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서향(白瑞香) 향기
서쪽 저지곶자왈 숲길에 유백색 향낭이 지천으로 달려있답니다.
그 소식을 전하려고요.
향낭(香囊)은 은은하게 향을 풀어내는 향주머니를 이르지요.
≪고려도경 高麗圖經≫이란 문헌에는, 고려대의 귀족들이 금향낭(錦香囊)을 찼다는 문구가 실렸대요.
지금만 부유층이 호사취미 누리는 게 아닌가 봐요.
조선시대에는 향낭이 노리개라는 장신구로 발전돼 향을 내는 약초나 사향 등을 넣어 아녀자들이 패용했다는 데요.
비단 혹은 갑사천에 연꽃이나 모란이며 십장생 같은 길상문양을 수놓아 향낭에 벽사적 의미를 담았답니다.
향낭은 몸에 지니거나 방에 걸어두는 사용처 측면에서 사쉐(Sachet)와 아주 유사하겠네요.
오후 세시, 친구와 만나서 저지곶자왈을 걸었습니다.
백서향을 만나보기 위해서였지요.
이월에서 삼월이면 척박한 곶자왈 온 숲에다 향기 흥건히 풀어내는 맑고도 고아한 향기가 있는 데요.
유독 제주도립곶자왈과 선흘동백동산 그리고 청수와 저지곶자왈에서 만요.
白瑞香, 이름 그대로 아기별을 닮은 유백색 상서로운 꽃이지요.
제주 곶자왈에서 자생하는 특산 식물로, 제주도 기념물 제18호로 지정되어 있답니다.
일반 백서향(D.kiusiana)과 달리 제주백서향은 꽃받침통에 잔털이 없고 윤기 나는 잎새는 대개 긴 타원형이지요..
꽃이 한창일 때는 원시림 같이 침침한 곶자왈이 최고급 스프레이 향 되어 오가는 이들마다 향기로 샤워를 시켜 준답니다.
이른바 향테라피, 향기로 감싸 안아주는 매력이 여간 유혹적이 아니더라고요.
한번 사로잡히면 중독되는 마성이 있달까요.
이곳은 그래서 백서향이 핀 어느 때 와봐도 좋은 데요.
맑은 기상일 적에 방문해도 좋지만 심지어 봄비 차분히 내리는 날에도 걸어볼 만하답니다.
여행지에서의 비요일, 카페에서 죽치거나 미술관 탐방 외에도 이 같은 곶자왈이라면 주저 없이 방문할만한 최적의 선택지 아닐지요.
특히 백서향 꽃철에 비 내려 기압 낮아지면 오히려 향이 아래로 가라앉아 있기 때문에 더 유리하겠지요.
저기압일 때는 대기 중 습도가 높아지면서 향기가 위로 흩어지지 않고 숲 전체에 머물게 되니까요.
이런 날의 곶자왈은 젖은 흙내음과 진해진 백서향 꽃향기가 조화를 이루어, 맑은 날보다 훨씬 묵직하고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최고의 힐링타임을 선사받게 될 겁니다.
아무튼 제주 여행 중 누구라도 한번 백서향 향기의 포로가 되면 해마다 제철되기 바쁘게 찾아오지 않고는 못 배기도록 만들 걸요.
한마디로 설명키 어려운, 깊고도 우아한 품격을 갖춘 향이라서 백서향 향기를 담은 향수도 출시돼 있다네요.
그만큼 유려하면서도 달콤하고 강하면서도 오묘하게 매혹시키는 백서향 꽃향기.
그래서 꽃말조차 달콤한 '꿈속의 사랑'일까요.
향낭 하마 열었을까 기대하며 곶자왈 백서향 군락지 앞에 섰지만 아직 꽃숭어리 꼭 봉한 채 향낭을 풀지 않았더군요.
으슥한 숲 어딘가에 한두 송이 백서향 피어난 듯 미세한 향이 스며들긴 했으나 메마른 곶자왈엔 새소리마저도 끊겼더라고요.
여전히 온데 겨울이 진을 치고 있어서 황량스럽기 그지없는 곶자왈.
꽃망울 한껏 부풀어, 단지 기온만 올라가면 금세 꼭 여민 품섶 열릴 듯 말 듯 해 괜히 들뜨게 만들던 데요.
아마도 이달 후반부터 삼월이면 백서향 만개할 터.
다들 오설록 아시지요?
사방에 차밭 질펀하게 펼쳐진 티뮤지엄 건물 서쪽, 차밭골 뒤편으로 올레길 14ㅡ1코스가 열려있어요.
저지예술인마을 - 저지곶자왈 - 문도지오름 - 오설록 녹차밭까지의 코스이지요.
비교적 평탄한 길로 바다를 끼지 않은 내륙 곶자왈 숲을 걷는 조용한 힐링공간이긴 하나 통상 곶자왈은 분위기가 침침해 으슥한 구간도 있지만요.
올레객이 간단없이 이어져 과히 휘휘한 편은 아니더라고요.
여기는 시작점부터 도착점까지 9.3km 거리로 소요시간은 서너 시간 걸린대요.
올레객이 아니면 부담스러운 코스이나, 역으로 출발해서 오설록부터 백서향군락지까지 왕복 한 시간 미만이라면 걸을만하지 않겠어요.
초입만 잘 찾아들어가면 촘촘히 올레 깃이 달려있는 데다 숲 속 탐방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걷기에도 편했어요.
그간 여러 해 동안 백서향 향기에 젖고자 찾아간 곳은 대정에 있는 에듀시티 영어도시 옆에 위치한 제주도립곶자왈이었는데요.
백서향 군락지로 널리 알려진 도립곶자왈인데 서귀포에서 가기엔 교통 상그러워 큰맘 먹고 가야 했더랍니다.
이번엔 교통편이 나은 저지곶자왈에도 백서향 군락지가 있다기에 찾아왔는데요.
아직 개화 적기가 아니라서 만개해 소담스럽게 핀 꽃숭어리는 못 만났지만요.
그래도 저지곶자왈이 오히려 백서향 더 널찍하게 퍼져있는 데다 아담한 수형을 가진 백서향나무가 많아
만족도는 더 높았어요.
데크길이 아닌 전체가 흙길과 바윗길이라 대지의 탄력감을 느껴가며 성큼성큼 걸으니 기분도 좋았고요.
역시 자연은 자연 그대로일 때가 제일이지 싶어요.
이달 말이나 삼월에 다시 찾아오기로 하고 온길 되짚어 나오니 티뮤지엄에는 어느새 조명 밝혔더군요.
https://brunch.co.kr/@muryanghwa/1598
https://m.blog.naver.com/seogwipo-si/222687875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