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랑쉬오름의 여왕급 전망

by 무량화


제주 오름의 왕은 거문오름이니 노꼬메오름이니 왕이메오름이니 금악이라는 둥 의견이 분분하다.

왕의 자리는 이렇듯 여럿이 나눠 가졌는데 여왕은 단 하나다.

오름의 기본형이라는 단정한 다랑쉬오름은 오름의 여왕으로 일컫어진다.

동부 일대의 오름 중 가장 높고 큰 오름으로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했다.

산봉우리의 분화구가 마치 달처럼 둥글게 보인다 하여 다랑쉬(도랑쉬, 달랑쉬) 또는 월랑봉이라 불렸다.

꼭대기 분화구는 깊숙하고 둥글게 파여있으며 둥근 굼부리에서 보름달이 솟아오르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다랑쉬오름은 해발 382m, 전체 둘레가 3,391m로 외형부터 비교적 크고 듬직스러운 덩치다.

따라서 사면은 돌아가며 어느 쪽으로나 비탈진 급경사를 이뤘다.

가파른 오르막 길에는 삼나무, 편백, 해송이 밀밀하게 식재되어 있으며 나무계단에 지칠만 하면 적절하게 닦인 흙길이 기다려 준다.

초입부터 경사로인 계단을 차근차근 밟다 보면 금세 숨이 찬다.

호흡 조절하며 수행하듯 묵묵히 걷고 또 걷는다.

그러다 마침 서울에서 한달살이 왔다는 부부와 제주를 화제로 이야기 나누며 걸으니 어느새 산정이다.

굼부리가 보이는 산정은 아니고 동과 서, 양쪽으로 나있는 길 중 한 쪽 택해 돌아 오르다 보면 산의 정상부.

잠시 동행한 오십 대 후반인 서울 부부는 그야말로 원앙지계 (鴛鴦之契), 서로 척척 호흡이 잘 맞는 보기 좋은 커플이었다.

여행을 즐기는 취미가 같으며 산행길에도 항시 동반자됨은 물론 무슨 일을 할 때나 뜻을 함께하는 바람직스러운 최상의 짝을 만난 그들 부부야말로 행복은 당연한 거고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 이리라.

부군은 말수가 적은 편이나 아내는 이쁘게 잘 웃고 매우 상냥스러웠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우리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는데 그 통에 사진 찍는 것도 잊어버렸다.

전망 끝내주는 정상부를 돌다 보니 사방 어디나 곳곳이 사진에 담을 명소 천지다.

그때부터 폰이 바빠졌다.



섬의 중앙 왕좌에 좌정한 한라산 그 아래 어리인 운무.

주변에는 봉긋봉긋 솟은 뭇 오름들 마치 한라산의 자제들 같다.

월랑봉(月浪峰)에서 내려다보면 북동쪽으로 연달아 푸른 해안선이 드러나는데 그중 월정리라는 마을도 있다.

'달'(月)과 '물결'(浪)도 아취 한껏 돋우는데 '달이 비치는 물가'라는 월정 뜻은 또 얼마나 운치로운가.

동남쪽에는 성산 일출봉 물 위에 수석처럼 앉아있으며 길게 누워있는 우도도 보인다.

섭지코지 가물가물 잡히고 제법 너른 평원 지나 제주 와서 맨첨 오른 지미봉, 수산봉도 또렷하게 잡힌다.

발치 저 아래로 아끈다랑쉬오름이 머리에 서리 내린 듯 하얀 억새 덮어쓴 채 조신하게 부복하고 있다.

‘아끈’이란 버금가는 혹은 둘째라는 뜻의 제주 방언이란다.

굼부리 둘레를 빙 돌다보면 가장 상층부에 '망곡(望哭)의 자리'라는 기념단이 있으며 안내판도 서있다.

1720년 숙종임금이 승하하자 성산 사람 홍달한이 북녘 바라보며 삭망때마다 애곡하던 자리라 한다.

그는 뒤에 충효의 이름으로 정려(국가에서 미풍양속을 장려하기 위하여 동네에 붉은 칠을 한 정문(旌門)을 세움)되었다고.

망곡의 자리라서 더더욱 그러한지 마른 풀 흔드는 바람이 영 서늘하다.

오후 제법 기운 시각, 분화구 안에 모인 햇살은 아직 따스하게 느껴졌다.

억새 사이로 보이는, 깊숙하게 드러나있는 원형 분화구가 매우 독특하다.

보름달처럼 둥글면서도 이만큼 움푹 파인 굼부리는 처음 본다.

이 화구의 바깥 둘레는 약 1,500m에 가깝고 화구의 깊이는 백록담 깊이와 같은 115m라 한다.

둘레는 백록담보다 영 작게 보이나 깊이는 오히려 백록담보다 훨씬 깊은 거 같은데 똑같다고라?

바닥은 잡풀 무성하고 둘레에는 자그마한 나무가 성기게 돋아있다.

둥근 굼부리를 돌면서 계속 사진에 화구를 담다 보니 어느 결에 선택의 기로에 서서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잠시 헷갈렸던 갈래길에 이르렀다.

이제는 하산길, 어느 산이나 내려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금방이다.

주차장에 닿아 멋진 제주여행 즐기라는 덕담을 끝으로 서울 부부팀과 작별을 고했다.

조금 떨어진 위치에 있다는 다랑쉬굴은 패스하고 우린 늦은 점심을 먹으러 성산으로 달렸다.


다랑쉬오름:구글 사진
용눈이오름에서 본 다랑쉬오름/ 아끈 다랑쉬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