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막숙개포구 ㅡ2
서귀포 신시가지에서 점심을 먹은 뒤 우리는 걷기로 했다.
그대로 귀가하기에는 한겨울임에도 봄처럼 화창한 날씨가 아까워서였다.
짙푸른 바다와 범섬을 거느리고 법환포구 향해 걷기 시작했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자 해녀 문화를 함께 만날 수 있는 법환포구다.
특히 서귀포 시인 강영란의 시 제목인 막숙개 펫돌도 보고 싶었다.
서귀포 모성을 제주와 이 땅 어머니의 심상으로 승화시킨 수작이다.
"바다 깊이를 어림짐작해 보고
배가 포구로 들어올지 나갈지를 가늠해 볼 때면
마지막 기도 끝 십자성호 긋듯
돌에게 모든 걸 맡기게 되니 돌도 그걸 아는 거여서
저렇게 철벅철벅 젖는 거다."
‘막숙개’는 법환포구를 이르며, ‘펫돌’은 제주어로 포구에 배들이 들고나는 기준이 되는 일종의 수위계(水位計) 역할을 하는 돌이다.
옛날 제주의 어부들은 이를 출항과 귀항
의 시표(視標)로 삼았다고 한다.
해녀에게 포구는 항구도, 풍경도 아닌 ‘몸의 신호를 기다리는' 곳이다.
배를 대는 곳이 아니라 물질을 나가기 전 숨을 고르는 곳, 돌아와 젖은 몸을 끌어올리는 곳, 숨비소리를 처음 내뱉는 자리다.
포구는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자리가 아니라 ‘숨과 숨 사이’에 놓인 공간이다.
테왁 하나에 몸을 맡기고 바다로 들어가는 문이다.
그렇듯 법환의 해녀들은 물질하기 앞서 배에서 내리지 않는다.
물질을 마치고도 테왁에 몸을 의지한 채, 바다에서 곧장 바위로 올라온다.
젖은 몸이 현무암에 닿는 순간, 말은 없고 숨만 있다.
그 숨비소리가 법환포구의 언어로 스며들었다.
이 포구에서 필요한 것은 몸을 기대는 낮은 높이의
미끄러지지 않는 거친 바위의 결뿐,
현무암 갯바위가 해안에 무수히 깔린 '배염줄이'라는 곳을 지나게 됐다.
이 지역은 물속에 잠겨 있는 바위나 암초를 뜻하는 '여'가 발달한 곳.
법환 마을 해저에서 바다로 길게 뻗은 바위 무리가 검게 깔린 지대다.
그 새카만 갯바위마다 새카만 가마우지 떼가 우두커니 목을 빼고 서있었다.
바닷속 '여'는 썰물시 드러나는 갯바위다.
법환 바다 저 멀리까지 길게 벋어나간 현무암 길은 매우 이색지게 보인다.
배염줄이란 배+염주처럼 연달아+줄+이어졌다는 뜻이듯, 이곳에서부터 범섬까지 뗏목을 이어 길을 냈다고 한다.
왜?
반란군인 몽골족 목호를 토벌하기 위해서.
인근은 고려 말 최영 장군이 범섬으로 도주한 목호 잔당을 마지막으로 소탕한 격전지이다.
목호의 난은 1374년 고려 공민왕 때 제주도의 목호(牧胡)들이 일으킨 반란이다.
여기서 목호가 뭔지 짚어보자면 말을 키우는 몽골인 목부들이다.
몽골 제국이 제주도에 설치한 목마장에서 일하던 몽골인들인데 왜 반란을?
삼별초의 대몽항쟁이 진압된 이후, 원은 삼별초가 점거했던 제주에 '군민총관부'를 두고 100여 년이나 주인 노릇을 했다.
섬이라는 입지조건을 십분 활용, 원 왕실의 말을 탐라섬에 방목해 목장을 설치하였다.
그들은 탐라에 들어와 현지 주민들과 섞여 살면서 말 기르는 기술을 전수하는가 하면 자식을 두기도 했다고.
하지만 세상은 변해 원나라는 지는 해, 새로이 개국한 명나라는 떠오르는 해였다.
명은 고려에 원을 치기 위한 제주마를 요구하자 이에 칸이 방목한 말을 내줄 수 없다며 목호들이 난을 일으키자 최영장군이 이들을 진압했다.
배염줄이라는 지명도 그 사건 이후 생긴 셈.
사실 제주에 오기 전에는 몽고가 제주섬을 백 년이나 지배지로 삼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지 못했다.
모른다는 게 자랑은 아닌데 아무튼.
참으로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수없이 겪은 섬 제주다.
오늘날은 관광 제주로 골골마다 여행객 넘쳐나긴 하는데.
이젠 어딜 가나 유채꽃 군데군데 무리 져 해풍 따라 무심히 나붓거리지만.
배염줄이 바로 옆은 잠녀문화마을이다.
실제로 제주에서 현역 해녀가 가장 많은 어촌이기도 한 법환이다.
그래서인지 올레 7코스를 걸으며 이 마을을 지날라치면 물질하는 잠녀를 어렵잖아 만난다.
잠녀 곧 해녀를 직업적으로 양성하는 해녀학교가 있고 해녀체험센터도 자리했다.
바다 가까이 반원형의 해녀 마켓까지 근사하게 만들어놨다.
잠녀 횟집을 돌아 도로변으로 나가면 우뚝 솟은 화강암 비석과 마주치게 된다.
최영 장군 승전비다.
백여 년간 제주섬을 몽골에게 빼앗겼다 되찾게 된 기념비적 승전고를 울린 최영 장군이니 금 글씨로 새긴 들 어떨까만.
하긴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신 장군이시니.^^
이 근처에는 장군과 연관된 지명이 그 외에도 있다.
법환포구조차 전에는 막숙개로 불렸는데 목호를 소탕하고자 고려군이 막사를 쳤던 장소라서 붙은 이름이라고.
성을 쌓은 흔적인 軍城(군자왓), 활쏘기 연습장인 사장(射場)앞, 병기를 만들었던 병듸왓, 군사를 조련시켰던 '오다리' 등등.
마을 전체가 군사기지 역할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법환이다.
옛 역사야 강퍅했을지라도 어쨌든 당시 승전보 울려 퍼진 자랑스러운 법환 아닌가.
지금은 아기자기한 소품샵과 카페, 펜션이 들어찬 거리를 조금만 지나면 잠녀 광장이 나선다.
쉼터 역할도 하는 테우 뗏목이 떡 놓여있고 해녀상과 물고기 조각상 알맞게 배치된 이 자리는 한라산 막히지 않는 탁 틘 전망터다.
한라산뿐인가.
동쪽 바다에 뜬 범섬 문섬 새섬 섶섬 조망권 또한 일품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한 법환포구라 대뜸 떠오르는 장면이 있을 터.
바로 한반도 향해 달겨드는 거친 태풍을 맨 먼저 맞는 곳이라 태풍철 뉴스 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법환포구다.
군막 친 자리에 있는 동가름물 서가름물은 각기 용천수인데 하나는 식용수 하나는 생활수로 사용했다고.
그러나 만조라서 인가? 종내 펫돌은 못 찾겠다, 꾀꼬리.
막숙개 뒤편에 파란 물결 찰랑대고 잘 생긴 범섬이 배경으로 버티고 선 이 아담한 포구.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자 해녀 문화를 함께 만날 수 있는 법환포구를 뒤로 하고 우리는 귀갓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