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삼매경

by 무량화

딸을 둔 부모의 경우 아들만 둔 부모보다 노년기에 인지 기능이 더 잘 유지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기억력, 정보 처리 속도, 집중력 등 다양한 인지 지표에서 아들만 있는 부모의 성적보다 월등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는 것.

가까운 사람과의 정서적 연결, 지지 네트워크의 풍부함이 치매 위험을 낮추는 여러 요인 중 하나인데, 이는 딸과의 정서적 교류에서 비롯된 면이 크다고 봤다.

요새야 딩크족도 있는가 하면 딸 하나만 낳고 사는 부부들도 흔하다.

우리 세대로서는 이해불가인 기묘한 신풍속도이지만.

나처럼 남아선호사상이 골수에 박혀 있을 지라도 그러게 딸도 있어야 한다니까.

칠 년 터울을 두긴 했지만 늦게라도 딸을 낳기로 한 결정은 내 인생 최고의 선택 맞고말고!



아침 루틴으로,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고 맑은 공기를 쐬며 구글 검색부터 한다.

미주중앙일보 한 기사 제목에 끌려 내용을 펼친다.

LA 한인타운 마당몰(Madang Mall) 3층에는 알라딘 중고서점이 있다.

말이 중고이지 대부분 새책이나 진배없는 멀쩡한 책이며 신간 도서와 문방구 및 굿즈를 판매하는 서점이라 몇 번 가봐서 낯익은 곳이다.

그 서점이 13년 만에 영업을 종료하며 이달 말까지 폐업 파이널 페어웰 세일을 진행한다는 것.

사업을 종료하기 전, 마지막으로 재고를 전량 소진하고 고객에게 작별 인사를 전하는 대규모 할인 행사를 연단다.

전 품목 50% 할인 행사를 진행 중이며, 재고 소진 시 조기 종료될 수 있다고 했다.



즉각 딸내미에게 카톡으로 문자를 보냈다.

LA로 장 보러 가거든 마당몰에 들러 알라딘서점 가보길. 이달 말 폐업하기에 전품목 반값 세일한다고.

자주 책을 사 오는 편이라 읽을만한 책을 미리 챙겨 오길 바라며 소식 보냈는데 연락이 없다.

한참 만에야 카톡 전화소리가 울렸다.

전화를 받자 어쩐 일로 집에서 전화를 다 받네, 그런다.

산으로 바다로 하도 쏘다니다가 냅다 넘어져 다친 후부터는 근신한다느니 위축됐다느니 해쌌으나 이내 원위치로 복귀해 버렸지만.
서귀포에 앉아서 천만리 밖을 훤히 내다보냐며 알라딘 문 닫는 걸 어찌 알았는지 신기하다고 했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얘가 엄마를 구석기시대 원시인처럼 동굴 속에서 사는 줄 아나 뭐야~

아침에 일어나서 구글 열어보니 뉴스창에 떴던데?

그러나 따끈한 반응 기대한 현지 리포터와의 연결은 영 떨떠름 신통찮았다.

시큰둥하게 에이~가보나 마나였다며 빈손으로 왔다고 하였다.

안 그래도 주말이라 한인타운에서 아빠랑 저녁 먹고는 마켓도 들를 겸 알라딘에 갔었는데 괜찮은 책은 다 빠져버려 살 책이 도통 없더라고.



서점 입구 벽면 그림은 그대로 있다기에 반가웠지만 마당몰에 있던 극장은 넷플릭스가 일상화된 시대에 누가 극장 가겠냐며 곧 문 닫을 형편이라고도 했다.

보이다가 안 보이는 것, 있다가 없어지는 것. 문득 허망스러웠다.

모든 존재하는 것 종내 다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게 유한한 세상의 이치이니 참말로 덧없다 아니하랴.

영탄조로 흘러가는 내 말에 얼른 다른 화제를 끄집어 내 한참을 주거니 받거니 카톡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건강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는 근테크의 중요성을 설파하던 젊은 의사의 어이없는 몰락을 두고 남과 여 어느쪽 문제가 근본원인인지 설왕설래.

AI에 관해서 대화 나누면서는 쳇지피티나 제미나이를 잘 활용하기 위한 팁은 훌륭한 질문에 있다는 얘기 등등 끝 모르게 이어질 판이다.

아무리 공짜라 해도 이건 너무했다며 그쯤에서 마무리짓기로 하고 나는 찬을 만들까 하고 주방으로, 딸내미는 침상으로 향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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