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항에서 서귀포층으로

by 무량화


대한추위 여파로 영상 1도를 나타내는 수은주.


좀 전에 대설주의보가 발령됐으며 눈꽃버스 결행을 알리는 안전문자가 떴다.


당연히 한라산은 운무에 가려 자취 모호할 터.


바다 쪽에 구름층 몰려들고 있으나 그럼에도 아직은 대기 맑은 아침.


서귀포 앞바다는 은쟁반처럼 윤슬 빛났다.

패딩 주머니에 폰 하나만 넣고 가볍게 나섰다.

동네 산책 삼아 태평로를 거쳐 샛기정 언덕길로 접어들었다.

길가 양지녘에 군데군데 피어난 수선화, 마른 풀숲에 숨어 겨울을 난 해국 얼굴 해쓱한 채였다.

벼랑에 노란 손수건 펼쳐둔 유채꽃 그 아래로 드러난 서귀포항이 달력 사진처럼 고왔다.

저만치 새연교 돛대 닮은 자태가 솟아났다.

천지연 폭포수가 강물 되어 흘러 흘러 바다와 섞이는 칠십리교를 건넜다.

서귀포구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갈매기떼 끼룩거렸고 얕은 물가에는 가마우지 자맥질 치며 먹이를 낚아채는 그들만의 어장이었다.

해풍에 시달려 한쪽으로 쏠린 채 누운 우묵사스레피 나지막한 나무가 물길 따라 한참을 동행해 줬다.



텅 빈 칠십리 야외공연장을 스쳐 지났다.

서귀 포구는 기상 탓인지 무척 한가로웠다.

고깃배와 낚싯배들은 이마 조아린 채 얌전히 열 지어 서있었다.

거센 파도와 맞부대낀 뱃전 상흔과 달리 집어등 유리알은 투명히 맑았다.

태극기와 여러 종류의 깃대만 해풍 따라 분다이 나부꼈다.

남성중로 양 켠에 늘씬늘씬 뻗은 야자수들.

가느다란 허리짬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 강도는 점점 거세졌다.

유람선 터미널 왼쪽에 떨구고 파킹장 건너 화석층으로 향했다.


절벽 상층에는 조면안산암이 덮여있고 낙반에 의해 퇴적암층이 드러나 있으며 거친 면은 현무암들로 휘덮인 해안가다.


100 만년 전 제주에 현무암질 화산활동이 있었음을 나타내는 표징들이다.


바로 이 서귀포층은 바닷속에 쌓인 해양퇴적층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퇴적층에 포함된 퇴적물과 퇴적구조들은 당시의 해양 환경을 연구해 나가는 데 십분 활용됐다.


서귀포층 패류 화석산지 주변은 그새 새 단장을 마쳐 낯선 출입구가 생겼다.

콘크리트 방어벽이 완강한 토치카를 연상케 했다.

여름마다 거센 태풍이 파도더미 앞세워 난폭하게 밀려들면 속수무책이던 바닷가다.

감당키 어려운 태풍이 지나면 그 피해 숙명이듯 고스란히 당해내던 지역이라 단단하게 막아선 벽에 안도감이 든다.


새연교 입구에서 서쪽으로 이어진 해안단애를 따라 절벽면에 노출돼 있는 서귀포층이다.

서귀포층은 잘 알려지다시피 매우 중차대한 단서를 지닌 특별 장소다.


화산체 제주의 현무암 아래에는 전체적으로 이 같은 서귀포층이 깔려있다고 보면 맞다.


서귀포층은 제주도의 화산층 중에서 가장 하단에 있는 해양 퇴적층이라 한다.


셈하기조차 까마득한 일월 저 편, 신생대 제4기라는 지질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지질대다.


따라서 이백만 년 전 과거로의 지질여행이 가능한 곳이 바로 여기다.



100m 정도 솟아오른 지역이 해식작용과 풍화작용으로 인해 깎여나가 벼랑으로 변했다.


이때 드러난 화석층에서는 조개 화석 위주의 해양생물 화석이 노출됐다.


부스러진 조개껍데기 무수히 박혀있는 암석들을 품은 것이 패류화석층이다.


2∼300만 년 전의 생물인 가리비와 조개류, 성게 같은 극피동물, 산호, 고래, 물고기 뼈, 상어이빨 등의 화석들.


제주도가 태어나기 전의 지층으로 아주아주 오래된 바닷속 생물의 흔적 그. 신비를 접할 수 있는 데가 서귀포층인 것.


제주도 형성 초기인 약 180만 년 전에서 55만 년 전 사이에 해저 화산 활동으로 분출된 화산재와 해양 퇴적물이 쌓여 형성된 특수 지층인 이곳.


곧 제주도의 탄생 과정을 유추해 내는 중요한 자료가 되는 지질학적 타임캡슐인 서귀포층이다.



그보다 더 서귀포층이 특별한 이유는, 현무암질 화산쇄설물과 퇴적한 해양 물질이 뒤섞인 채 굳어져 물이 투과하지 못하는 지질이란 점이다.


이를테면 시멘트 반죽에 모래와 자갈을 섞어서 내구성 높은 고강도 콘크리트를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겠다.


화산섬 제주도의 다공질 현무암은 물이 고일 수 없으나 두께 100미터에 달하는 서귀포층이 받치고 있어 지하수가 빠져나가지 않는 저장고 역할을 했던 셈이다.


우리가 일상 음용하는 삼다수는 서귀포층 덕분에 접하게 된 것, 이 이상 우리 삶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는 게 어디 있을까.


미세플라스틱 걱정하며 생수병 사 나르지 않고 지금은 수돗물 받아서 보리차 끓여 마신다.


딸내미가 서귀포를 방문한 후부터다.


서귀포층과 곳곳에서 샘솟는 용천수를 보더니, 제주도에서 왜 굳이 생수 사다 먹어? 온데 전부 다 삼다수인데! 딸 말이 맞는 소리다.


제주에서 사용하는 모든 물은 병에 담기지 않은 삼다수다.


제주 섬에 내린 빗물이 현무암층을 거쳐 지하로 스며들어 고이게 함으로써, 제주도의 소중한 생명줄인 지하수를 품는 역할을 해줬으므로.


그 세월이 통상 18년에서 30여 년 자연정화 과정을 거쳤다니 현재 먹는 물은 이천 년 대 이전에 내려 암반 사이 통과하며 여과된 빗물이라는 얘기다.


수십 여 년간 화산암반이 필터 역할을 했던 화산암반수로, 자연정화 과정을 거쳐 제주산 최상의 생수 브랜드가 된 삼다수다.


물이 잘 빠져나가지 못하는 불투수성(不透水性)인 견고한 지층 덕, 곧 이는 지하수 보존 기능의 핵심이다.


서귀포층이 천연기념물 제195호로 지정돼 보호받는 그 중요성이 인정되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서귀포층은 관광객만이 아니라 서귀포 시민들조차 이 대단한 가치를 옳게 알지 못해 아쉽게도 대부분 그냥 무심히 지나친다.



해녀의 집 앞을 통과해 새연교로 접근했다.


새섬과 연결된 새연교 중앙에서 보면 한라산 웅자가 장엄하게 드러난다.


눈을 보관처럼 인 한라산도 보고 새섬에 건너가 여기저기 분포된 독특한 물웅덩이도 만나보려 했는데.


지난여름 새섬 언저리에서 개구리 소리를 들으면서 확신이 들었다.


현무암 지질대는 구멍이 숭숭 뚫려있어 물을 품지 못하지만 여긴 특이하게도 물이 고여있다?


이는 인접한 서귀포층이 설명되는 부분이다.


이번엔 그러나 새연교에서 진입을 포기했다.


더는 나아갈 수 없게 강한 바람이 휘몰아쳤기 때문이다.


도저히 중심 잡기도 어려워 한라 영봉 얼핏 담고는 사진이고 뭐고 도망치듯 냅다 퇴각.


내 체중 정도야 그대로 휘감아 날려 보낼 기세였으니까.


기갈 센 해풍에 밀려 대신 서귀포칠십리 시공원으로 발길 돌렸다.



제주 서귀포층 패류화석산지 위치:

서귀포시 남성중로 43 인근 해안 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