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받기

by 무량화


생애 세 번째다.


누구로부터 위로를 다 받다니.


힘들어 지쳤을 때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 지나 보다.


하필이면 괜스레 쫓기듯 바쁜 연말, 우연찮게 일을 하나 벌려놨다.


국가 문화재단에 창작활동 지원공모 신청서를 접수시키는 절차는 퍽 까다로웠다.


연월일 정확하게 맞춰가며 경력 따위 세세히 기입하는 사업계획서 작성 작업도 시간 꽤나 걸렸다.


전에 해본 작업이나 계속 사용하지 않으면 잊고 마는 기능들, 기계치에게는 사진 파일 첨부조차도 녹록지 않았다.


하필이면 마감일이 바쁜 연말과 겹쳐 더 부담감으로 작용, 심리적으로 압도당했던가.


암튼 청동투구라도 쓴 양 머리 조여왔고 오후가 되자 갑자기 두뇌활동이 정지된 듯이 번아웃 상태에 빠져버렸다.


에너지가 고갈되며 기력이 바닥나 말 그대로 기진맥진 녹초가 된 날.


활자공해 시대, 왜 또 숟가락 얹을 생각을 하게 됐는지?


스스로 자초한 일에 어이없어하며 노추에 다름 아닌 짓 두 번 다시는 시도조차 하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했다.


괜스레 부질없는 노역 자초해 일을 벌여놨다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시작을 이미 했으니 그간 들인 공력 아까웠으며 중도포기도 중뿔난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렇게 엉겁결에 다시 책 출간 프로젝트에 말려들어 꾸역꾸역 서류를 작성해 나갔다.


지금은 온라인 세상이다.


90년대처럼 서류 일체를 수기(手記)로 작성해 방문 접수할 경우 아무런 난관이 없었지만 지원 신청부터 인터넷상에서 이뤄져야 한다.


국가시스템 누리집에 접속해 회원가입 후 로그인하고 지원신청서 최종 제출하기까지 몇 번이나 머리에서 쥐가 났다.


젊을 때와 달리 나이 지긋해 받는 과중한 스트레스는 회복탄력성이 떨어지다 보니 벗어나기가 쉽잖았다.


과부하에 걸려 며칠간 그로기상태로 시난고난.


그런 때 누군가 이웃에게 SOS를 쳐야 했다.


힘에 부칠 정도로 버거운 하루였다는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고 위무받고 싶었다.


친구는 그래서 좋은 것, 그간 힘들었던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따뜻한 벗 나아가 말이 통하는 벗이 가까이 있다는 게 고맙기 그지없었다.


친구가 건네는 공감의 말 한마디, 어깨 다독여주듯 한 성원의 표정만으로도 마음결 다스려지고 어깨 긴장도 가벼이 풀렸으니까.


칭찬과 격려와 성원의 마음을 담은 말 한마디나 메시지 한 줄에 감동은 물론 새로운 힘을 받는 우리다.


그렇다, 이웃 누군가가 힘겨워할 때 나 역시 말없이 그의 손을 잡아주어야 하리.


힘들고 어려운 그 순간의 친구에게는, 진심 어린 공감의 고개 끄덕임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때 그 마음을 깊이 헤아리고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경청이 선행되어야 하리니 조용히 귀만 열어두고.



몇 년 전 추석에 또 한 번 위로를 받아봤다.


뜻밖에도 생판 남, 그것도 별로 탐탁잖게 여기던 이에게 위로를 다 받다니...


물론 나 혼자가 아니라 대한민국 온 국민이 대상이었다.


코로나 정국이 길어지며 너나없이 피로감이 깊어진 데다 시국마저 가관이라 대다수가 힘들어하며 지쳐있는 판국이다.


이래저래 무력감에 빠진 국민을 위로하고 다시 한번 힘을 내자는 취지로 마련된 한가위 대기획으로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가 방송됐다.


“우리는 지금 별의별 꼴을 다 보고 살고 있다”란 가수의 말이 진하게 공명되며 자연스레 콘서트에 집중하게 됐다.


“이왕 세월이야 흐르는 거, 우리가 끌려가면 안 된다.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야 한다"라는 말에도 깊이 공감했다.


언택트로 진행된 공연을 보면서 오래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이십 수년 전, 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위로받는 입장에 서게 됐다.


것도 단체로 위안받는 자리다.


아는 이가 디너쇼 티켓을 구했다며 고가의 표 두 장을 주기에 퇴근 후 요셉과 필라델피아로 향했다.


프랭클린 다리를 건너 도착한 연회장은 한인들로 북적였다.


멋들어진 디너파티나 '그때 그 사람'을 부른 카수를 보기 위함이 아니라 색다른 구경감이 없을까 하던 차라 걸기대 하고 간 것이다.


이민 와서 미국식 결혼식장이며 아기 돌잔치에도 가보고 병문안 자리, 개업 축하 자리에도 가보고 장례 뷰잉의식에도 참석해 봤다.


성당에서 올린 통상 결혼식에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신부 들러리가 한둘이 아니라 일곱에서 아홉 명, 거의 떼거리로 많다는 점.


축하 리셉션 장소에서 반드시 댄스파티가 벌어진다는 점, 해서 신부 아버지는 < 마지막 춤은 아빠와 함께>라 딸내미와 사전에 댄스 연습을 해야 한다는 점 등...


장례식은 교우들로 해서 여러 차례 갔었다.


영결식 전에 필히 뷰잉이라는 절차가 따르는데 그때 관에 누운 망자와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게 된다.


사자는 평상시 아끼고 좋아하던 옷차림에다 화장을 하고 평화로이 잠자듯 누워있었다.


그러나 디너쇼 참석은 난생처음이다.


유행가 카수의 비싼 디너쇼 티켓까지 살 위인은 결코 아닌 나.


친구 따라 강남 간 격으로. 시간 맞춰 디너쇼 장소에 도착했다.


풍선이 줄줄이 엮인 행사장에는 떠억하니 현수막이 걸렸는데, 교민도 아닌 청승맞게시리 <동포 위안의 밤>이라나.


연말이 되면 미 곳곳에선 이런 자리가 마련된다고 하는데 이민 일 년 차인지라 당연히 처음 와봤다.


교민들은 그간 서로 생업에 바빠 못 만나던 친지와도 만나 식사를 함께한 다음, 여흥으로 댄스파티를 즐기도록 짜인 프로그램에 따라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얼음 조각이 빛나는 가운데 교민 학생에게 장학금이란 것도 주고, 칼질 대신 순 한정식으로 디너도 들고, 카수 노래도 새새로 듣고, 질펀하게 탱고에 블루스 트위스트까지 추어대는 춤판도 구경하고....


교민사회 사교 모임에선 으레 춤을 추는 걸로 되어 있는 게 한국과 다른 이곳 교민들의 생활 풍속도,


하긴 다들 그런 건 아니고 일부는 이브닝드레스나 백구두 빛 볼 수 있는 송년의 밤을 기다리며 사는 전문 춤꾼도 있다는데....


한국에선 남편 친구들 모임 따라 카수가 나오는 나이트클럽에 가본 적은 있으나 가수 이름을 단 디너쑈니 하는 건 가볼 맘이 전혀 내키지 않았지이번은 거저 얻은 티켓 가지고 퇴근 후 찾은 자리다.


어쨌건 처음 시작은 그래도 근엄했다.


식순에 따라 애국가 합창도 경건히 따라 불렀고 그다음 미국 국가도 이어졌다.


행사 준비 위원 누구누구가 나와 일장 연설도 했고 장학금 수여식도 점잖게 진행됐으며 그다음 순서는 교민 위안의 다채로운 여흥시간이 마련됐다.


오픈은 요란스러운 무대조명을 받으며 입담이 좋다기보다 음담패설에 능한 젊은 여자 진행자가 펼치는 저질 수다로 출발했다.


그때 그 사람의 카수는 아이들 교육 땜에 뉴저지에 사는 터라 한국에서 섭외해 데려오는 연예인보다 경비가 적게 든다나 어쩠다나 해서 아무튼 그날 그 무대에 섰다


크게 히트한 그녀의 곡이 계속 어어졌고 새로운 노래, 무궁화가 피었다나 뭐라나 하는 노래도 불렀다.


대체로 애조 띤 음색에다 가사까지 찡하니 구슬펐다.


외국에 나와 살면 저마다 애국자가 된다 하였던가, 무궁화 노래를 듣는데 갑자기 눈자위가 뜨거워졌다.


당시 황당한 국내 소식에 자못 가슴 저리던 터였고 게다가 뉴스에선 노스 코리아가 자주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를 제대로 못 알아들으니 정확한 건 모르나 위조지폐 문제와 관련된 내용인 듯...


암튼 살다 보니 내참 알랑궂게도 졸지에 위안받는 동포가 다 되어봤다.


하여지간, 그나마 살면서 크게 위로받을 위치에 선 적 없음에 깊이 감사하며 세 번째 위로를 그렇게 받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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