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신 따라 이중섭거리를

by 무량화


서귀포의 봄을 알리는 화신은 유채꽃 매화 수선화다.

이 꽃들은 벌써 피었지만 이중섭 거주지 초가지붕 위 목련 봉오리는 얼마나 실해졌을까?

솔동산에서 이중섭거리로 이어지는 언덕길을 오른다.

햇살 화창한 정오 무렵이다.

하늘빛은 울트라마린 블루 혹은 프러시안 블루.

이런 날은 괜히 기분이 좋다.

콧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지면서 발걸음 설렁설렁 한껏 여유로워진다.

이중섭미술관 신축공사로 중섭공원까지 파헤쳐져, 이쁜 홍매화나무도 사라지고 살풍경한 흙더미와 기계음뿐.

그리도 호젓하던 조붓한 골목길, 높은 공사장 칸막이가 압도해 와 재빠르게 이중섭 거주지로 들어갔다.

뜰에 수선화 연연하게 피어있다.

고개를 드니 매화도 살몃 웃기 시작했다.

대문을 지나자 목련 꽃봉오리가 도톰해졌다.

낮으막한 초가지붕을 휘덮다시피 한 목련나무 자태 고목처럼 의젓하다.

건너편 축대 위 대숲에서 해맑은 새소리 청량하게 들렸다.

귀에 익은 소리라 바짝 다가가 올려다보니 참새보다 작은 몸피에 연두색, 그 무엇보다 유별나게 선명한 눈동자가 동박새 틀림없다.

서귀포 어디서나 동백꽃 핀 곳이 흔하므로 동박새 꼬일 만도 하긴 하다.

근자 철거 소식에 갑론을박 논란에 휩싸인 서귀포극장 출입문은 폐쇄됐으나 여론 때문에 망설대는 눈치다.

일러서인지 상가는 대체로 조용하다.

전반적으로 침체된 경기라 자영업자 죽을 맛이란 하소연 피부로 와닿는다.

불경기에 불황은 세계적 추세라지만 특히 외환시장 살얼음판인 한국경제, 도무지 회복낌새 보이지 않는다.

엎친데 덮친다고 주택시장까지 정부가 개입하자 매물이 사라지며 당분간 거래가 묶여버리게 생겼다.

AI로 세상이 날로 달로 변해가는 격변의 시기, 한국 경제문제를 제미나이에게 물었더니 반도체라는 '확실한 엔진'이 있어 긍정적으로 본단다.

그럼에도 고환율이 장기화되면서 여전히 리스크는 남아있다는 분석이었다.

서귀포극장을 지나 주욱 올라가면 이중섭거리가 끝나며 차도 맞은편에 올레시장이 기다린다.



서귀포에서 그나마 관광객들로 항상 생기 넘치는 올레시장이다.

명절도 없고 휴일도 없이 365일 영업을 하며, 없는 게 없는 전천후 다목적 시장인 이곳.

아직은 시간이 일러 오가는 이 뜸하나 오후부터 밤까지 물결처럼 밀려다니는 인파로 무척 붐비는 골목이다.

별난 먹거리며 기념품 가게가 줄지어 선 시장이라 저녁이면 야시장처럼 왁자하니 아연 활기를 띤다

마술 하듯 불길 치솟아 오르며 핫바가 익어가고 오징어가 구워지며 별의별 김밥이 다 동원된 좌대.

시장 중앙통에 맑은 물길이 나있고 물길 둘러싼 나무의자에 삼삼오오 마주 앉아 주문한 음식을 맛나게 먹는 식도락가들.

도락(道樂) 삼아 특정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나 별난 음식을 찾아다니며 즐기는 편이 아니기에 맛집 기행 같은 데 관심이 적은 편인 나.

그러고보니 올레시장에서 오메기떡을 사봤고 군밤을 사먹어 본 게 전부이며 두부, 생선 같은 찬거리나 더러 샀다.

이는 길거리 음식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어서이다.

유명세 덕에 사람들이 북적북적 몰리는 식당도 별로 내키지 않는다.

생래로 토속적인 음식을 선호하는지라 줄 서서 기다렸다 먹는 명소보다는 일반 한정식이 더 땡기는 1인이다.

그러니 거처와 가까워도 올레시장 갈 일이 적다.

아무리 이름난 셰프가 차려주는 식당이라도 입맛에 안 맞으면 그림의 떡일 따름이며 원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했던가.

동네 골목에도 SNS 덕으로 손님들이 대거 몰리는 마농치킨집이나 뽈살집도 내 입맛엔 그저 그렇다.

우리 속담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듯 아무리 좋은 여행지를 다녀도 무얼 먹느냐에 따라 여행의 기억이 달라지기는 하리라.

불빛 아래 먹음직스레 윤나는 김밥, 탱글탱글한 귤, 흑돼지 꼬치, 오메기떡, 튀김, 전, 회 등등의 감각적 장면이 사진과 영상에 담겨 릴스나 쇼츠가 된다.

요즘 여행은 풍경을 '보는 것'보다 그 안에서 체험하는 것을 중시한다.

날것의 체험이 현대 여행자에게는 오히려 생동감을 선사하는 포인트다.

파문 퍼져나가듯 이 모든 다양한 체험들이 경험의 소비라는 트렌드에 맞춰 퍼져나간다.

하여 올레시장은 SNS 효과를 활용해 나름의 특수를 만들어가고 있다.

잡스의 기술혁신에 의해 촉발된 SNS 풍조 혹은 문화 덕이리라.

올레시장을 정의하자면, 여전히 장을 보러 온 동네 주민들과 선물용 귤 박스를 사는 나 같은 사람과 관광객들이 한골목에 섞여 파노라마로 흘러가는 풍경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