번이나 들렸어도 한라산 반영을 접하지 못했다.

날씨 좋은 날이라야 한라산이 소천지에 투영된다는데 도무지 어느 위치에서 만날 수 있담?

소천지를 둘러싼 바위 성벽은 공룡능선처럼 날카롭다.

물때에 따라 소천지 접근이 어려울 경우도 허다하다.

한 번은 소천지가 거친 파도에 거의 다 잠긴 적도 있었다.

어째 이번은 가능할 거 같았다.

소천지 둘러싼 기암괴석 들쑥날쑥이라 바짝 물가로 다가서려면 약간 움칫거려진다.

용암 굳어 거뭇한 현무암 치솟아 있는가 하면 허옇고 예리한 암석 길은 마치 공룡 등과 닮았다.

조붓한 공룡 등을 타고 반대쪽 끝까지 가려면 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데 무르팍이 흔들거린다.

아서라, 괜히 만용 부리다가 얼결에 스노클링 하게 될라.

앞에서만 얼쩡거리며 한라산과 노을 배경으로 한 바위 무더기들 거푸거푸 사진에 담았다.



그때까지는 몰랐다.

젊은이 둘이 건너가 있는 검은 바위까지 능히 건너갈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이 한참만에 이쪽으로 건너왔다.

거기선 한라산 반영을 찍을 수 있던가요?

청년이 제 폰의 사진을 보여줬다.

어머 어머 어머!

사진을 보자마자 적확하게 동기부여가 됐다.

머뭇거리던 발바닥에 힘이 가해지며 없던 용기도 빵빵하게 차올랐다.

만일의 경우, 주변에 대여섯 사람 서성대고 있으니 안심도 됐다.

카메라가 든 가방은 바윗전에 놔두고 폰만 주머니에 넣은 다음 지퍼를 올렸다.

심장이 쿵쾅댔다.

흥분기 지그시 누르고 심호흡을 하고는 도전!

바위와 바위 사이 물길을 내 수준으로는 건너뛰지 못할 줄 알았는데 지금은 간조 때 아닌가.

그렇다면 충분하다.

조심조심 소천지 가장자리 바위에서 건널 바위 편 잘 견줘보고는 폴짝 뛰었다.

가벼이 착지, 안착!

내 마음의 떨림에 충실, 그것이 별일 아니라도 의미를 갖고 다가가는 순간의 충일감이 행복 아니랴.

청년이 알려준 포인트에 낮게 앉아 등을 뒤로 젖히자 오 마이갓, 소천지에 그대로 잠긴 한라산이 보였다.

백두산 천지를 닮았대서 소천지인, 투명이 맑은 조그마한 호수.

청정수에서만 산다는 어류들이 살랑거리며 노니는 대로 새파란 소천지 물살이 곱게 파동 친다.

동시에 한라산 백록담 언저리로 자디잔 실금이 가로로 무수히 일렁거린다.

미묘해서 가일층 신비로운 그 정경에 취해 한참을 바위에 기대앉아 있었다.

주변이 점차 기명색으로 짙어지자 어둠살 내리기 전 소천지를 뒤로하고 귀갓길에 올랐다.

문섬 범섬 새섬이 정겨이 노을 진 서귀포 앞바다에 떠있었다.

땡큐, 갓! 절로 콧노래 흥얼거려졌다.



제주 서귀포시 칠십리로 485번길, 제주대 연수원 앞 차도에서 접근성도 좋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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