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롯 가왕이라면 중후한 나훈아를 이를 텐데 어린 찬원이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이 풍진 세월을 위로한다며 한가윗날 나훈아 어게인 콘서트가 열렸던 이바구를 슬슬하고자 한다.
그러자면 자연스레 소환될 수밖에 없는 찬원이, 그가 트롯과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 때문이다.
공인임에도 그냥 이름을 불러서 듣기 어떨지 모르겠으나 손주랑 같은 나이라 언제든 그를 '귀여운 우리 찬원이'라 칭한다.
애당초 트롯(Trot)은 빠르게 걷는 경쾌한 발걸음인데 어쩌다 소위 왜색까지 가미돼 뽕짝으로 격하된 노래로 오랫동안 외면해 온 장르다.
우선 애절해서 청승맞고 질질 짜는 가사부터 축 처진 채인 데다 느려터진 가락까지 맥빠지게 해서 재수 없다 여겼다.
언니가 몇년 전 희한스레 미스 트롯에 빠지더니 이어서 미스터 트롯에 집중하며 매주 목요일인가 금요일 방송 날을 애오라지 기다렸다.
코로나라는 아리송한 괴물체가 등장하며 어거지로 집콕을 강요당한 일반인들이 할 일이라곤 뻔했다.
주야장천 넋 놓고 텔레비전이나 바라볼 수밖에.
언니에게 책을 읽던지 유익한 취미라도 찾아 즐기라고 권했으나 미스터 트롯 본방은 물론 재방송까지 열심으로 사수했다.
도대체 박사 코스까지 밟았던 사람이 어이타 그 모양이 됐냐며 타박을 줘도 막무가내인데다 내게까지 한번 봐보라고 계속 보채댔다.
오죽하면 요즘 들어 그 프로 없었으면 무슨 낙으로 살았을꼬, 그 덕에 막막하고 깝깝한 세상사 잊고 산다 하니 은근슬쩍 내용이 궁금해졌다.
처음으로 지나간 방송 하나를 유튜브 통해 봤다.
그때 찬원이가 진또배기란 노래를 열창했는데 어라? 트롯이 이렇듯 흔쾌하고 흥겨워 신이 날 수 있다는데 순간 깜짝 놀랐고 동시에 신통스러웠다.
이후로 그가 부른 노래를 전부 찾아내 듣다 보니 어느새 질러대며 꺾이는 후련하고 구수한 그의 창법에 녹아들어 자동으로 팬이 되었다.
대학생인 그가 트롯 경연에서 부른 '울긴 왜 울어', '18세 순이'는 나훈아 노래라 자연스레 그도 찬원이와 한 틀로 묶여지며 트롯이 괜찮게 여겨졌다.
무슨 공식처럼 한참 전부터(근자 들어서도 그런지는 몰라도) 명절날 즈음이면 특집으로 나훈아 쇼를 보여줬다.
대구 시댁으로 차례 준비하러 가면 도리 없이 들어야 했던 나훈아 노래, 찌짐판을 벌여놓은 거실 앞머리 티브이에선 그가 한바탕 흥을 돋워댔다.
시모님 왈, 저 노마 볼수록 인물 아이가! 파안대소하며 신명 올라 따라 부르면서 흥겨이 어깨 장단을 맞추던 이십여 년 전 기억.
전신으로 사내 냄새 풍겨대며 이 드러내고 웃는 표정부터 느물거리는 인상인데다 한참 연상의 여배우와 산 이력까지 합쳐져 도무지 비호감이었다.
웃통 드러낸 채 동물적 감각을 있는 대로 발산시키는 몸동작도 그런데다 선이 굵은 외모에 아랫입술 지그시 깨무는 동작과 윙크조차도 징그러웠다.
한마디로 정리해 '아무튼 싫다'였던 그다.
73년도쯤일까? 오산에서 장교 생활을 한 남편은 뒤늦게 공군에 입대한 그와 같은 병영에서 지냈는데 당시에도 이미 최고 인기가수인 그였으나 화제의 대상으로 삼아본 적 없을 만큼 우리와 거리 멀었던 유행가 가수였다.
그때나 이제나 젊은이치고 뽕짝 좋아라 하는 사람 없으니 당연한 일로, 묵직한 목청임에도 칭칭 감겨들며 느끼하게 넘어가는 간드러진 그의 창법이 역겨울 정도였으니까.
간단히 딴따라라고 비하해버린, 어떤 직업이라도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하나 연예계 종사자를 낮잡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런 식은 지양되어야 함에도 줄곧 그런 우를 범해 왔다.
세련되게 클래식을 즐겨야 우아하고 꼬부랑 발음의 팝송을 선호해야 고급 져 보이는, 그래서 싼티 촌티 나지 않으려 안간힘 써보는 억지가 아니라 상큼 발랄한 청년기의 누구나 질질 끌며 청승 떠는 노래는 질색일밖에.
재즈나 샹송은 좋아하면서 우리 정서에 맞는 우리 가요를 한참토록 마땅찮게 여겼던 자신인데, 허나 이번 나훈아의 언택트 한가위 콘서트는 스스로 원해서 기꺼이 즐기면서 보게 되었다.
이찬원의 시원스런 진또배기 노래를 들은 이후로 우연찮게 그리 변하게 된 자신이다.
그간 25년을 지켜본 며느리는 내가 트롯 무대를 다 시청하다니 신기한 일이라 하기에 찬원이 덕에 변했다 하였듯이, 전엔 혐오 수준에 가깝던 트롯.
헌데 이번 공연은 찬원이 노래 때처럼 트롯에 대한, 대중가요에 대한 섣부른 선입견 내지는 편견을 여지없이 부숴버렸다.
나훈아는 노래도 노래지만 한마디 발언도 허투루 내뱉지 않는 반듯한 정신의 소유자로 과연 가왕이란 호칭 부끄럽지 않은 멋진 예인(藝人) 이었다.
미증유의 어려움을 당하는 이 시기, 말로 다할 수 없이 지쳐 힘 빠진 국민들 위로하고자 한가위 무대를 마련했다는 가상함에 일단 먼저 감동받았다.
더군다나 또박또박 힘주어 말하던 진정성 있는 소신 발언은 오래 곰삭은 연륜에서 나온 철학이지, 거저 쉽게 나온 게 아니라는 무게감이 전달됐다.
공연을 시작하고 첫 번째로 보낸 코멘트는 코로나 최전방에서 수고하는 의료진에게 표한 감사였으며, 주름 생기는 원인이 스트레스인데 지금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국민들에게 격려와 성원이 절실하다고 여겨 노 개런티의 위안잔치를 연 그.
붕어나 개구리 또는 개돼지로 격하된 국민 개개인 모두가 세계 제일의 일등 시민이라는 자부심을 일깨워 주면서 '두고 보세요, KBS도 거듭날 겁니다'란 말로 그동안 국민을 위한 방송이 아니었지만 앞으로 그래달라는 희망사항의 표현을 에둘러서 전했다.
말은 존재의 집이고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법정 스님이 그랬듯 말은 정신의 소산물, 말을 통해 품성과 자질이 밖으로 드러난다.
그의 지난 무대 영상들을 돌려보며 이번에 그가 남긴 말에 담긴 메시지가 그냥 입에 발린 공허한 헛구호가 아니었다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광복절 기념일은 쓸데없는 날인 바 남에게 지배당하는 일은 애당초 없었어야 했다는 그, 일본 현지 공연 중에 독도는 우리 땅을 배짱 좋게 노래했던 그,
가장 듣기 싫은 노래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소원만 하기보단 모쪼록 국력을 키워야 한다는 그,
제재와 간섭을 받으며 억지로 해야 하는 평양 공연을 기어코 거절한 이유, 이건희 회장의 초대 자리를 대중과 함께 가 아니라서 사양한다며 그는 어떤 절대 권력이나 막강한 금력에 구애받지 않는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확고한 자존감으로 자기 위치에 대한 명예와 절조 지키며 뚝심과 기백 푸르게 살아있는 그였다.
평양에 가서 90도로 폴더식 인사를 해 흉거리가 된 가수뿐인가, 현 정치판 작태는 딴따라 그 이하로 나날이 아연실색을 넘어 졸도하게 만드는 요즘.
애국심과 공정과 정의의 이름을 내걸고 아무리 외쳐댄들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면 잠꼬대도 못 되는 개소리에 불과할 뿐이다.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그의 노랫말이 절절히 겹쳐지며 100% 공감되는 현실임이 안타깝다.
https://brunch.co.kr/@muryanghwa/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