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하는 친구가 범어사라며 카톡을 보내왔다. 절정인 단풍이 화려 찬란했다. 서둘렀지만 정오 가까이 돼서야 범어사에 닿았다. 눈앞에 펼쳐진 숲은 온통 불그레 환했다. 아침나절 창창하던 하늘인데 서서히 회색 구름이 진을 치며 날씨가 우중충해졌다. 범어사 전경이 마주 보이는 계명봉으로 향했다. 꽤 높아 보이는 계명봉이나 조붓한 비탈길 걸으면서 이런저런 뭇 사념에 잠기기 딱 좋은 코스라 평소 즐겨 찾곤 한 곳이다. 써둔 지 오래된(1992) 계명봉에 관한 글을 꺼내본다.
천지가 열리며 힘차게 달려온 한반도의 맥. 무궁한 조화 처처에 역사하고 굽이굽이 내려와 비로소 마무리된 곳에 부산은 자리했다. 앞자리에 바다 드넓게 펼치고 등 뒤로 듬직이 세운 높푸른 뫼는 금정산이다. 그중 동으로 우뚝 솟은 계명봉에 오른다.
우리의 삶이란 기쁨과 영광의 빛나는 순간이 마련돼 있는가 하면 신산과 고통이 교차되기도 하는 것이 아니던가. 홀로 산을 찾는 날은 견딜 수 없이 쓸쓸하거나 일상이 지치도록 고단한 뒤끝이다. 버스 노선처럼 정해진 길을 착실히 오가다 어느 순간 불현듯 감당키 어려운 회의감에 빠지는 날도 나는 산으로 향한다.
산의 덕성은 포용이며 침묵이다. 혹은 넉넉함이다. 산은 편안하기가 어머니 품 같다. 언제라도 등 떠밀지 않고 너그러이 안아 줄 따름인 모성의 자애다. 위로나 위안의 말보다 그저 가만히 수용해 들이고 묵묵히 지켜봐 주는 동안 격랑조차 저절로 가라앉는 것이다. 무심한 듯 초탈한 듯, 깊고도 너른 폭으로 인간사 희로애락을 다 흡수해 안온히 다독거려 주는 산의 자비.
의지할 것은 종교만이 아니다. 산도 아늑한 구원처가 돼주는 까닭에 엉킨 마음 풀고 답답한 속 열고자 산으로 가는 것이다. 산은 말이 없을뿐더러 아무 말도 필요로 하지 않기에 더욱 좋다. 어떤 표정에도 물음표 달고 채근하는 법이란 없다. 그냥 기대고 쉬도록만 해준다. 하여 서서히 평안을 얻고 감정의 가닥들을 수습해 추스른 뒤 생활 가운데로 돌아올 수가 있는 것이다.
산문에 들어서면 평소 소아(小我)에 몰두했던 편협함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고작 사물에 대한 소유욕과 집착 때문에 어둠에 갇혀 지낸 나날들. 그로 인한 상실감과 절망감에 아파했음이 치졸스럽다 여겨질 만큼 산은 그릇을 크게 만드는 모양이다.
번다한 상념 털어버리고 시선을 드니 용트림하듯 굽이친 산세 끝나는 자리에 도시는 얌전하다. 더 멀리 바다 건너면 대마도가 선명히 잡힌다는데.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땅이다. 우리와의 악연은 죽어서 왜구를 지키는 동해의 용이 되고자 한 문무왕의 유지를 통해서도 엿보게 된다.
이후 일 곱해에 걸친 참혹했던 임진왜란. 부산포 진주성 탄금대 행주성 벽제관 전투 등에다 충무공의 해전까지 치열함의 극이었던 왜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 강점하에 주권이 유린된 채로 모진 핍박과 수탈당해야 했던 지난 세월. 뿐더러 아직껏 그 후유증 아물지 않은 강제징용과 징병, 정신대의 상흔들. 일제 만행에 치를 떨고 분노하기 이전 오늘의 실상을 눈여겨보면 더욱 기가 막힌다.
이제는 동서 냉전 체제가 무너지고 바야흐로 경제 패권시대에 접어들었다. 따라서 무력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닌 경제력에 의해 세계가 재편되는 세월이다. 일전에 마일드 세븐이라는 일본 담배가 외제 담배 시장 점유율 1위라는 신문기사를 접하고 어이가 없었다. 일부 속없는 여자들은 김치에서 된장 간장까지 일본 상품을 즐겨 찾고 얼빠진 젊은이들은 일본 연예인 흉내 내기 바쁘다. 파라블라 안테나가 눈에 띄게 늘어가는 작금에는 자주독립 위해 피 흘린 선열들 순국의 뜻을 되새기기조차 실로 민망스럽다.
왜 나라에 문화를 전파시킬 정도로 수준 높았던 고대 문물의 우월성을 곧잘 내세우는 우리다. 그러나 현재 모든 면에 있어 일본에 뒤처져 있다. 게다가 극심한 무역적자에 허덕이는가 하면 무방비 상태로 왜색 문화에 침식당하고 있는 우리의 혼. 무엇보다 먼저 교활하고 치밀한 일본의 경제침략에 대응할 정신무장부터 공고히 할 일이다. 더불어 문화의 마구잡이 수용도 지양해야 함은 물론이다.
지금 내가 서있는 이 봉우리는 이름 그대로 닭이 새벽을 알리며 우는듯한 힘찬 기상을 지니고 있다. 해서 일인들의 경계대상이 되었는지 모른다. 갈데없이 그 생김새가 지네 형상인 대마도를 쪼는 닭의 형국이라 그들이 볏 모양의 바위를 부서뜨려 기(氣)를 차단시켰다는 기록을 안고 있는 곳이다. 조선의 맥을 끊고자 한반도 곳곳에 정기 막는 쇠못을 박은 일인들의 가증스러운 형태가 스쳐간 자리인 이곳.
반면, 비상시에 봉화 올려 위급한 상황을 알렸던 봉수대 터이기도 하다. 노략질 일삼는 왜선의 침공을 저지하고자 밤낮없이 변방 지킨 파수꾼이 머물렀더라는 자리다. 지금은 다만 희미한 전설로, 흔적으로 남겨져 있을 뿐이나 후대의 어리석은 이를 무언으로 경책하고 있는 계명봉.
과거의 일에 눈 감는 자는 미래를 바로 볼 수 없다 하였다. 그렇듯 지난날의 실패와 잘못을 기억하는 것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지 않기 위함이라는 가르침을 전하려 계명봉은 여기 있음이리라. 이처럼 결기 다부진 글도 남겼는데 이젠 나이 핑계 삼아 스스로의 건강관리부터 최우선시하게 됐다. 어쩌다 더러 성찰일기 비슷한 글을 쓰긴 하나 통찰이 없는 단순 풍경 스케치나 가벼이 날리는 요즘. 하지만 산다는 게 뭐 별 건가. 분수대로 나름 충족감도 맛보긴 하니 오늘도 역시 좋은 날.
큰절에서 계명봉 가는 길목마다 가을이 무르녹았다. 감이 곱게 익어가는 산사 앞엔 금목서 꽃향기. 은행나무 우듬지에 까치집 하나. 숲길엔 솔향과 낙엽 내음 어우러져 후각을 살몃 자극했다. 친구 호출이 아니었으면 놓칠뻔한 아름다운 만추의 절경 즐기며 한나절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누렸다. 축복이란 게 특별나고 대단한 건가, 소소하고 잔잔하지만 충일감에 젖어드는 이 순간이 기꺼워 손 모두어 고개 숙였다.
보통 당일로 사진을 정리해 포스팅하던 대로 책상에 다가앉으려다가 미뤘던 데는 내심 생각이 있어서였다.
내일 혹시 일기 청명하면 다시 범어사를 찾아 푸른 창공이 받쳐주는 눈부신 단풍 사진을 찍어봐야겠다는 욕심이 발동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날씨는 기막히게 좋았다. 전형적인 가을 하늘이 푸르게 펼쳐져 나를 자꾸만 꼬드겨댔다. 나갈까? 말까? 거의 그 유혹에 넘어갈뻔하다가 '과부하'란 단어가 뱅뱅 맴돌아 아서라 참자, 결국 스스로를 주저앉혔다. 무리했다가 크게 놀란 적이 있다 보니 아직은 근신 모드 해제하기엔 시기상조라 여겨졌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건데 지난번 한번 된통 혼나봤으니 절대 무리하지 말고 기온도 떨어졌는데 단디 조심 또 조심. 만사 삼가고 조신하게 집에 들앉아 어제 사진으로 오감만족이었던 통도사의 만추 소식 띄운다.
<날씨 청명하면 대마도까지 보인다는데 산자락 사이에 금정구가 안겨있고 저 멀리 광안대교 아슴하다>
<계명봉 오르다 조우한, 낙엽 더미 틈에 한 송이 화사히 핀 철쭉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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