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항에서 걷기 시작하였다.
여기는 항구 이전 어민들의 삶터인 오래된 포구다.
문섬, 새섬이 대양의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해주는 덕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포구다.
지금의 서귀 포구 시설물은 시멘트로 네모반듯 고르고 완벽하게 닦여져 있지만 말이다.
수협어판장이 있는 항구 들머리 주차장은 하도 넓어 누아르물 세트장처럼 휑뎅그렁 황량스럽다.
주차장에서 경매장이 있는 어판장 방향으로 걷는다.
항구 주변의 바닷물은 생각보다 지저분하다.
검은 기름이 떠있고 플라스틱 부유물이 눈에 띈다.
어항이라서 비린내도 온데 스며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선내에 어망과 어구가 쌓여있고 해풍에 쩐 깃발 다발이 나부끼고 있으니 비린내는 당연.
물에 젖은 밧줄에도 냄새는 묵직하게 배어 있다.
정박해 있는 큼직한 배 옆구리 홈통에서 물이 콸콸 쏟아져 내린다.
너울지는 푸른 물결이 표 안 나게 모든 걸 받아들인다.
동남아인으로 보이는 뱃사람들이 무언가를 옮기며 바쁘게 움직인다.
부두에 서있는 선주는 뒷짐을 쥔 채 그들을 바라본다.
아니 깊게 지켜본다.
바로 그때 옆에서 들리는 퉁퉁퉁 소리.
북소리가 아니다.
경운기소리도 아니다.
배가 입출항할 때 내는 신호인 경적 소리도 아니다.
어선이 조업을 위해 먼바다로 나가려고 시동을 거는 디젤 엔진이 내는 소리다.
소리에 뒤이어 거무레한 연기가 뭉텅뭉텅 피어오른다.
매캐한 냄새가 역하게 퍼진다.
특히 디젤 엔진이 내는 매연가스 성분은 이산화탄소 같은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공해의 주범으로 꼽힌다.
경유나 휘발유 연소 시 발생하는 환경오염물질이다.
당연히 마스크라도 착용해야 하건만 외려 그 내음에서 그립게 떠오르는 외삼촌 내외분 얼굴.
50년대 농촌에서는 탈곡한 벼나 보리를 도정히려면 우마차에 실어 방앗간에 보냈다.
발동기라는 철물덩어리 기계에다 피댓줄을 걸어 그 동력으로 벼를 도정해 주는 곳이 방앗간이다.
노동력을 기계가 대신해 주던 발동기는 연료를 태워 힘을 내는 내연기관의 일종인 엔진 또는 모터다.
등잔불 호롱불을 쓰던 50년대라는 과거에 에너지원으로 전기를 사용할 수 있었겠는가.
석유를 이용해 발동기를 돌리면 처음 한동안은 쉬익쉭거리다가 시동이 걸리면서 퉁퉁퉁 큰 소리를 내며 기계가 가동되곤 했다.
이어서 새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며 퍼지던 석유냄새.
일본으로 가 공업학교를 마친 후 인천에서 미두사업으로 승승장구하던 중 육이오가 터져 낙향해 충청도 시골에서 정미소를 연 외삼촌.
외숙댁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그때 아침마다 맡았던 그 내음이다.
그리운 추억을 일깨우는 소리와 냄새는 대뇌를 조용히 터치한다.
오래 전의 특정 장면과 감정을 순식간에 되살려 반추하게 해주는 퉁퉁퉁 소리와 매캐한 내음이다.
이 감각들은 단순한 기억을 넘어, 그 당시 느꼈던 따스하고 포근한 안정감을 되살려주었다.
퉁 · 퉁 ·퉁!
심장이 맥박 치듯 내뿜는 쇳소리는 둔탁한 진동으로 파동 치며 기억의 현을 어루만진다.
바다는 방앗간이 아니건만 배에서 나는 그 소리는 나를 뽀얀 쌀이 도정되어 쌓이고 곡식 자루에 담기던 세월로 데려다 놓는다.
충청도 당진에서도 더 들어간 시골인 대호지.
홍역을 외숙모 등에 업혀 치렀으니 아주 어릴 적부터 외숙 댁에서 살았던 셈이다.
슬하에 자녀가 없는 외삼촌 내외의 부모 못잖던 사랑은 그럴 수 없이 곡진했다.
국민학교에 가야 했기에 눈물바람으로 외숙모와 헤어진 기억 저편.
칠십 수년 세월을 훌쩍 건너 다시 듣는 그 소리에 가슴이 습습히 젖는다.
발동기의 울림이 아니라 시간의 맥박소리에 젖는다.
퉁 · 퉁 ·퉁!
아니 나는 지금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 돌아가 시간을 듣는다.
그대는 누군가에게 어떤 소리로 기억되길 원하는가?
냄새는 감정과 기억을 연결하는 가장 강력한 자극제다.
한 줄기 향 혹은 내음은 지난 기억을 불러내 일깨운다.
기억 회상률을 70% 이상 향상시킨다는 후각이다.
후각은 오감 중 가장 감정에 가까이 맞닿아 있는 대뇌 감각기관이란다.
좋은 기억과 경험이 연결된 냄새라면 향이라 불러도 무방하겠다.
어린 시절 모기 방역차가 지나가며 내뿜는 연기를 따라 달음박질한 경험이 있다면 그 냄새도 향이 될 터.
배가 출항하며 내뿜는 시커면 연기는 공해로 외면당하는 매연가스다.
자동차 배기가스와 마찬가지로 대기를 오염시키는 1급 환경저해물질로 꼽힌다.
연기는 현재의 환경을 해치지만, 내음은 과거의 시간을 소환해 준다.
발동기 내음이 그리움을 깨우는 찰나, 그것은 더 이상 매연이 아니다.
하나는 규제의 대상이겠으나 하나는 회귀의 손짓이다.
물질은 동일해도, 묘하게 시간과 기억이 스며들면 성질이 달라진다.
그리움을 불러일으킨 발동기 내음이라면 이미 향수 어린 향이 된다.
나는 지금 냄새를 맡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시간을 맡는다.
그대는 누군가에게 어떤 향으로 기억되길 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