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적 생활과 풍습을 우리는 유물을 통해 읽는다. 그들이 문자 이전에 남긴 흔적만으로도 문화 정도를 파악하고 생활상을 연구할 수 있는 것이다. 언양에 있다는 반구대 암각화. 부산시립박물관 입구 맞은편 벽을 그득 메운 그 탁본을 본 순간, 첫눈에 그만 혹해 버렸다. 암벽에 한지를 대고 먹물 두드려 전체 그림을 뜬 대형 탁본이었다. 갖가지 짐승들을 선으로 윤곽 쪼아 표현해 낸, 천연스런 몸짓들을 실물로 만나보고 싶어 나는 안달이 났다.
7천 년 전 초기 석기시대에 형성된 유적지. 고대인들의 생활원으로서의 동물에 대한 깊은 관심과 숭배, 번식 희구 등을 나타냈다는 설명문이 내내 머릿속을 감돌았다. 지금은 물 아랫길을 막아 댐을 만든 까닭에 수장되어 있으나 겨울철 가뭄 때는 모습 드러낸다는 그곳을 찾기로 하고 섣달그믐 무렵 표연히 집을 나섰다. 지도를 보며 언양에서 다시 봉계행 버스를 바꿔 탔다. 그곳에 내려서도 대곡리까지는 근 십여 리 산길을 걸으라고 이정표가 일러줬다.
호젓하다 못해 휘휘한 바람 소리만 품은 겨울산. 이 산자락 어디쯤엔 사슴이며 멧돼지 쫓던 그 옛적 발자취가 낙엽 아래 묻혀 있으리라. 저 깊은 한천 어딘가에 알아들을 수 없는 그네들의 언어가 푸른 음표로 스며들어 있으리라. 까마득한 세월의 뒤편으로 사라져 간 선대들의 모습이 환영처럼 어렴풋 떠올랐다. 우우~ 외치는 함성소리도 들려오는 거 같았다. 돌도끼를 거머쥐고 산야 누비던 장쾌한 기상이 그대로 새겨졌을 암각화.
문득 손뼉이라도 치고 싶었다. 라스코나 알타미라 벽화가 제아무리 이름 높아도 어둠침침한 동굴에 들어앉아 횃불 밝혀 그려낸 그림이리라. 그에 비해 반공중에 솟은 절경의 석벽에다 그린 고래며 사슴은 실로 생동감 넘치며 또한 장엄하지 않겠는가 하면서. 강가 절벽에 새겨진 그림들을 연상하니 발길이 더욱 급해졌다. 드디어 골이 깊어지는가 싶더니만 거기 깎아지른 듯한 기암과 그 아래 감겨드는 맑은 강물 도도했다. 반구대였다.
소백산맥 줄기라는 주변 아름다운 산수의 조화에 빛 부셔하며 눈 가늘게 뜨고 석벽 그림을 더듬어 찾아봤다. 그러나 응당 있을 줄 알았던 동물의 모습은 찾을 길 없고 盤龜臺라 새긴 굵은 글씨체만 도드라지게
드러났다. 옛 강물 흘러 흘러 동해로 숨듯 그때의 그림은 오랜 세월에 풍화되어 간 곳 없어진 걸까. 그러나 근처 주민에게 물으니 여기서도 한참 더 물길 따라 들어가야만 예의 그 암각화가 있다는 것이다. 盤龜臺 석벽은 겨우 대곡동 초입이었다.
이미 설핏하게 기운 해. 돌아갈 길 짐작만으로도 마음 바쁜 터. 그렇다고 그냥 돌아서기엔 너무 아쉽고 미진했다. 마침 거북이 몸체와도 같은 반구대 비경 앞에 정몽주 선생의 귀양처였다는 조그만 고택이 보였다. 한창 보수 공사 중인 和義門에 들어서니 별채 역시 맥질하느라 진동하는 황토 냄새. 역사 저 너머로 義人은 떠났어도 이름 후대에 남아 의로운 기준 하나 세웠으므로 더불어 빛이 되는 궤적인가. 잠시 두 손 모두고 고개 숙여 예를 올렸다.
그곳에서 맥빠진 발길 추슬러 쉼도 잠시, 서둘러 온 길 되짚어 걸어야 했다. 길섶 황소 한 마리 느긋이 누워 새김질하며 무에 그리 화급하냐는 듯 넌지시 날 바라본다. 그 선한 눈길에 거듭 그려지는 암각화. 조바심 내며 그리던 그 그림은 물길 저 아래 두고 상고의 옛 시절부터 의연히 자리 지킨 반구대에 나직이 손 흔들었다. 머잖아 다시 찾아오마, 암! 다시금 오고말고.
오래 연모했던 님과의 해후를 기대하며 설레는 흥분기 지그시 누르고 찾아온 이곳. 암각화와의 조우, 비록 시간의 제한에 묶여 우리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언제이고 꼭 마주할 수 있는 날 있으리라. 수수만년 풍상에도 끄떡없는 유형의 흔적으로 남아 있거늘 앞으로의 세월인들 나를 기다려주지 않으랴. 그러나 돌아오면서 내동 툴툴거렸다. 아쉽고도 아쉽도록 겨울 해는 어이 그리 짧은지....... 1987
그로부터 삼십 수년이 무심히 흘러갔다. 미국에서 돌아온 뒤 한번은 반구대에 가봐야지 벼르다만 말았다. 여전히 접근성 취약한 지역으로 인가조차 드문 한적한 산골짝이라는 위치상 교통이 불편해서다. 그러다 제주섬에 내려와 산지 오 년째로 접어들었다. 언젠가 뉴스에서 반구대 암각화가 집중호우로 수몰 상태에 처해있다고 하였다. 전에 갔을 적에는 물이 적었지만 평소에도 간당간당했다는 수위. 암각화 장소가 태화강 지류인 대곡천 중 사연댐 상류에 위치해 있어, 강수량이 늘어나는 철에는 대곡천 수면 아래 잠기는 환경에 놓여 있단다. 사연댐 수위가 52m일 때 암각화의 침수가 시작되며, 57m가 되면 완전히 잠긴다고.
사연댐은 울산광역시의 공업용수와 식수 공급을 위해 만들어진 댐으로 2005년 대곡댐이 건설되면서 암각화 침수피해는 다소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침수와 노출의 반복으로 풍화가 가속되어 그림이 스러져가고 있다니 안타깝기 그지없었지만 그 뉴스는 금세 다른 뉴스에 덮여버렸다. 올여름 어느 날 한반도 선사 문화의 걸작인 반구천 암각화가 드디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는 낭보를 접했다. 국내에서 가장 잘 사는 광역단체인 울산시가 큰 경사를 맞은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첫 번째로 해가 뜨는 도시, 울산의 상징이 된 고래도시에서 세계유산 도시가 된 이참에, 위상에 합당한 행정적 지원이 뒤따라야 하련만. 그럼에도 반구천 암각화가 이처럼 자랑스럽게 세계유산이 됐음에도 차량 교행조차 어려운 도로사정에다 턱없이 부족한 편의시설 등 별반 달라진 게 없다고 한다. 관련 단체들은 서로 보존 방안을 두고 갈등을 지속하고 있다더니 세계유산에 걸맞은 보존 대책과 기반 시설 정비가 지금은 나아졌는지 내심 궁금 하다.
장욱진 화백의 화풍을 연상시키는 그림이 그곳에 있을 터다. 고래의 종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그림이 사실적이라 범고래 대왕고래 참고래 외 거북이 같은 다양한 바다 생물들이 노닐고 있는 언양 반구대는 선사 및 역사시대 암각화의 보고다. 200여 점이 넘는 사람과 짐승, 각종 수렵장면을 그린 암벽화가 처음 모습을 드러내자 미술사학계로부터 크게 주목받았다. 동물들만이 아니라 탈을 쓴 무당, 짐승을 쫒는 사냥꾼, 배를 타고 고래를 잡는 어부 등이 묘사돼 있으며 그물이나 배의 형태도 제대로 표현됐다고 한다. 작살이 꽂힌 고래, 그물에 걸린 고래, 물을 뿜는 고래와 고래 잡이 광경이 구체적으로 정밀하게 그려져 있어 당 시대의 생활상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사료로서의 학술적 가치가 인정돼 1995년 국보 제285로 지정됐다. 1971년에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이곳을 알게 된 건 부산박물관 로비에서다.
원래 역사 쪽에 흥미가 있던 터라 80년대 중반, 박물관학회 강좌에 나가면서 조우했던 반구대 암각화 탁본. 보자마자 쩌르르 전율이 느껴지며 자리에서 쉬 떠나질 못했다. 첫눈에 단박 홀려버릴 만도 했다. 동물들은 하나하나 살아있는 듯 생명력 있게 표현돼 있었으며 사물마다의 특징이 실감 나게 새겨진 암각화였다. 종교미술로서도 가치가 높아 선사시대 사람들의 신앙관과 풍습을 알 수 있는 최고 걸작품으로 평가받을만했다. 야산 경사지에 서있는 암벽에 바다동물과 육지동물들을 사냥하는 장면이 무려 300여 점의 선화로 남겨져 있다니 실제로 보면 얼마나 장쾌할까. 단단한 석기로 그림의 윤곽을 새긴 후 내부를 고르게 쪼거나 긁어낸 면새김 방법, 윤곽과 동물의 특징적 요소를 선과 점으로 새긴 선새김 방법을 사용했단다. 면새김 방법은 신석기시대의 수법이며 선새김 기법은 청동기 시대의 방법으로 추정된단다. 고대인들이 고래사냥하던 현장으로 추정되는 유적지로, 세계 최초의 포경 장면이 담긴 암각화란다. 해양 동물은 좌측에, 육지동물은 우측면에 배치되 있다는데 실제 벽화를 손끝으로 더듬어보고 싶었다.
반구대를 처음 찾았을 때는 초겨울. 물어 물어 가는 초행길이라 길도 낯선 데다 인적 드문 시골길은 무척 적막했다. 시간이 늦어 그나마 목적지를 제대로 찾아볼 염도 낼 수가 없었다. 몇 년 지나 가족과 함께 갈 때는 정보가 보충돼 일부러 갈수기를 택했다. 가뭄으로 물이 말라 강줄기가 실개천으로 변해버린 터라 아주 쉽게 물을 건너 석벽 아래 설 수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관리가 소홀해 주변은 잡초만 무성했으며 탁본에서 본 느낌보다 희미한 암각화라 감동치는 영 낮았다. 초등생인 딸내미가 키우던 푸들도 데리고 갔는데 녀석이 모랫벌에서 천방지축 뛰어다니던 생각이 난다. 그때의 인연 혹은 영향일까, 지금은 딴 길을 걷지만 그 후 딸은 고고학과로 대학 진학을 했다. 우주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어느 것도 홀로이 따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였으니 이 모두가 인연의 귀결인가. 정몽주선생을 모신 반구서원은 이때도 문이 닫혀있었다. 지금은 많이 변했을 반구대, 청명한 가을날 다시 그곳을 찾으려 했다. 선사시대 절벽에 새긴 그림 만나러, 이 가을 한 번 더 길 나서리라 했는데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반구대 암각화가 유네스코에 등재되며 영남알프스인 간월재, 선바위, 간절곶, 진하해수욕장, 서생포왜성, 외고산옹기마을 등을 아울러 울산관광벨트화 작업을 추진할 모양이다. 수많은 절벽과 협곡, 습지가 자리한 천혜의 경관 수려한 반구대 절경지인 반구천 일원은 2021년 국가 명승으로 지정된 곳이니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백악기 공룡 발자국과 집청정, 반구대 등과 포은 정몽주의 시를 비롯 겸재 정선 그림의 배경이 된 조선시대 문화유산이 어우러진 지역이라니 관광 코스로 충분하다. 반구천 암각화는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두동면 천전리 명문 및 암각화 등 두 개 바위그림을 포함하는 문화유산이다.
그 코스만 따라걸어도 능히 걷기 길 훌륭하게 만들 터. 작명만 잘 하면 올레길에 비기랴. 이에 은빛 갈대 능선 멋스러운 간월재며 새해 첫날 해맞이 명소로 자리 잡힌 간절곶이며 동해 푸르른 여름바다 진하해수욕장과 외고산옹기마을 등 낯익은 이름들이 거론되고 있으니 이 아니 반가울쏜가. 겨울 지나면 육지에 나가 울산을 두루두루 들러봐야겠다.
-모든 사진은 구글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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