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와 가마우지, 가라앉음의 도식(圖式)

해녀와 가마우지

by 무량화


새연교 들머리 해녀의 집.

모처럼 그 앞마당이 고무옷을 입은 해녀들로 부산스럽다.

해녀의 생명줄인 테왁을 제각금 발치에다 대령시키고 허리에 납 벨트를 차고 있는 중이다.

수경을 머리에 올린 한 해녀에게 물었다.

어드메서 작업할꾸꽈?

회장이 나와야 안다길래 요새 물질하멩 뭐 나옵써?

소라와 홍해삼 돌문어 호꼼, 주로 보말이란다.

성게는 안 나온 갑써?

그녀는, 가을꺼정 잘도 잡았는디 바닷물이 차워 인자 안 보인단다.



운무인지 황사인지 부연 대기, 그러나 무척 온화한 날씨다.

유람선을 타러 오는 관광객 중 젊은이들은 반소매 차림도 보인다.

해풍 고요해 파도 또한 잔잔하다.

새연교에서 막 새섬으로 건너려는데 해녀 너댓이서 물질 채비 마치고 해변으로 내려섰다.

바위에 걸터앉아 오리발을 신고 입수 준비를 하길래 도로 급히 새연교로 리턴했다.

제주에 와 바닷가 돌아다니다 물질하는 해녀는 수차 봐왔지만 서귀포구에서는 처음이다.

시야 가득 주황색 테왁과 초록색 망사리가 선명하게 다가왔다.

하늘이나 바다 물색 그리 곱닥하진 않지만 동영상에 담았다.



귀갓길에 가마우지 무리를 만났다

천지연폭포 물줄기가 흘러내려 바다와 몸을 합치는 지점, 민물과 갯물이 만나는 곳이라 늘 물새들이 진을 치고 먹잇감 기다리는 다리 아래다.

우두커니 서있는 가마우지들, 둔해 보이는 몸체야 타고났으니 도리없다 해도 어딘지 어벙해 보이는 이유는 중국과 일본 등 여러 지역에서 행해 온 전통 어로 방식 때문이겠다.

가마우지 목 아랫부분에 느슨하게 올가미를 묶고는 새가 물속에서 낚은 물고기를 삼키기 전, 줄을 잡아당겨 수확물 가로채는 어로관광상품을 파는 계림 이강.

마치, 앙상한 아이가 길바닥에 엎드려 구걸하면 이를 갈취하는 앵벌이 범죄와도 같건만.

물속에서 민첩하게 고기를 잘 잡는 이점이 도리어 스스로를 옭아매는 족쇄로 작용하게 된 인가.

한국에서는 그런 수법까지는 동원치 않으나 가마우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가마우지는 다른 물새와 달리 기름샘이 적어 깃털이 물에 쉽게 젖는단다.

그 덕에 부력을 줄여 더 깊고 빠르게 잠수할 수 있지만, 물 밖에 나오면 체온 유지를 위해 허수아비처럼 양팔 활짝 펴고 날개 퍼덕거리며 말려야 한다.



부스스한 가마우지는 꺼멓기만 하고 용모 특색 없어 별로 드러나지 않는 그저 그런 수수한 새다.

현무암 바윗전에 붙박이처럼 무표정하게 서있으면 그 또한 바위의 일부 같아 보일 정도다.

바로 가까이에서 갈매기떼 란을 피우며 날카로운 소리로 우짖어도 그러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는다.

철학자 혹은 현실을 초탈한 수행자에 가까운 면모다.

무리를 이루되 소란스럽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묵묵히 제 자리 지킨다.

가마우지는 공중 높이 뜨는 새가 아니다.
그래서 깃털에 기름칠도 공기도 품지 않는다.
스스로를 무겁게 하여 물속으로 가라앉는 쪽을 택한 가마우지.

필요한 만큼만 무거워지는 법을 진작에 터득한 가마우지, 그래야 깊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일 터.

날개의 부력을 버림으로써 깊이를 얻은 가마우지다,

물 위에서는 어딘지 모자란 듯 굼뜨고 어설프게 보이나 곤두박질치듯 순식간에 사라져 파문 일으키고는 물속 깊이 잠수해 누구보다 정밀하게 천부의 재능을 발휘한다.

요망진 인간이 그 능력 편취해도 습(習)처럼 천연스레 물속으로 거듭 사라지곤 하는 이강의 가마우지다.

잠수 전의 고요, 하강 중의 정적,

얼마 후 저만치 엉뚱한 수면에서 솟구쳐 나와 내뱉는 숨조차 무위(無爲) 자연이라 가비얍다.



가마우지와 해녀는 잠수에 능한 공통점이 있다.

물속 깊이 가라앉아야 유능한 힘 비로소 발현된다.

가마우지는 젖은 날개 털어 말리며 오래 석상처럼 바위에 서 있곤 한다.

해녀는 테왁을 껴안은 채 바다를 보며 천천히 숨을 고른다.

그렇게 곧장 물속으로 내려가지 않고 다시 잠수하기 앞서 워밍업 시간 넉넉히 갖는다.

둘 다 결코 서둘러 바삐 나대는 법이 없다.

가마우지와 해녀가 말없이 깨우쳐준 건, 가라앉되 깊이와 시간 지나치지 않아야 필히 되돌아올 수 있다는 엄숙한 탄성의 복원력.

당신, 서두르지 말 일이다.

그대, 재촉하지 말 일이다.

답변 없는 것이 가장 신뢰할만한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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