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죽 사설

2006

by 무량화


친구가 두고 간 쇼핑백 안에 파이렉스 그릇이 들어 있다.

그대로 전자레인지에 덥혀 먹으라고 닭죽을, 칼국수를 가게로 들고 오는 친구다.

오늘은 호박죽이 담겨 있다.

이심전심인가. 그날따라 언짢은 일이 생겨 성질이 잔뜩 나있었는데 마침 잘 됐다.

예로부터 골난 사람 성을 풀게 하려면 호박죽을 안기라 했듯이.

미색 잔잔한 꽃무늬가 빙 둘러 그려진 투명용기 안에 부드러이 고인 노란빛.

불현듯 시장기가 든다.



아주 오래전 장안의 화제가 된 방송 프로가 있었다.

의학 이론을 실생활에 접목시킨 명강의로 건강 전도사란 별호가 따랐던 달변의 의학박사.

요즘이라면 인터넷에서 필요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지만 그 당시 보편적인 의학 상식 외엔 접할 수 없던
일반 대중에게 유익한 건강 정보를 제공해 준 그의 TV 특강은 대단한 인기였다.

특히 그는 마음의 평화가 건강의 기본임을 누누이 강조했다.

사랑과 감사, 기쁨과 희망을 지닌 마음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난다는 신비의 호르몬 엔도르핀은 그 이후 아주 친근한 단어가 되었다.

면역성과 저항력을 기르고 백혈구 중의 T 임파구를 생성시킨다는 엔도르핀이다.

이 호르몬 외에 T 임파구를 강하게 하는 것은 순수한 물과 자연식품 섭취란다.

혈관을 타고 돌면서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격퇴시키는 T 임파구는 반대로 기름기 있는 음식을 제일 싫어한다는 강의 내용이 삽시간에 골목골목 번졌다.

한국인들의 냄비 기질에 편승, 한동안 채소류가 불티나게 팔렸고 푸줏간이 심한 타격을 입을 만큼 식생활 전반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당시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구이 김이 새로이 등장하던 시기였다.

일회용으로 포장된 맛김은 도시락에도 안성맞춤이었다.

가뜩이나 인스턴트식품의 범람시대를 살아가는데 김까지 즉석구이 김이라?

가공식품 접할 기회를 우리 아이들에게만은 가능한 한 줄여주고 싶었다.

아이들은 마뜩잖아했지만 고집스레 줄곧 들기름에 고운 소금 바른 김을 손수 구웠다.

요즘도 차라리 생김을 그냥 불에 쪼여 먹는 편이 낫지 맛김은 별로 내키지 않는다.

날로 늘어가는 패스트푸드점에 온갖 죽 종류며 햇반이 보편화된 세월에 홀로 독야청청, 시대를 역행하는 그 자체가 비합리적이고 촌스러운 발상일지 모른다.



태생은 어쩔 수 없는 것, 근본이 충청도 촌사람이다.

그 까닭에 아이들은 청량음료 대신 숭늉을 가까이했고
라면보다는 차라리 감자 수제비를, 켄터키 치킨보다는 삼계탕을 자주 먹었다.

어느 날 슈퍼마켓에서 맛없는 국수인 라면이 박스 째로 팔리는 걸 보고 딸은 깜짝 놀랐으니까.

그만큼 인스턴트 음식을 경원시하는 엄마로 인해 성년이 된 지금도 입맛이 꽤나 토속적인 딸이다.

김치는 언제 어디서나 기본이고 된장찌개가 식탁의 당연한 주빈.

미국살이 몇 해째임에도 여전히 세끼 빠짐없이 밥을 챙기는 나를 닮아 딸내미도 양식이나 빵으로 끼니를 때우지 않는다.

입맛 당기는 대로 간편히 사 먹으면 해결될 수 있는 한 끼다.

그럼에도 준비하고 차리는 번거로움 마다하지 않으며
우리 고유의 전통음식에 매달리는 이유는 도통 바뀌지 않는 식성 탓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나는 가끔 식혜나 약식을 만들어 주곤 했다.

물론 아이들은 산뜻하게 톡 쏘는 청량음료나 오렌지 주스를 더 선호하고 근사하게 포장된 양과를 더 좋아라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종종 나는 식혜를 만들었다.

불길로 온도 조절하며 정성 쏟지 않아도 전기밥솥이 저 혼자 알아서 식혜를 잘도 삭혀주니 예전처럼 번거로운 일도 아니었다.

생강 내음 은은한 데다 살얼음 살푼 뜬 식혜에 실백 몇 개 띄워 운치 돋운 마실 거리를 책상 위에 건네주면서 보리를 싹 틔워 사용할 만큼 슬기롭던 조상 얘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허를 채우는 찹쌀의 끈기에다 보약제에 들어가는 대추 밤에 호두 잣으로 깊은 맛을 더하는 약식 역시 더러 만들었다.

고명으로 얹는 대추채와 석이로 축하의 뜻이나 壽 福 무늬를 새기고 꽃도 피어나게 하여 품격을 보태주곤 하였다.

사실 공예품 세공하듯 꾸며놓은 양과에 감탄 보내지만
색색이 부풀어 오른 바삭바삭 산자며 흑임자 송화다식에 들어간 정성과 수고에 필적하리.

화려한 양식 차림 못지않게 배색 훌륭한 신선로에 구절판뿐인가.

반달 따다가 솔잎 향 섞어 빚은 송편에 점잖기가 선비 같은 증편, 오색 무지개떡만으로 생일 케이크 다디단 맛을 제압하진 못하는 건 왜일까.



공자께서도 음식은 맛으로 먹지 말고 정성으로 먹으라 하셨다.

엄마의 정성이 가미된 음식은 사랑을 먹는 것이리라.

그에 비해 잘 계산된 경제 개념이 앞서는 패스트푸드나 가공식품은 단순히 위를 채우는 먹거리가 아닌가.

세상이 점점 각박하니 황폐해지는 이유 중 하나도 거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란 성서 말씀처럼
사랑이 빠진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져 체력이나 면역력은 약해지고 심성은 거칠어져 만 가는 건 아닌지.

그렇게 점차 간편하고 빠른 것만을 추구하다 보니 모든 면에서 과정은 없고 결과만 존재할 뿐인 시대가 되어가는 지도.

무릇 병은 마음에서 온다 하였다.

마음에 기쁨과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은들 진정한 건강의 균형은 이루어지지 않는 법.

사랑을 주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에서 저절로 엔도르핀은 생성된다고 하지 않던가.

그 엔도르핀은 저항력을 키우는데 중요한 T 임파구를 활성화시킨다 하였으니 무엇보다 영적인 안녕을 유지시킬 일이다.



호박죽을 앞에 두고 사설이 길어졌다.

순 토종에 재래식인 내 입맛을 친구는 익히 아는 터.

자연의 정기를 담뿍 안아들이며 덕스레 잘 자란 호박이다.

미각을 자극하는 노오란 빛이 곱다란 데다 삶은 팥 알맞게 넣고. 잘 저어 끓여낸 호박죽에 대추채 고명으로 올렸다.


호박죽은 아주 구수하니 달큰했다.

딱 제철 음식인 호박죽 안에 늦가을 온화한 햇살이 가득 들어차 있는 듯하다.

그 가을볕만큼이나 친구의 정이 따스히 안겨든다. 2006-미주 중앙 뉴욕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