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스럽다는 전설 속 영주산.
그 한라산 영실 쪽에 무지개도 걸려있다.
아직 한라산 언저리는 운무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간밤, 제주 산지에 대설주의보가 발효됐으며 아침에 온 안전문자를 보니 천백도로는 대형 차량은 체인/소형은 통제된다고 우회도로를 이용하라 했다.
서귀포 앞바다에 태양이 환히 떠올랐으므로 분단장 하얗게 한 새 신부와의 상견례는 마침내 이뤄질 터이다.
곧이어 신부 옷도 스르르 벗겨질 터이다.
그리도 비밀스럽게 안개구름에 숨겨뒀던 그녀의 아미.
내내 베일에 가려있어 그 너울 슬몃 들치고 싶은 열망으로 침마저 말라든 신랑은 자꾸 헛기침 해댄다.
조급증 아랑곳 않고 저만치서 내동 딴전만 부리던 그녀.
어느 땐 뭉게구름 희롱하다가 가끔은 먹장구름 더불어 노닐며 시침 뗀 채 아래 세상 잊은 듯 짐짓 초연하더니만.
웅녀처럼 햇빛 아래 나서지 않고 백일 채우려는가, 미틈달에 내려진 첫눈 소식 들리고도 당분간 유예시킨 상봉의 시간.
닫아걸었나 싶어 섭했던 마음 빗장, 눈발 휘날리며 바람 거칠던 밤 그녀는 수줍던 가슴 화들짝 열어젖혔으리라.
그동안 어찌 참았나 싶게 용감무쌍 아주 적나라하게.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걷히는 운무.
가붓하게 깔린 듯하나 망원경 관찰로는 적설량 제법 희끔하다.
눈부셔 손부채하고 올려다보다가 종당엔 합장하게 만드는 신이 사는 산.
하이야니 변한 한라 정상 말간 얼굴과도 조심스레 그렇게 드디어 조우할 것이다.
이제 걸핏하면 240번 타고설랑 천백고지 눈꽃이 펼치는 설국도 만나게 될 것이다.
백록담 인근에 얹힌 여왕의 은빛 보관으로 이제 매일이 찬란할 아침.
넘치는 시혜가 꿈인가 환각인가 지금도 잠깐씩 어리둥절해진다.
잠에서 깨어나면 동남 창 가득 어리인 금빛 바다, 섶섬과 제지기오름이 그림처럼 앉아있다.
현관 밖 복도로 나가야 만나는 한라산 웅자, 에헴! 위엄차기만 한 게 아니고 실은 너그러이 펼쳐놓은 치맛단 인자롭다.
명당의 조건인 배산임수 터, 겨울엔 일조량 많아 따스하고 여름은 시원하고.
문밖 나서면 십 분도 못 미쳐 이중섭거리에 천지연 정방폭포 좌우로 거느리고 수시로 작가의 산책길 거닌다.
하여 날마다 축제의 하루로 충만한 나날이다.
수맥 터지듯 늦복 왕창 터졌나 보다.
꿈만 같은 아침, 차 한잔에 엔니오 모리꼬네 영화음악 요요마가 감미로이 들려준다.
행복은 바로 이런 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