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거칠게 불던 오후. 앞뜰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얼른 쫓아나가 보니 야외탁자 위에 세워둔 파라솔이 넘어져 있었다. 제법 묵직한 파라솔이 넘어가 덮친 곳은 하필이면 장미화단. 봉긋봉긋 봉오리 맺힌 노랑 장미 가지들이 꺾여 있었다. 게다가 이스터를 맞아 꽃봉오리가 셋이나 달린 백합 화분을 사다가 바로 그 장미 곁에 두었던 터. 겨우 백합 한 송이가 개화한 채 두 봉오리는 곧 필락 말락 했는데 그 꽃대궁도 똑 부러져 내렸다. 부러진 꽃대를 주워 들고 부질없이 대궁에 잇대보며 애연해했다. 화단을 손질하던 이른 봄. 호미 날에 찍혀 나온 튤립 알뿌리의 저며진 살점을 보듯 안타깝고도 아까웠다. 하얀 백합꽃 봉오리를 거두어 화병에 꽂는데 불현듯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중학교 다닐 적 일이다. 조용한 시골 여학교에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다. 시오리 길을 통학하던 한 여학생이 산길에서 변을 당했다고 하였다. 방향이 같아 등하굣길에 자주 만나는 남학생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던 것. 여린 꽃잎 같은 여학생이 숲속에서 혼절한 채 쓰러져 있는 것을 누군가가 발견해 병원에 데려갔노라 했다. 어수룩할 정도로 순해빠지고 인심 좋은 충청도 촌마을에 회오리친 난데없는 변괴였다. 소문은 금세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무성한 억측이 흉흉하게 떠돌았다.
당시로는 군내가 들썩거릴 정도로 놀랍고도 엄청난 사건이었으니, 그 여파로 학교까지 한동안 술렁댔다. 문제의 남학생은 수차 정학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는 불량학생이라고 했다. 밴드부에서 트럼펫을 부는 그는 건들건들 어깨 흔들며 걷는 건달로 서출 태생이라고도 했다. 쉬쉬하지만 전모가 공개되기 전에도 떠도는 소문만으로 그가 창회일 거라는 짐작은 갔다. 書-會-滋-本 이렇게 이어지는 집안 항렬 자를 알만한 이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친척이라는 걸 내색 안 하고 시침 뚝 떼고는 가만 입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을 만큼 너무도 창피한 노릇이었다. 한갓 식물의 꽃대 하나 꺾여도 이리 안쓰럽거늘, 하물며 한창 꽃망울 오르는 어린 순을 상처 입히는 죄야말로 막중하고 또 막중하다.
창회는 매방리 작은할아버지의 망나니 아들이다. 선비같이 점잖았던 할아버지와 달리 동생인 매방리 할아버지는 형제라도 두 분이 영 달랐다. 시조창을 즐기는 풍류객으로 환갑 때는 근동의 기생들을 죄다 불러서 한바탕 거하게 잔치판을 벌였다. 작은할아버지는 매방리 선산 아래 부챗살처럼 퍼진 옥답을 거느린 여유 있는 대농으로, 안채 사랑채 행랑채에 각각 따로 대문이 딸린 큼직한 집에서 사셨다.
딸도 없이 오직 아들 하나만을 둔 작은 할머니는 키도 크고 꼿꼿한 풍모가 영락없는 대갓집 마나님이었으나 할아버지의 두 집 살림만은 어쩌지 못하고 묵인했다. 개울 건너 오두막에 사는 작은댁은 반면 오종종하니 채신머리없이 수다스러워 우리조차 창회에미라 부를 정도로 천상이었다. 첩실로 살면서 내리 딸 셋에 끝으로 둔 자식이 손 귀한 가문의 아들이라고 기고만장하게 했던 창회 바로 그였다.
창회가 종종 사고를 쳐도 대충 정학으로 얼버무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재학하는 중등학교 교무주임이 큰 당숙 곧 배다른 형이었기에 그나마 가능했던 거 같다. 하지만 그때 사건은 큰 당숙 힘만으로는 도저히 해결될 수도, 나아가 감당할 수 없는 범주 밖의 큰 사건이었다. 문제가 확대돼 경찰에 넘겨지지 않게 미리 합의로 뒷수습을 하며 손쓰느라, 그 바람에 작은할아버지 옹골진 논마지기 꽤나 날아갔다.
엄청난 일이 터지고 난 다음, 피해자인 여학생은 악몽 같은 사건 이후 항시 외톨이로 지내며 겉돌았다. 수군거림을 피하느라 운동장 조회시간에도 통 나오지 않았다. 죄 없는 죄인 되어 고개 숙인 채 그늘만 밟고 다니더니 결국 자살 시도까지 했다. 뭇시선들을 견디다 못해 막다른 선택을 했으나 어찌어찌 목숨은 건졌다. 그 애 부모들, 억장 무너지는 충격으로 심장병을 얻어 내내 몸져누웠던 그 어머니가 앞장서 대처로 이사 결정을 내렸다. 도통 문밖출입을 하지 않고 폐인처럼 지내던 그 아버지도 전학 가는 딸을 따라 마을을 떴다. 한 집안이 그 일로 풍비박산이 나며 고향을 뒤로했다.
창회도 학교를 중도에 작폐했다. 주위에서 흉물스러운 짐승 대하듯 하자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도망치듯 서울로 가버렸다. 밤무대 악사로 전전하며 술집 여자 만나 딸 하나를 두었다는데 한 번도 고향에 발걸음 한 적은 없었다. 심지어 부모 상에도 매방리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렇게 흘러 흘러 제주도 밤업소에서 일하다 서른 몇 젊은 나이에 그는 요절하고 말았다.
간암이라고도 하고 폐암이라고도 했으며 술 때문에 든 병이라고 했다. 호된 병고 끝에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만 그. 그의 죄는 법으로 징계치 않은 대신 하늘이 응징한 것 아니겠느냐는 말도 돌았다. 인과응보의 결과라고, 죽은 다음까지도 입살에 오르내려야 했으니 참말로 딱하고 불쌍한 인생인 셈이다. 죄는 지은 대로 가고 덕은 쌓은 대로 가기 마련이라 한다. 그 법칙이 곧이곧대로 적용된다면야 세상은 죄짓는 사람 없이 맑고 깨끗한 청정도량 불국토가 되었으련만... 백합꽃 꽃대 꺾임에 오래전 추한 사건이 연상되는 까닭은 세월이 하 수상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원이 생기듯 버젓이 여성이 성 상품화되어 길거리에 어지러이 널리는 세상이다. 거기다 대중매체를 이용한 음란물 유통도 일종의 간접 성폭력에 해당, 근절되어야 함에도 오히려 더 자극적 노골적으로 그 농도나 수위가 높여지고 야해져만 간다. 그뿐 아니다. 성범죄 중에도 가장 잔악해 만인의 지탄을 받는 아동이나 장애인에 대한 성폭행범. 그 죄질이야말로 흉악하기 그지없어 그들을 세상과 완전히 격리시키면 좋으련만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실정이다. 저항할 힘이 없는 나약한 대상을 택해 악행을 저지른 자들은 최고형을 받아 마땅하건만.
나라 잃고 식민지가 되니 제국주의 군인들은 전쟁터로 20만 명의 꽃 같은 조선 소녀들을 끌어갔다. 비참한 성 노예 되어 한 맺힌 절규 속에 살았던 여인들.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르고도 그럼에도 뻔뻔스러운 일본. 금전적 배상 액수가 협상대상의 전부일 수는 결코 없다. 어떻게 그 죄의 대가를 돈으로 환산해 지우겠는가. 근본적으로 잘못을 시인하고 진정으로 용서를 빌며 사죄할 때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정신대 소녀들의 한이 일부나마 풀리지 않겠는가. 헌데 그 정신대 문제조차 정략적으로 우려먹거나 이용하는 쓰레기 같은 정치인까지 있는 기가 찬 판국이기도 하다.
성폭력 피해자는 성인이 되어 환경이 바뀌어도 그 일로 인해 심리적으로 위축된 채 살 수밖에 없다 한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니면서 죄인 같은 심정으로 자책하며 응달진 삶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칠십 고개를 넘었을 그녀. 모쪼록 한때의 악몽을 떨치고 그럴수록 더 힘차고 꿋꿋하게 살아왔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