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이기정길이 있는 당산봉

당산봉 트레킹

by 무량화


도반 카타리나는 풍차가 있는 신창 바닷가 근처에 산다.


사월 생이라서 축일이 사월인 성녀 카타리나 세례명을 지닌 그녀.

부산 출신에 미술교사로 은퇴한 뒤 제주에 와, 올레와 오름 걷는 우리에겐 공통의 화젯거리가 많다.

일찌감치 산티아고를 완주했으며 부산 골목골목을 꿰고 있어 말이 술술 통한다.

무엇보다 흐뭇한 건, 살갑게 들리는 부산 사투리를 차지게 쓰는 그녀의 생활 근거지가 내가 잘 아는 부산이라서다.

게다가 우리는 동질의 이념과 국가관을 가져, 대화 시 전혀 거리낌 없으므로 어떤 주제를 다루건 속 후련해진다.

나보다 두어 살 나이는 많지만 그야말로 그녀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명랑한 목소리 활기차고 발걸음 활달하다.

재작년까지 한라산조차 그녀는 한달음에 가벼이 오르내렸다.

한마디로 씩씩한 그녀라서 긍정 에너지를 전이받을 수 있어 좋다.


특히 깊은 배려심으로 나를 감동시키는 그녀.


명절때면 일부러 부산에서 내려와 내가 객지에서 혼자 지내지 않도록 마음을 쓴다.


부산에 본 집이 있고 그녀의 신창집은 세컨하우스 텍이다.


십수년 전 신창에 집을 마련하고 정원수로 분재소나무와 갖가지 화목을 심는 등 정성 쏟던 부군께서 갑자기 소천한 뒤로는 뜨락 어수선해졌어도 철따라 꽃은 피고 졌다.


이번에도 그녀집 담장가에 어느새 저 홀로 수선화 피어있었고.


서로 사는 지역이 먼. 두 시간 거리일지라도 중간쯤에서 만나므로 거리감 따위 개의치 않는다.

걷는 리듬 조화로운 우린 더할 나위 없이 마침맞은 길동무 사이랄까.




당산봉은 당오름 또는 차귀오름이라고도 불린다.


차귀도를 띄운 바다 바로 이웃이라서 일게다.

성산일출봉과 동일 원리로 만들어진, 물에서 마그마가 폭발하며 생긴 수성 화산체 오름이다.

산방산 및 용머리와 더불어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체 중 하나로 지질 트레일이 열려있다.

올레 12코스 끝자락에 있으며 세계 지질공원이기도 하다.


양배추밭 위로 봉긋하게 보이는 당산봉은 겉보기와 달리 산길이 길게 이어졌으며 소나무에 가려져 있는 수직절벽은 깊이 모르게 깎아질렀다.

들머리가 펜션에서 시작되는 오름이라 처음엔 좀 뜨악했다.

곧 탐방로 안내판이 보였으며 숲에 나무계단이 나타났다.

조금 오르자 올레길 표식과 세계지질공원 탐방로 화살표가 길을 안내했다.

사명의 길이라는 제주 성소 순례길 안내도에서는 귀여운 물고기가 튀어 올랐다.

이쯤이면 홀로라도 안심 푹~양팔 휘두르면서 맨손체조라도 하며 걸을만하겠다 싶지만, 실은 아주 호젓한 길이다.

자신 있게 보폭 넓혀가며 성큼성큼, 기분 내키는 대로 콧노래 흥얼거려 가면서 걷기엔 좀 무리다.

그처럼 이 구간은 이름조차 생이기정길, 새(생이) 소리 어우러지지만 갯바위를 치는 파도소리 들리는 저 아래는 낭떠러지 벼랑(기정)이다.


올레와 오름길이 사색하며 혼자 걷기 괜찮은 구간도 있긴 하지만 이처럼 휘휘한 장소가 많아 도반이 있다면 한결 안심된다.


그럼에도 매일이다시피 걷는 그녀에게 이 길은 편안한 산책길일 따름.



김대건 신부 표착 성당이 자리한 용수성지가 가까워 교우들은 훤하게 잘 아는 당산봉이다.


우리는 모슬포에서 만나 부두횟집에서 방어회덮밥을 점심으로 든든히 먹고 나왔다.

트래킹 시작은 한경정류장에서부터로 내처 바다쪽으로 밭사잇길 한마장쯤 걷다 보면 당산봉 들머리에 닿는다.


야트막한 오름에는 이름도 어여쁜 바당길이 열렸다.


이름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생이기정 바당길 코스는그녀의 최애 산책길이기도 하다.

생이는 제주어로 새, 기정은 절벽, 바당은 바다란

다.


아무튼 그래 그런지 이 길을 걷는 내내 청량한 산새 소리가 우리를 따랐다.

바닷가 벼랑에 뭇 새 날아다니며 노니는 곳, 아니면 각자 자유로이 맘에 드는 대로 해석하거나 꿈꿔보는 재미도 있겠다.

그 아래 해암들은 잠수해 고기를 낚는 가마우지 휴식처로 깃털 말리려 많이 날아든다는데 이날은 못 봤다.



솔 향 더불어 산새소리 거느리고 걷는 길.

흙길에 솔잎 누렇게 깔아 둬 산길 따라 쭈욱 베이지 톤 카펫 펼친 듯하였다.


당산봉 산정을 걷노라면 차귀도 섬 무리가 곳곳에서 빤히 내려다보인다.

탁 트인 바다에 차귀도를 띄웠으니 전망에 관해서는 부연 설명이 따르지 않아도 되리라.


다만 이날따라 파도 유난히 거칠어 바다가 한없이 뒤채며 자정작용을 하여서인가.


바다 빛깔은 보석알처럼 오묘했다.


투명하게 푸른 샤파이어였다가 아콰마린이나 토파즈나 지르곤, 혹은 녹빛 에메랄드나 동양의 비취옥 되어 황홀하게 우릴 매혹시키는 바다.


미묘한 색조의 물빛에 취해 강풍주의보가 내려진 추운 날씨 무시한 채 얼마나 오래 세찬 해풍에 후드꼈던지.


카타리나도 이처럼 신비로이 아름다운 물빛은 처음이라며 손 곱도록 거푸 사진을 찍었다.


특히 소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드러나는 바다 빛깔은

우리를 계속 당산봉에 머물게 했다.

차귀도 섬 사이로 해가 떨어지는 일몰 풍경이 명품이라 소문나기도 한 차귀오름.

고산 평야가 내려다 보이고 북쪽 중앙에 중심 잡고 선 한라산, 백록담이 이 위치에서는 한라봉 꼭지 부분처럼 보였다.


해벽에 부딪혀 하얀 물보라로 산화하는 파도는 또 얼마나 호쾌하던지 우린 연신 탄성을 발했다.


바다의 매력에 빠져 차마 떠나지 못하는 우린 결국 폰 충전이 바닥날 즈음에야 산을 뒤로 했다.

솔바람 몰아치는 바당길 언덕 내려서면 곧이어 용수 성지가 기다린다.


인근 카페엔 해넘이를 보려고 기다리는 여행객,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해안로에서 서성대는 이들도 있었다.


섬에 사는 우리야 언제라도 맘먹으면 기상조건 받쳐주는 날 다시 이 길에 서면 되니 복도 많지 뭔가.


성당 두어 컷 담고는 세찬 바람에 밀려 우린 카페 대신 택시를 불러 그녀 집으로 달렸다.


춥기도 몹시 춥거니와 먹통이 된 전화기 충전도 해야 했으며 시장기도 들어서였다.


점심 거하게 먹었어도 당산봉을 걸으며 거센 바람에 부대껴서인가, 따끈한 계피차에 수제 카스텔라 한 판을 바닥나도록 단숨에 먹어치웠다.


해 떨어지기 전에 서귀포로 향했는데 대정평야에 노을빛 서녘하늘 멋들어지게 장식했다.


주소지: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