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섣달그믐날.
동쪽으로 길 잡아 성산 일출봉에 올라갔다가 비자림 다녀서 왔습니다.
약 5천 년 전 얕은 바다에서 솟구쳐 일어난 수성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가파른 산세 장엄스러워 제주 관광 특구인 데다 특히 강한 양기를 품은 성산일출봉.
측제로 붐비는 서귀포 성산을 벗어나 다시 차에 올라 제주시로 접어들자 아니나 다를까 하늘에 구름이 가득 끼기 시작하더군요.
비자림은 안개 깊거나 비오는 날도 일기 상관없이 전천후로 방문할만 한 곳이라 개의치 않았어요.
새천년 비자나무를 비롯해 비자림에는 500~800년생 비자나무들이 2천여 그루 자생하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장소로,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숲길을 거닐다 왔는 데요.
왠지 그래야 할 거 같고 그러고 싶었거든요.
정결하게 치르고 싶은 나름의 송년 의식이랄까요.
일출봉에 응축돼 있는 오 천년이란 유구한 일월 잠시 묵상도 해보았고요.
천년 세월이 스며든 비자림에서는 내면을 바라보며 성찰의 시간을 가져봤네요.
원래 일출봉은 밝은 기운 받고자 자주 오르는 곳.
새해 광휘로운 일출을 기다리며 개최되는 제 33회 성산일출 전야제 축제 한마당으로 분위기 꽤 떠들석했어요.
오후 두 시부터 길트기 풍물놀이를 시작으로 일출봉 초입에선 축하공연 흥을 돋우고 자정엔 불꽃놀이도 마련돼 있다고 하네요.
하여 일출봉 대신 꽤 오래 머문 곳은 비자림.
신선한 숲 향 심호흡하면 푸른 생명력 전이받는 듯한 그 느낌이 아주 좋았어요.
영혼은 물론 세포 낱낱이 새롭게 맑은 기운 충전받는 기분이었으니까요.
수도승이 홀로 심산유곡이나 외진 사막으로 들어가는 이유를 알듯도 하더군요.
휘적휘적 더러는 성큼성큼 걸으며 비자림에서 오후 시간 보내고 왔더니요.
천년 숲 향 테라피로 심신 두루 쇄락해져 더할 나위 없이 심신 흔쾌합니다.
자유로움과 평화, 이에 더 무엇을 원하리이까.
예전처럼 연하장 여기저기 띄울 일도,
인사치레 꼭 차려야 할 사람도,
만나서 갚아야 할 말빚도,
그 어떤 매임이나 구속도 없다 보니 이리도 홀가분하고 편안한 것을.
연륜이 겹 쌓인 나이테가 그래서 고맙고 좋은 거지요.
거처 말끔히 청소해 정리정돈한 뒤 목욕재계하고 나면 새해맞이 준비 완료.
내일 새벽 일출 보려면 일찌감치 꿈길 나들이 가야겠지요.
모든 분 송구영신!
happy new year!
"우리는 누구나
홀로 떠있는 섬과 같습니다
못난 섬
멀리 내치지 않은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경한규의 송년시 <가는 해 오는 해 길목에서> 일부로 갈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