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고수의 내공? 소림사 이면

by 무량화


생각이 깊을 때, 혹은 머리를 비우고 싶을 때나 단순해지고 싶을 때, 가상공간인 영화 속으로 곧잘 잠수를 타는 나. 간밤에도 두 시간 분량의 영국영화 The Constant Gardener를 봤다. 장르 불문하고 영화라면 두루 즐기는 편, 해서 전쟁물이거나 스릴러물 누아르물 등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무협영화나 강시니 귀신 영화는 절대 사절이다. 의외로 나는 김기덕표 영화를 일부러 찾아다니며 봤다. 처음 그를 만난 건 영화 <수취인 불명>이었다. 파격적이고 충격적이었다. 피비린내 나는 날 것을 생으로 씹는듯한 고역스런 불편감. 찜찜해서 구토증이 일었다. 개를 때려잡는 장면은 차라리 약과였다. 영화 본래의 순기능은 기분을 가벼이 풀어주고 환기시키는 건데 이건 오히려 악화시킨다 할까. 그래서 유달리 김기덕 영화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편이다.


우연찮게 또 보게 된 건 <나쁜 남자>다. 이건 한술 더 떠 아예 속을 메스껍게 만들었다. 김기덕 고유의 소재 선택도 그러한 데다 조재현의 징그러울 정도로 리얼한 연기가 압권으로 음산한 눈빛을 한 무자비한 폭력성은 거의 광기라 할 수 있었다. 연인조차 소유할 수 없다면 파괴해 버린다는, 욕설로 범벅된 그 세계의 룰이 너무 잔혹해서도 오싹 소름 돋았다. 보면서 내내 별 거지발싸게 같은 얘길 영화로 다 만들다니 참 희한한 인간이네, 못마땅해서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런 거북함 가운데서도 묘한 이끌림이 그의 영화에는 녹아있다. 거친 표현 방식이나 극단적인 내용과는 별개로 그는 끊임없이 용서와 속죄와 화해를 통한 인간 영혼의 구원 문제를 다루고 있었으니... 신은 의인이 아닌 죄인을 구하러 이 세상에 오셨다 하였던 그대로다. 그리하여 음습하고 거친 악의 세계에 빠진 사람은 나와는 별개의 가증스런 인종인양 거부하며 손가락질하는 대신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뚜렷이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힘을 전해준다.



아무리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기생충보다 못한(나쁜) 인간일지라도 마음 한켠엔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이 있고 그래서 작은 온정 하나에도 쉽게 무너져 내리는 나약함(착한)이 있게 마련이다. 은촛대를 훔친 쟝발잔이 사제가 보인 자애 앞에 스르르 죄를 뉘우치고 절로 회심하듯이. 인간 내면의 악마적 근성에도 불구하고 종국에는 보이지 않는 자비의 손길에 의해 구제되어 치유에 다다르게 된다 하였다. 이것이 우리 종교의 핵심. 용서받을 수 없는 악의 화신이요 대역죄인으로 치부했던 자일 지라도 마지막 순간 회두한 우도처럼 죄를 사함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되니 말이다.



그러면서 수취인 불명에서부터 해안선 그리고 섬으로 김기덕 섭렵은 이어져 갔다. 섬, 푸른 물에 번지던 혈흔과 낚싯바늘이 끔찍했던 기억은 아직도 남아있다. 인간이기를 일찌감치 포기한 수취인 불명과 나쁜 남자는 거의 재수 없다고 외면하다시피 하며 그래도 끝까지 보았다. 미쳐갈 수밖에 없는 상황 설정이 짠하던 <해안선>도 오래 기억에 남은 영화다. 과거는 흘러갔다, 란 노래를 자주 흥얼거리게 만든 해안선도 찝찝하긴 마찬가지. 인간이 인간에게 이토록 무자비할 수 있구나 싶으니 인간에 대해 현기증을 넘어 멀미감마저 들었다. 누구랄 것 없이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그 집요한 가학성을 우리 내부에 다 숨기고 있다 여겨지니 정말이지 나 자신조차 싫어지고 정나미가 떨어지기도 하였다. 어느 누구 하나도 결코 자유롭지 않은 이 불편한 진실, 상황에 따라 여차하면 가증스러운 악의 얼굴이 노출될 수도 있다니.



섬과 봄여름가을겨울도 마음에 묵직한 납추를 달아매게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김기덕에 매료돼 갔다. 연달아서 <활> <섬> <사마리아> <빈집> <뫼비우스> <피에타>를 보았다. 바다 위에 뜬 한 척의 낚싯배가 무대이고 주인공은 노인과 소녀다. 말이 필요 없다. 그들은 눈빛으로 표정으로 말한다. 분위기가 설명해 준다. 그래도 인간의 오욕칠정을 다 드러낼 수 있는 그의 재주, 놀랍고 신기했다. 잘못된 욕망의 화신을 수장시키듯 마침내 침몰하고, 마지막 장면, 푸른 바다에 배를 띄워보내며 가장 그 다운 김기덕의 육성이 여운처럼 흐른다.'팽팽함에는 강인함과 아름다운 소리가 있다. 죽을 때까지 활처럼 살고 싶다'. 그는 그렇게 살다 갔다. 아무튼 기분이 산뜻해지기를 바라는 날 그의 영화는 피하는 게 낫다. 그럼에도 김기덕 영화에는 독특한 마력이 있다. 다음엔 또 무슨 얘기로 나를 취하게 만들까 하며 은근 기다려졌는데, 미투 사태 이후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그,



영화에도 편식이 심해 즐기는 영화가 있는 반면 전혀 안 보는 장르도 있다. 공중을 넘나들며 우화등선의 경지에 든 무림고수를 다룬 무협영화는 본 바가 전무하다. 묘기대행진 하듯 한 판타지적 요소가 다분해 별로라서다. 무협소설도 안 봤다. 소림사 제목은 달아놓고 그 얘긴 뜸만 들이나? 실은 중국 숭산 아래 소림사를 다녀왔지만 별 감흥이 없던 터라 사진만 늘어놓기도 뭣하고 하던 차. 무술영화의 배경 이전, 천하제일명찰(天下第一名刹)이라 알려진 소림사다. 암튼 소림사를 품은 직사각형 반듯한 대지부터 어마무지 넓었다. 건물은 비에 젖어 더욱 고색창연, 소림사는 역사 매우 깊은 천년고찰이다. 인도에서 건너온 달마대사가 9년간 면벽참선수행 끝에 도를 깨우친 사찰이 소림사. 그리하여 선종의 본사가 된 소림사인데 사찰 건물 외에 방대한 탑림 <숲 이룬 부도탑>도 유명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는 대찰인 소림사. 이곳 승려들은 무술기법이 뛰어나 전쟁이 나면 승려들이 강호에 나와서 현란한 소림사 권법을 펼쳐 보였다. 이후 엘리트 체육인 양성 코스가 된 이곳은 쿵후와 봉술이 특히 뛰어났다



내가 수차례 보고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아끼는 명화는 <카사블랑카>와 <앵무새 죽이기>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김기덕 영화 얘기를 거론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현세태는 김기덕이 그린 영화 속 범죄만물상이 도처에 실제 독버섯처럼 기생하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싶다. 만민 고루 잘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사회주의 중국에서 자본주의 능가하는 병폐로 골수 깊이 병들어가는 현장이 바로 이 절에서 벌어졌으니.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소림사 전 주지 스융신은 1987년 젊은 나이로 소림사 30대 방장에 오른 MBA 출신 승려였다고. 마카오인지 어디서 카지노 딜러였다는 썰도 무성했던 그는 소림사의 상업화 국제화 체계를 다져나갔다. 소림사 정무단을 구성해 세계를 돌며 무술공연을 벌이는 한편 무술캠프뿐만 아니라 TV 프로그램 제작, 제약업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부동산도 줄줄이 사들여 해외에 골프장과 5성급 호텔 및 리조트도 보유하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소림사는 연매출액 10억 위안(약 1900억 원)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 있었으니까.



CEO주지로 소문난 스융신은 소림사 자체를 브랜드화하여 떼돈을 벌어들인 능력 있는 주지였다. 그러나 종교란 이름하에, 현대의 물신주의에 매몰된 소림사 주지의 사생활이 폭로되며 온갖 만행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거느린 여자와 사생아가 몇십 명이라고도 했다. 그는 성추문과 공금횡령등 부정부패에 연루돼 수사당국에 끌려간 후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불가에서는 마음을 닦아 맑히라 가르치며 탐진치 삼독을 끊으라고 누누이 설한다. 그럼에도 시정잡배만도 못한 물질의 욕망에 사로잡혀 버린 그. 한국에서도 오래전 소쩍새마을 사건으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사이비 중이 있었으며 종단 승려의 도 넘는 일탈행위도 가끔 매스컴에 오르곤 한다. 불교만의 일인가. 으리번쩍 치솟은 신교의 배후 역시 들춰보면 오십보백보다. 신이시여, 탐욕에 찌든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사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기도가 여기서도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