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 다 1.5의 양호한 시력이었다.
사십 후반, 수첩에 깨알같이 써넣은 전화번호를 읽어내지 못했다.
얼핏 비애감 같은 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 이전에 이미 사전 찾기가 거북해지더니 약병의 글씨는 아예 덩어리 져 구분이 안 됐지만 그냥 무시하고 지냈다.
허나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결국엔 안경을 맞췄다.
불편해서 꼭 필요한 경우에만 썼다.
돋보기 도움 없이는 책이나 신문 읽기가 곤란한 건 그처럼 한참 전부터의 일이다.
나이 들수록 노안으로 시력은 더 떨어졌다.
어쩔 도리 없는 노릇이었다. 세월 탓이니 감수할밖에.
하긴 컴퓨터에 과하게 매달린 터라 그 영향도 있을 테고,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을 겪은 뒤 현저하게 눈이 더 나빠진 걸 느꼈다.
또다시 도수를 올려 안경을 맞춰야 할 판이다.
그간 한국 나갈 적마다 시력검사를 다시 하고는 안경 도수를 높이곤 했다.
해서 그럭저럭 쓸모없이 굴러다니는 안경이 여러 개다. 시효 지난 약 봉다리처럼.
얼마 전 여행 중의 호텔 욕실에서다. 똑같은 모양의 자그마한 병이 세 개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살펴보나 마나 샤워젤과 샴푸와 헤어 컨디셔너일 터였다.
그날따라 무더운 날씨에 사막 지역을 건너는 일정이었다. 당연히 땀범벅이었다.
급히 샤워기를 틀었다. 머리를 감으려니 먼저 샴푸부터 필요했다.
대체 어느 것이 샴푸람?
줄줄 흐르는 물기를 걷어내며 눈을 치뜨고 아무리 들여다봐도 병에 쓰인 잔 글씨를 확인할 재간이 없었다.
하다못해 첫머리가 S자인지 C자인지 구분만 되어도
샴푸를 골라내련만 잘디잔 글씨체라 그마저 식별 안 되는 상황, 답답했다.
그러나 궁즉통, 막히게 되면 통하는 길이 나선다.
별 수없이 차례대로 뚜껑을 열고는 내용물을 손바닥에 덜어본 다음에야 샴푸를 구별해 낼 수 있었다.
매끄러우니 저건 컨디셔너이고 거품이 나는 이게 샴푸군.
번거롭고 어설픈 절차를 거친 다음에야 겨우 머리를 감을 수 있었다.
한심스러운 기분이 드는 그 순간,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아, 나는 얼마나 인정머리 없고 무뚝뚝하니 쌀쌀맞은 딸이었던가.
지금 다시 그 상황이 재연된다면 '엄마, 이건 샴푸야' 하며 샴푸통에다 구별하는 표시로 고무줄이라도 동여매 놓을 텐데.
이십여 년 전 이민 초기, 처음 해보는 고된 일에 적응이 쉽질 않아 노상 시난고난 힘겨워할 때였다.
나이 들어 훌쩍 한국을 떠난 막내 딸네 궁금해 엄마가 미국에 오셨다.
당시 여든이 훌쩍 넘은 연세에 열네 시간 비행기를 타야 하는 무리한 여정 마다하지 않고 오신 엄마였다.
그럼에도 난 일에 찌든 피곤한 심신이라 저녁이면 녹초가 되어 사근사근 얘기조차 못 나눴다.
오랜만에 딸을 보려고 먼 걸음 하신 엄마는 이런저런 얘기 두런거리며 밤 이슥도록 나누고 싶었으련만.
도무지 나라는 인간은 엄마와 다정스레 마주 앉아 대화를 주고받거나 손을 잡고 정겹게 마을길 걸어본 적이 있기나 있었던가.
밥상머리에서 찬찬히 생선 살을 발라 건네봐 드린 적이 일찍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가슴이 아려온다.
본시 곰살궂고 살가운 성격은 아닌 딸일지라도 그때 최소한 챙겨드려야 할 것이 있었다.
미국 오셔서 바로 목욕을 하는 엄마에게 샴푸와 린스 정도는 제대로 알려드렸어야 하는데 그 배려조차 못한 나. 아니 그런 생각조차도 안 해본 나.
시력도 시력이지만 엄마는 영어를 모르는 노인네인데.
아마도 엄마는 그때, 여행지에서의 나처럼 거품 나는 건 샴푸, 매끄러운 건 린스, 손바닥에 덜어본 다음에야 성분을 헤아리고 사용했을 것이다.
후회막급, 그밖에 수없이 많은 잘못한 일들이 줄줄이 떠오르며 가슴 먹먹하게 한다.
자꾸 눈가가 뜨거워진다. 미안해요 엄마, 모든 거 다 죄송해요 엄마.
섣달그믐으로 향하는 달은 어쩌자고 또 저리 휘영청 밝아 맘 시립게 하는지....
-그래서 요즘 딸내미로부터 툭하면 핀잔 듣고 지청구 먹어도 '그래, 난 당해도 싸다 싸!'라며 아무렇지 않게 넘긴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