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겨울, 미국집에 다녀왔다.
한 달 머무는 동안 주로 딸네 집에 가서 덤불진 앞뒤 정원 다듬어주는 게 일과였다.
딸은 독신으로 매우 바쁘게 사는 이른바 골드 미스라 정원 돌보고 가꿀 시간도 없지만, 애초부터 식물에 크게 관심이 없다보니 거의 방치된 정원이다.
그럼에도 가드너에게 따로 맡기지 않아 생울타리 산호수 웃자란 데다 앞뜰 펜스에 멋대로 덩굴 무성히 뻗은 부겐벨리아 줄기들 전지 하느라 며칠이 걸렸다.
그 외에도 마구 자란 정원수 다듬고 잡초 뽑아서 야드쓰레기 치우는데 또 몇 며칠.
한국 올 무렵, 수고 많이 한 엄마 대접한다며 굴요리 먹으러 모로 베이 갔다가 숙소 예약한 문스톤비치에 들어갔다.
캘리의 센트럴 코스트에 자리한 문스톤 비치(Moonstone Beach)는 캠브리아(Cambria)라는 아기자기한 도시 곁의 해변이다.
샌프란시스코와 LA 사이 중간쯤 되는 위치에 조그만 해안마을을 알차게 꾸려놓은 문스톤이다.
1869년부터 은광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숙박시설이 들어섰고 연달아 고래잡이가 붐을 이루면서 발전하기 시작한 소도시 캠브리아.
오늘날에는 목장과 농장, 포도원의 레스토랑, 부티크가 들어선 인구 6700명의 아담하고 예쁘장한 마을로 변모했다.
캠브리아 곁의 문스톤 비치는 투명하면서 우윳빛이 나는 문스톤을 찾을 수 있는 해변이다.
문스톤 비치의 또 다른 매력은 평화로운 전원 풍경과 마음 여유로워지는 아득히 펼쳐진 바다풍광에 있을 게다.
숙소를 나와 길만 건너면 곧바로 바다와 해안가를 따라 니무데크로 된 산책로가 나있다.
근처에 있는 파소 노블레스, 하모니라는 타운도 매력적인 이름에 끌려 들렀듯, 순전히 비치 이름에 혹해 문스톤을 택했다.
해변에서는 우윳빛 나는 반투명 보석인 문스톤을 줍기도 한다는 소문을 마침 들었던 차였다.
오팔 비슷하고 캣츠아이와도 닮았으나 그와 다른, 달빛 향연같이 은은하면서도 우아한 문스톤이다
내심 월장석을 만나는 행운이 따를지도 모른다는 은근한 기대감은 비치에 닿자마자 단번에 부서졌다.
하긴 어려서부터 또뽑기나 보물찾기 같을 걸 해서 걸린 적 없고, 복권을 산다거나 잭팟 터뜨리는 횡재 따위 해본 적 없으니.
여타 태평양 바닷가와는 달리 빛깔 칙칙한 모래사장 이마는 아주 비좁았다. 물때가 완전 만조에 이른 모양이었다.
간조가 되면 또 다른 모습 보여줄 테지만 여하튼 색색의 조약돌이 찍힌, 사기성 농후한 사진에 보기 좋게 당한 기분이 들었다.ㅎ
가득 차 묵직한 해면은 점잔 빼며 한유롭게 출렁거렸기에 해조음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해 꼴깍 지기 전에 서둘러 먹이 찾는 물새 몇 마리만 물가에서 종종걸음 쳤다.
이곳은 어느 해변에서나처럼 동글동글 윤나는 몽돌이 좌악 깔린 것도, 조개껍질 하얗게 쌓인 흔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파도에 조류가 떠밀려온 경우는 흔하나 여긴 모래벌판 끄트머리께 고사목 둥치와 나뭇가지가 밀려와 널브러져 있어 너저분했다.
신발 끝으로 굵은 모래를 이리저리 헤쳐봤지만 월석 비슷한 것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해안가에 나온 사람들은 거개가 고개 숙이고 땅바닥만 주시하다가 가끔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이게 뭣 하는 짓이람, 탁 트인 대양 바라보며 심호흡하거나 산책 즐기는 게 아니라 땅거지같이 바닥만 쳐다보고 걷다니...
태평양 너머로 해가 지는 늦은 오후 시각의 산책은 사색의 시간이어야 마땅함에도.
해변 걷다 보면 해조 더미들 숲 이룬 연안에서 귀여운 바다 수달을 만날 수도 있다는데 저물녘이어서인지 물개 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렸다.
사람 치사하고 추접게 만들기는 비치만이 아니었다.
보드웤을 따라 몬트레이 파인 나무그늘에 싸인 마을로 향하는데 온데 무 장다리꽃 흐드러지게 만발해 있었다.
한겨울임에도 겨자꽃 노랗게 피는 미 서해안에서 무꽃은 처음 봤다, 그것도 군락을 지어 길섶에 연보랏빛 주단을 아른아른 드리워놨다.
흔치 않은 너희들이 웬일이니? 반가움에 바짝 들이대고 사진을 찍다가 무성한 포기마다 싱그러이 너울거리는 잎새를 보았다.
동시에 체면불고 침이 꼴깍~연한 무 이파리 씻어서 삼겹살 구워 그 위에 척 얹은 다음 쌈장 곁들여 볼 미어터지게 먹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이런 이런...... 로맨틱한 이름의 문스톤에서 이 무슨 망발 플러스 주책이람.
소싯적 탐석 취미가 슬쩍 되살아나 작은 몽돌에 둥근달이 뜬 수석 하나 챙겼는데 이번엔 무지막지하게 식탐까지 발동했으니...
모두가 보고 즐겨야 할 자연, 환경 훼손이란 생각은 뒤에야 들었고 솔직히 쌈장만 있었다면 무 한 포기 잡아뽑고야 말았지 싶다.
해 질 무렵까지 몇 시간을 문스톤 해안가 이짝저짝을 폴짝거리며 누볐으니 시장기가 돌 만도 했다.
금강산도 식후경, 해가 바닷속으로 빠지자마자 엉뚱한 유혹 떨쳐내고 저녁부터 먹으러 갔다.
겨울철 내내 우기인 캘리포니아인데 해무만 밀려오는 해변 옆 식당은 아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