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태양, 이 기운 오롯이 받으옵소서

by 무량화

일출 명소는 서귀포 전역에 걸쳐 있는데요.

굳이 성산 일출봉까지 달려가지 않더라도요.

거처에 앉아서 섶섬 옆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을 영접하던 재작년과는 상황이 달라져 버렸어요.

앞쪽에 고층건물이 들어서는 바람에 조망권을 놓친 거지요.

미루나무 높직한 가지에 둥지 튼 까치가 눈앞에 새로 깃든 까치집 걸리적거린다고 이를 탓하리까.

좋은 전망이라는 특별 시혜 대신 이제는 법환포구나 자구리 해변으로 나가야 해맞이를 할 수가 있지만요.

하긴 생각하기 나름, 오히려 감사한 일이지요.

가만 앉아서 하던 해맞이를 이젠 찾아가서 해야 한다는 것.

이는 건강 위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습관을 독려하고자 함이며, 더 부지런히 걸으라는 뜻인 거 같아요.

달마중이란 말이 있으니 공평무사하게 해마중도 있어야겠지요.



새벽 여섯 시, 시산제를 지낸다는 산악회 팀과 일호광장에서 남원으로 출발했답니다.

삼십여 분 후 어둠살 가시지 않은 산자락에 닿았는데요.

그렇게 서귀포 남원 이승악 전망대에서 병오년 첫 해돋이를 기다렸답니다.

겨울 날씨답게 무척 차가운 새벽 기온이었지요.

바람도 거셌구요.

서쪽으로 서귀포 시가지와 섶섬 문섬도 아슴아슴 보였어요.

동쪽 저 아래로는 차도 따라 가로등과 남원포구 불빛이 떠오르더군요.

머리맡 나목 사이로 동짓달 열사흘 새하얀 달 고즈넉이 걸려있었습니다.



7시 38분에 해가 뜬다고 했지만 수평선 위로 구름이 주욱 깔려있어서 웅자를 쉬 드러내진 않았어요.

불그레 번지는 여명으로 보아 곧 햇덩이가 떠오르리라, 두근거리는 기다림 무색하게 해수면 위로는 구름띠 가득했지요

햇머리가 보이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십분 후.

찬란한 빛무리가 쑤욱 올라오더군요.


아주 잠시였어요.


그리고 다시 구름장에 장악당하는 하늘.


전망대에 올라 제상을 대신한 신문지 위에 제물을 진설하고 제주를 올리고 2분 가까이 걸리는 시산제 축문을 읊는 동안 분위기 자못 경건했지요.

시산제를 마칠 즈음 우리 일행은 새로운 태양과 순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광휘로운 빛이 온누리에 번졌습니다.

새해 새 아침의 태양, 이 기운 오롯이 받으옵소서!

이때야말로 당연히 저의 둔필 거두어야 되고 말고요.

해돋이 시조의 백미인 조종현 선사가 남긴 시로 대신하겠습니다.



천지 개벽이야

눈이 번쩍 뜨인다



불덩이가 솟는구나

가슴이 용솟음친다



여보게

저것 좀 보아

후끈하지 않은가.



은빛 보관을 쓴 백록담은 구름 베일에 가리어졌지만 그래도 아슴한 한라산 자락과 마주한 게 어딘가요.

하산길은 수월했어요.

올라올 적엔 어두워서 길이 잘 안 보였지만 이땐 열 시 가까운 시각.

차도에 내려와서 이승악 안내도를 사진에 담고 중앙로터리에 당도하니 푸짐하게 김 오르는 매생이 떡국이 기다리더라구요.

새해 덕담과 함께 나눈 건배사며 인삼주 향긋한 풍미도 근사했어요

굴이 듬뿍 든 떡국은 맛깔스러웠고 처음 시식해 본 돼지머리도 쫄깃했네요.

한상 가득 음식 준비한 손길에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