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스트레스, 테크노 스트레스

1994

by 무량화


학창 시절 나는 수학에 너무도 약했다. 어느 정도 못하는 게 아니라 거의 밑바닥 권을 헤맸기에, 꽤 잘한 다른 과목의 평균 점수를 갉아먹는 괴수가 수학이었다. 국민학교 적부터 그 둔재의 조짐은 나타났다. 구구단 외우기가 늦되 방과 후에 남아서 외운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말하자면 지진아만 모여 따로 보충 지도를 받은 셈이다. 학급의 간부를 맡았던 나로선 어린 소견에도 얼마나 창피하고 자존심 구겨졌겠는가. 뉘엿뉘엿 해는 져가고 있는데 특히 7단부터가 아무리 되풀이해도 자꾸만 헷갈렸다. 암기 과목은 퍽 자신 있어하던 나였음에도 이상했다. 같은 외우기이건만 구구단만은 계속 애를 먹였다. 수에 대한 개념과 감각이 형편없이 뒤져있지만 역사 연대기의 숫자는 단숨에 외워지니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도 가게에서 여러 가지 물건을 사고 나면 값 계산이 퍼뜩 되지 않는다. 만 원권을 준 다음 잔돈을 받을 경우 거스름돈 암산은 아예 포기하고 그냥 가게 주인이 내주는 대로 받는다. 한마디로 암산이 쉽지 않은 것이다. 나처럼 계산 능력이 굼뜬 사람을 위해 전자계산기라는 것이 등장했음직한데 이 역시 다루기 서먹하다. 단추를 꼭꼭 누르면 곱하기 나누기까지 척척 알아서 처리해 주는 편리한 기계임에도 쓰이는 예는 거의 없다. 손바닥 보다 작은 크기의 계산기이니 휴대에도 편하나 노상 서랍 속에서 잠만 잔다. 문명의 이기를 다루어 도움을 받는 것보다 손가락으로 셈하는 원시적인 방법이 오히려 나는 만만한 것이다.


수학은 과학의 기초이다. 그 까닭인가, 수학 머리가 없는데서 그치지 않고 과학조차 골치 아픈 과목이었다. 물리 화학은 전체가 난해한 암호문이었으니 내가 아무리 작정하고 덤벼봐도 끄덕 않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그 콤플렉스에서 기인함인지 지금도 과학의 산물들에 이유 없이 배타적이고 어려운 사돈 대하듯 한다. 뭐든 낯선 것에 숙달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성격도 문제지만 특히 기계가 새로울수록 지레 겁부터 먹는 것이다.


과학을 바탕으로 모든 산업 기술은 발달해 왔다. 불편한 도구를 보다 쓰기 편하고 합목적적이게 발전시켜 만든 기계. 그 문명의 이기(利器) 들과 스스럼없이 친해지기가 쉽지 않고 조작이 매양 서툴기만 하다. 일상생활 중에 자주 접하는 것들과도 익숙해 있지 않으니 효용가치를 십분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집에 있는 오디오조차 마음대로 성능 조절을 못하는 쑥맥이 나다. 하물며 컴퓨터랴.


컴퓨터는 이제 더 이상 신기한 물건이 아니다. 가정에 들어앉아서 컴퓨터로 쇼핑하는 세상이 온다고 한다. 이미 주식 거래를 하는 주부도 있고 초등학생까지 자유자재로 다루는 컴퓨터다. 웬만하면 컴퓨터 쓰지 않는 집이 없을 정도로 널리 보급된 마당에 그러나 나에겐 옆방의 컴퓨터가 아직도 우주선의 존재만큼 멀리 있고 또한 여전히 다룰 줄 모르는 첨단 기계의 하나다. 요새 같은 정보화 시대에 컴퓨터를 모른다니… 이것은 숫제 웃음거리지만 말이다.


컴퓨터를 다뤄 봐야지, 하는 생각이 한 번씩 강박 관념으로 치받아 가슴 한 귀퉁이에 짐으로 부러져 있다. 컴퓨터로 인해 직장인 중 <테크노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는 신문 기사가 남의 일 같지 않다. 업무 처리는 물론 승진 시험을 위해 컴퓨터 정복은 필수임에도 컴퓨터 앞에 앉으면 속이 답답해지고 멍한 상태로 일할 의욕마저 상실, 종내는 신경 정신과의 치료까지 받는단다. 컴퓨터 미숙자인 회사원들은 만성피로, 불면증, 식욕 부진에 빠지거나 혹자는 우울증과 무기력감을 호소한다. 기계와의 심각한 갈등으로 힘겨워한다는 소식은 강 건너 불일 수만은 없잖은가. 컴퓨터는 분명 생활의 이기다. 컴퓨터 시스템이 도입된 후 업무 속도와 능률은 수십 배 향상되는 반면, 잠시도 한 눈을 팔거나 게으름 부릴 수 없이 낱낱을 체크하며 감시자 역할을 하는 컴퓨터 모니터. 우리가 바라던 테크노피아는 기계에 구속당하는 인간의 위축된 모습이 아니라 그 기계를 생활에 유용하도록 당당히 부리는 세상인 것이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 조류에 따라 컴퓨터 처리 능력을 기르고 적응해 나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나 컴퓨터에 비위 맞추듯 접근하고 싶지는 않다. 요즘은 원고지에 글 쓰는 사람이 흔치 않다는데 여전히 종이 위에 눌러쓰는 글씨라야 '글'인 것 같다. 컴퓨터에 의존하지 않고도 사는데 별지장이 없고 심각한 불편을 느끼지 않으며 살 수 있을 때까지는 내 고집을 그대로 고수할 작정이다.


얼마 전 전화기를 바꾸며 자동응답 전화기를 들여놓았다. 그 기계의 성능이 집을 비울 때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자동 응답으로 작동시켜 놓은 전화기에 입력된 메모는 별로 없다. 열 번 온 전화 중 잘해야 한두 번 남겨지는 게 고작이다. 할 이야기를 삼켜 버리고 거의가 그냥 끊어버리고 만다. 나 역시 긴한 용무 없이 친구 집에 전화를 걸었다가 자동 응답기가 작동되면 괜히 머쓱해져 슬그머니 수화기를 놓곤 했다. 상대도 없는데 헛소리하듯 기계에 대고 말하기란 실로 찐 맛없는 일이니까.


더러 날씨나 생활정보를 듣고자 안내 번호를 누르면 미리 녹음된 내용이 메마르고 사무적인 어투로 줄줄 이어질 적이 있다. 이때도 정나미 떨어지기는 매일반이다. 비인간화의 차디참을 단숨에 맛보게 해 주는 기계적인 음성도 마뜩잖다. 더욱이 보충해서 묻는다거나 다른 질문은 허용될 수 없다. 야박하게 단 한 가지 대답으로 끝나는 것이다. 물론 사회가 다변화되며 모든 면이 복잡다단해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 폭주하는 문의 전화에 일일이 친절한 육성 응답을 기대한다는 건 무리다. 그러나 신속 편리함만을 추구하다 보니 결국 와닿는 곳은 냉혹한 기계가 지배하는 시대일 터라 씁쓸해질 수밖에. 인간의 능력과 두뇌를 능가한다는 기계의 한계는 그러나 인간의 마음만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데 있다.


그냥 지갑 속에 끼워 둔 운전면허증이지만, 어쨌든 지난해 어렵사리 운전면허를 땄다. 몇 번의 재시도 끝에 겨우겨우 받아 낸 운전면허다. 공연히 시작했다는 후회감이 든 건 처음 한두 번 때의 일이고 나중에는 오기로 버텼다. 코스까지는 순조로웠는데 주행에서 거푸 탈락됐다. 식구들 보기도 민망하고 정말 괜한 짓 시작했다는 기분뿐이었다. 애당초 운동 감각 공간 감각도 둔한 데다 기계에 대한 적응력이 형편없이 낮은 자신을 왜 고려치 않았던가. 더욱이 거듭 재시험 치느라 죽을 쑤고 있을 무렵, 아이는 단 한 번에 척 합격해 버려 내 코를 더욱 납작하게 눌렀다. 우여곡절 끝에 운전면허를 따기는 했지만 아예 도로 연수도 접었다. 차 몰고 나설 담력이 도무지 안 생겼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잘 아는 자기 자신. 순간적인 판단력, 순발력, 침착성 등이 부족함에도 운전 생각한 자체가 만용이었다. 조작 기술이 달리 필요 없는 단순한 계산기조차 잘 쓰지 않는데 겁 없이 운전이라니.


머리 환기 시키기 위해 주말에 찾은 산촌. 한창 모내기철인데 퉁퉁 퉁퉁 기계 소리만 한적한 들길을 메운다. 이앙기가 모내기를 하는 중인 것이다. 이제 모 찌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한 번씩 허리 펴며 구성지게 부르던 모심는 이들의 노랫가락도 사라져 버린 들판. 그 시절이 그립다 하면, 일손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과학 영농만이 살 길인 요즘 농촌 실정에 웬 허깨비 같은 소리냐고 타박 듣기 십상이리라. 지금은 다만 논배미에 선 하얀 왜가리 홀로 옛 정취를 새겨주고 있을 따름이다. <수필공원 / 94>



* 지금은 AI시대다. 1994년에 쓴 글이 아득한 옛날 고리적 아제 개그 같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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