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다는 땅마저 낡게 만든 세월

by 무량화


세상만사 성할 때가 있으면 당연히 언젠가는 쇠할 때도 온다.

여미지식물원도 그랬다.

아름다운 땅이라는 여미지의 이미지가 무색했다.

전성기 지난 건물도 시설도 내용도 이제는 김 빠진 맥주 같았다.

한때 그리도 반짝거리더니 이제는 녹슬어 추레해지고 기력 약해졌다.

뒷전으로 밀려난 은퇴 노인을 보듯 쓸쓸하고 허허롭기조차 했다.

그 무엇도 피할 수 없는 영고성쇠의 굴레.

누렇게 바랜 잔디밭에 낙엽 휘날리는 조락의 계절 탓인가.

봄꽃 싱그럽게 피어있을 때 왔다면 지금과 달리 생기차 보였을까.

외국의 멋진 식물원을 여럿 구경해 눈이 높아져서인지 아예 민망할 정도로 초라하다.



동양 최대의 온실을 지닌 여미지식물원은 한동안 제주도의 주요 관광처였다.

88 올림픽이 열린 다음 해 문을 연 여미지식물원 보려고 제주를 찾을 정도였으니 그 인기는 대단했다.

처음 여미지식물원을 방문한 것은 90년대 초로 학부모 모임에서였다.

일행 모두 여미지 규모에 입을 다물지 못했으며 유리온실에서는 목 뻐근하도록 고개를 치켜들고 다녔다.

식충식물만 모아놓은 곳에서는 오묘한 신의 배려를 접하고는 고개 주억거렸으며, 이름만 들었던 희귀 식물 앞에서는 저마다 눈이 휘둥그레진 채 감탄사 연발했더랬다.

아름다운 꽃과 잘 가꿔진 정원 같은 진풍경 배경으로 우리는 그때 사진 찍기 바빴다.

당시의 신기하고 놀랍던 기억의 불씨 여전히 살아 있었던가, 여미지는 그 당시같이 빛날 줄 알았다.

아리땁고 청청하던 소녀 소년이 장년을 지나 노년기에 접어들어 다시 만났을 때 느끼게 되는 당혹감.

무도회의 수첩처럼 모든 것은 변하게 마련이고 늙어가고 낡아진다는 사실을 직면한 씁쓸함이랄까.

별나게 기대한 것도 아닌데 허탈할 정도로 실망스러웠다.

화려한 봄꽃 축제나 여름 야생화나 국화꽃 잔치가 열렸다면 입 함빡 벙그러졌을까.

테마별로 잘 짜인 온실은 신비의 정원, 꽃의 정원, 물의 정원, 선인장 정원, 열대 정원, 열대 과수원 등 이름도 고왔는데.

야외엔 한국,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식 정원을 만들어 놓아 잔디밭에 앉아 간식 나눴더랬는데.

꽃들은 향기로웠고 식물들은 푸르렀으며 경쾌하게 유람열차 달리고 인파로 온실 안과 밖 흥청거렸는데.


달력 앞당겨 미리 장식해 놓은 크리스마스트리 색색의 방울만 화려했다.

아, 옛날이여!

어디까지나 개인적 소회일 뿐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