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
가끔 한적한 골목길을 걷는 때가 있다.
그렇다고 산책이나 운동 삼아 걷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절에 다녀오는 길이라든지 우체국에 갔다 오며 시간과 마음이 함께 넉넉할 경우.
특별히 바쁜 일 없고 따로이 볼일 없을 때는 발길 역시 저절로 한유롭다.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두리번거리거나 주춤거릴 필요도 물론 없다.
그저 눈에 띄는 대로 담장이나 문패 같은 걸 별 의미 새기지 않고 바라보며 걷는다.
어느 건 한참 서서 지켜보기도 하지만 일별해 스치는 게 대부분이다.
자주 보는 것이라 새로울 것도 신기할 것도 없는 풍경들이니까.
열려진 문이 있다면 슬쩍 안을 들여다 보기도 한다.
혹여 내 태도에 수상쩍은 눈꼬리를 따라 붙일 이는 없으리라.
나와 초면인 어떤 사람이, 인상이 아주 선해 보인다며
크리스천이냐고 물은 적이 있음을 상기해서다.
하긴 순하게 보인다는 건 어리숙하다는 뜻도 포함되지만.
어쨌든 나는 단지 정원 가꿈을 보기 위해 들여다보았을 따름이므로 거리낄 게 없는 셈이다.
담에 줄장미나 등덩굴 혹은 담쟁이라도 늘여진 집은,
그래서 초록빛 물결에 파묻힌 것 같은 집은 어쩐지 정이 간다.
그 집에 살고 있는 이들은 다 착한 이웃일 것만 같다.
완강히 버틴 철대문이 아닌 결무늬 살린 나무 대문이거나 아라베스크 섬세한 무늬 아른거리는 그런 대문은 한참을 바라본다.
즐거운 얘깃거리가 그 손잡이에서 달그락거리며 새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어떤 집은 옆집에 사는 강아지라도 뛰어넘을 만큼 나지막한 붉은 벽돌담을 둘렀다.
그 너머로 정원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게 언제 봐도 참 살갑다.
대문에서 현관에 이르는 길 따라 하얗게 깔린 조약돌.
양옆으로는 줄지어 소담스레 가꾼 실난의 청초함이 순결한 소저를 연상케 한다.
반면 잔뜩 키 돋워 담을 쌓고 그래도 못 미더워 철창으로 중무장한 집을 보노라면 불신이 팽배한 세태를 읽듯 마음에 바위가 얹힌다.
하긴 핏발 세워 지켜야 할 부(富)란 늘 가진 그 양만큼 불안한 것.
하여도 스스로 갇혀 사는 구속마저 기꺼운 양 여전히 물욕의 허상을 쫓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다.
가치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부를 무조건 경멸하거나 추종하지는 말되 결국 인정하긴 해야 할 그 양면성이라니.
내 마음부터 세척하라는 뜻일까.
홀연 스미는 향 따라 시선을 드니 골목 모퉁이에 금목서 샛노랗게 피어 있었다.
금목서 맑은 향에 젖은 채로 나는 속으로 가만히 우리 집 정원을 꾸며보기 시작했다.
아파트에 사는 현재로선 그냥 꿈일 따름이지만,
나이 들어 대구의 부연집 그 한옥에 돌아가 살 땐 이런 정원을 만들어야지 생각하면서.
뜰을 반쯤 가린 라일락은 그 자리에 언제나 그대로 두고 오월 아침 눈 내리듯 피어나는 찔레 향도 그냥 두리라.
등나무 왕성한 줄기는 가끔 전지로 다듬고 겹무궁화 한 그루 그땐 제법 밑동 굵어 있겠지.
새로 심을 나무론 먼저 자귀나무.
그리하여 외가의 따뜻한 추억과 더불어 무시로 고운 부채춤 사위를 떠올리리라.
그다음엔 동천(冬天)에 푸른 향 띄우는 비파, 귀골의 태산목도 심어야지.
자손이 잘 된다는 대추나무에 알알이 보석 품은 석류나무, 늦가을 홍시 매단 감나무도 가꿔보리라.
토담 가 홀로 붉던 앵두는 낮은 키 유념하여 앞켠에 심고 백옥 송이송이 향 서린 치자나무도 심자.
목련은 굳이 산목련을 택할 것이다.
조촐한 모양새로 소심(素心)을 일러주는 산목련화가 나는 좋으니까.
다감한 배롱나무, 뭉게뭉게 소담스러운 불두화, 담 따라 구기자 덩굴도 오르게 하리라.
그 아래 작은 샘솟으면 하마 누가 아는가, 천수 누리는 신선이 게서 날는지.
잔대나무 심어 가을 저녁 댓잎 바람도 청하리라.
봉황은 아니 기다려도 달빛 거르고자 벽오동도 심어야지.
나목이 떨고 선 겨울, 빈 가지 사이로 청청한 푸른 잎 산호수며 월계수도 가꿔야지.
몸 떨리도록 붉은 정열 동백도 심어볼까.
그러나 동백은 반드시 소박한 토종 동백이어야 한다.
귀여운 개나리, 선은 기하학 멋진 모과나무, 하긴 천리향도 갖고 싶다.
그건 자리가 남았을 때 생각해보자.
하긴 여백도 있어야 하고 앉아 쉴 만한 한두 점 찬 바위도 필요하다.
잔디 심어 그 새새 민들레 클로버 반지꽃도 피게 해야지.
고흐의 황금빛 햇살과 더불어 푸르른 달빛 고요히 내리게 하리라.
벌, 나비는 물론 멧새도 청하리라.
석등이며 수련 뜬 연못의 호사까지야 못 누린다 해도 이만큼은 가멸진 정원을 갖고 싶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 마음의 정원 가꾸기에 소홀해선 안될 일이다.
행여 탐심으로 수목 어수선해지거나 태만으로 잡초만 무성하다면 얼마나 부끄러울까.
'인간의 가치는 무엇을 가졌느냐에 달려 있지 않고
어떤 인간으로 존재하느냐에 있다'란 글을 읽은적이 있다.
그 말씀 깊은 울림되어 골목길 어디선가 들려 오는 것 같다.
- 88년 1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