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모루에서 외돌개로 노을 마중을

by 무량화


컴퓨터를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았다.

게다가 원래 타고난 기계치이다.

쓰던 기기라도 새로운 기종을 접하면 한동안 절절맨다.

그래서인지 블로그를 시작한 지 이십 수년이나 됐건만 기존 틀에 글과 사진을 겨우 넣는 수준이다.

여러 기능을 적재적소에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르기 때문에 답답할 정도로 진행 속도가 느려터지다.

컴퓨터 조작을 총기라도 다루듯 사뭇 조심스러워하니 마치 어려운 사돈 대하는 양 친근감이나 발전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아이들도 척척 다루는 문명의 이기들에 낯가림이 심해 버벅대기 일쑤인 나.

여태껏 문서 작성해서 저장하는 법도 몰라 한번 저장시켜 둔 파일은 경로를 찾지 못해 제대로 꺼내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참여한 컴퓨터 수업, 정신 바짝 차리느라 긴장해서 인지 두뇌회로가 엉켜버렸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오후 네시.

날씨가 좋아 맞은편 한라산이 선명하다.

쪽 곧은 언덕길 저 아래 보이는 범섬이 뜬 청남 빛 바다 향해 곧장 걸어내려갔다.

서늘한 바람결에서 느껴지는 완연한 초겨울 기운.

신시가지에서 법환동로 거쳐 막숙포로를 탔다.

길 아래편 귤밭은 귤을 수확하느라 바빴다.

노랗게 익은 귤이 꽃처럼 화사했다.



법환포구 방파제에는 테트라포드 조형틀이 양편에 죽 깔려있었다.

시멘트를 비율대로 배합해 틀에다 붓고 굳을 동안 대표께선 해외에 나가 골프 치다 돌아오면 테트라포드가 단단히 굳어 돈다발로 변한다고.

이렇게 말하는 허름한 작업복 차림의 관리자가 중국인 일용직 노동자에게 괜히 큰소리로 야단을 쳐댔다.

피라미드 구조의 자본주의 사회 한 단면상이겠다.

포구를 벗어나 언덕 오르내리다가 법환동 4.3 성터를 만났다.

법환리는 4․3이 한창이던 당시는 피해가 비교적 적은 편이었단다.

사태가 거의 끝나갈 무렵인 1951년 3월 어느 날 갑자기 무장대의 공격을 받아 인명이 희생되고 가옥 수십 채가 불에 타는 피해를 입었다.

이날 피습으로 법환 지서 주임과 보초를 서던 주민도 희생되었다.

법환리 4.3성은 무장대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축성된 성이다.

그 후 내성을 축성해서 바닷가 주변 외성에 거주하던 주민들도 내성으로 이주해 살게 하였다고.

곳곳에 초소 만들어 마을을 지켰다던 성터 아래편에 벙커 하우스라는 유명 카페가 나지막하게 엎드렸다.

한적하던 바닷가 마을에 무장대가 내려와 험악해졌던 동리 분위기와 걸맞은 카페 이름이 아닌가 싶다.

이 카페 위치 역시 조망권 끝내주는 명당에 용케도 자리 잡았다.

벙커 하우스, 그 아래로 열린 올레길 7코스.

제주답지 않게 동글 둥글한 몽돌이 깔린 해변이다.

올레꾼들은 저마다 결 다른 기원 담아 돌탑 쌓으며 파도 소리에 젖었으리.

몽돌해변을 지나면 잠깐 산길이 이어진다.

채 십 분이나 걸릴까, 산길로 접어들어 걷게 되는 호젓한 길, 아니 약간은 으슥한 길인 데다 오르내림도

두어 번 이어진다.

약간 휘휘한 감도 들지만 바로 아랫녘에 낚시객들이 있기에 걸을만하다.

평지 흙길로 내려서면 또다시 보이는 범섬.

여기서도 억새 사이로 범섬은 숨바꼭질 놀이 여전하다.

올레 걷는 이들이 가장 사랑해 마지않는다는 자연생태길인 수봉로, 바로 여기다.

간세가 서있는 자리에서 이마 위 언덕으로 올라가면 연동 연대가 기다리는데.



이어서 귀여운 수애기 형상을 한 문섬이 보이며 야자수 늘어선 수모루 소공원이 기다린다.

점점 뒤로 멀어지는 범섬.

수모루 공원에는 나름 질서있게 경계 이룬 훤칠한 야자수와 백년초 선인장 무성하다.

야자수는 계획적인 조림 같으나 선인장 조경은 마구잡이에 가까워 지나칠 적마다 정신 수란스럽다.

정성 들여 가꾼 공원이라기보다 손질하다가 중도 작파하고 방치해, 야생에 가까워질 만큼 들쑥날쑥 제멋대로 자라서이다.

다만 그 앞에 소박하고 우직스러운 돌탑 한 기가 서서 무게 잡았다.

백년초 농원처럼 무수하게 뻗은 손바닥선인장 빼곡한 수모루공원에 점점 길다라지는 내 그림자 앞세우고 속골로 접어든다

수모루를 지나자마자 연결되는 속골이다.

지금은 물소리조차 새침을 떨고 있으나 여름 한철 이 골짜기는 왁자하기 이를 데 없다.

콸콸 여울져 흐르는 폭넓은 계류에 식탁과 의자가 차려지고, 삼복더위를 겨냥한 계절식을 메뉴로 차린 한시적인 식당이 열린다.

흐르는 차디찬 시냇물에 발 담그고 닭백숙 즐기는 탁족 명소로 소문 자자한 곳이다.

운치있는 아취형 나무다리를 건너 스토리 우체통에 손편지 넣어두고 언덕길 오른다.

여기서부터 올레길 끊기면서 나아갈 길 몰라 잠시 어리둥절해진다.

이 길을 걸으며 여러 차례 헛걸음했기에 잠깐 하라케케 카페에 들러 쉬면서 목을 축인다.

방전된 기운 되찾으면 두말없이 차도까지 올라가 서귀포여고 앞을 지난다.

돔베낭길 만난 다음 아래로 한참을 내려가야 우여곡절 끝에 외돌개 가는 길과 연결이 된다.



돔베낭 언덕이 끝나는 길가 우측에 엄청 큰 공사현장 가림벽이 길게 펼쳐졌다.

그로 인해서인지 전처럼 윤기 반들거리는 길목이 아니다.

활기찬 기세 꺾여 루아&티그리 카페는 아예 연못에 이끼만 덮여있고 덥수룩 조경수엔 거미줄 어수선하다.

바다 바라보며 타던 대형 그넷줄도 끊겨 있고 이미 폐업한 지 꽤 된 듯, 멋스럽던 카페가 이리될 줄이야.

과거는 히스토리, 미래는 미스터리, 오직 중요한 건 선물로 주어진 현재 Present 아니랴.

무념무상 누리던 심사가 갑자기 복잡해져 터덜터덜 걷는다.

잠깐만에 사유지가 다시 가로막으며 길은 사라지고 성벽길 사이로 오르락내리락.

돔베낭길에서 외돌개 가려해도 이렇듯 여러 번 헛걸음질 하게 만든다.

그러다 만나는 60 빈스 카페 정원을 통과해서 메리어트 & 리조트 단지 끼고 계단을 올라간다.

드디어 솔바람 넘실대며 새연교와 새섬이 가까이 보인다.

노송 휘늘어진 언덕길은 수직 해식절벽으로 저 아래 청청한 바다에 홀로 우뚝 솟은 돌기둥, 외돌개다.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하르방을 기다리던 할망이 바위로 화했다는 전설 따라서 할망바위.

또 하나, 전설이 아닌 구전돼 내려오는 역사 한 자락.

반란군 목호를 치러 온 최영 장군이 격전을 치르기 전, 외돌개를 거인 장수의 형상으로 꾸며 이에 겁먹은 몽골군의 항복을 받아냈다고도.

모처럼 이날 대기 청명해 외돌개를 품은 바다 빛깔도 아주 청량했다.

외돌개 전망대에 내려설 즈음엔 어느새 해가 기웃해졌다.

놀멍 쉬멍 시나브로 걸었더니 여섯 시 가까워졌다.

노을 받은 윤슬, 사금 가루처럼 빛나는 비경도 만날 수 있었다.

느지막이 외돌개를 찾은 까닭은 일기 청명해 서녘 노을빛 운치 있을 거 같아서였다.

적시 안타! 딱 마침맞게 바다 가까이로 석양이 잠겨 들고 있을 즈음이다.

태양이 마지막 열정 뜨겁게 불사르고, 하루 일정 마감하며 침몰하기 직전의 장엄한 여명.

구름장 사이로 빛 스러지면서 맞게 되는 일몰의 시각이다.

바로 눈앞의 외돌개 뒤편으로 범섬과 강정포구가 노을 아래 아슴히 떠올랐다.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은 화려한 선셋을 배경으로 연신 사진을 찍었다.

요리조리 배경 잡아가며 혼자 셀카를 찍거나 또는 가족사진 찍고자 빠지게 된 가장에게 합류하시라며

사진을 대신 찍어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말만이 아니라 고개까지 숙여가며 감사를 표하니 아무튼 흐뭇해지는 기분.

외돌개에 저녁문안드린 다음 석양빛 등진 채 걸어서 삼매봉 근처에서 새연교와 서귀포 시내 야경을 바라봤다.

마치 영화 속 남프랑스 풍광처럼 몽환적인, 캘리포니아 센트럴 코스트 물빛처럼 환상적인, 서귀포의 신비로이 푸른 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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