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보통.
바람이 거칠었다.
그럼에도, 출발했다.
동천 짙푸르므로 다 괜찮았다.
터틀넥 스웨터에 방풍재킷, 마스크를 꼈다.
정월 초하루는 산방산, 다음 날은 성산일출봉이다.
눈 거진 다 녹은 한라산 백록담이 작작 좀 돌아댕겨라, 넌지시 타이른다.
다리 성할 때 댕겨야지요, 지체없이 대거리 또박또박.
서귀포 일호광장에서 성산까지는 한 시간 반 거리다.
아침부터 부지런 떨었으면 나선 김에 비자림도 들렀다 오련만 거기까진 어림없다.
꿩도 먹고 알도 먹으려는 심뽀.
섭지코지라도 들러볼까, 욕심내 보다가 이내 접는다.
하긴 일출봉만 해도 오감타 아이가.
남원 태흥을 지나자 바다가 곁을 따르기 시작한다.
바다 빛깔이 하늘보다 월등 새파랗다.
광치기해변은 더더욱 눈부시게 짙푸르다.
진짜로 눈이 부시다못해 시리다.
선글라스를 꺼낸다.
마스크에 선글라스까지 끼면 얼굴 전체가 가려진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마스크는 치운다.
일출봉 주차장에는 차들이 빡빡하게 차있다.
수학여행철 외에 이처럼 관광객이 많은 건 처음 본다.
설 연휴가 끝나는 마지막날답다.
일출봉 올라가는 언덕길 초입, 지난달에 왔을 때 수선화가 필락 말락 하더니 그새 꽃은 다 지고 잎만 무성하다.
연말에도 오고 1월에도 2월에도 거듭 오른 일출봉.
올레길을 걸으면 섭지코지부터 아니 온평리부터 단정하고 돌올한 기상으로 눈길 붙잡는 나의 그대다.
참으로 잘도 생겼지 않는가.
일출봉은 청남빛 수반에 얹힌 수려한 수석 한 덩이다.
재작년 딸내미가 제주에 와서 한라산 윗세오름. 산방산. 성산일출봉 등을 찾았었다.
그중 제주에서 성산이 기운 가장 뛰어나다며 두 번이나 올랐다.
이후 나도 힘이 딸린다거나 컨디션이 좀 쳐진다 싶으면 좋은 기를 받고자 걸핏하면 찾곤 하는 일출봉이다.
말하자면 일출봉은 나에겐 에너지 충전소 격이다.
계단이 많고 경사가 가팔라 초행길이라면 헉헉대나, 한 시간 정도면 오르내릴만한 산이다.
각처에서 온 관광객들이 꾸역꾸역 산길 오른다.
고도 높아질수록 숨이 차면 한 번씩 멈춰 서게 만드는 건 근사한 등경바위며 곰바위 등등이다.
뒤돌아서 올라온 길 바라볼라치면 빼어난 조망권이 또 탄성 발하게 한다.
해는 매일 뜨고, 사람들은 허위허위 올라와 잠시 머물다 내려가지만 연달아 이어지는 발길.
제주 동쪽 끝에 위치한 성산일출봉은 약 5천 년 전 바닷속에서 분출한 수성화산이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거대한 응회구(tuff cone)인 이 멋들어지게 생긴 바위산 꼭대기.
풍화와 침식으로 형성된 구구봉은 아흔아홉 개의 기암괴석들이 빙 둘러섰다.
이 빠진 분청접시처럼 야트막한 분화구는 텅 비어 있다.
그 비어 있음이야말로 가장 충만한 상태라는데.
정상에 올라 심호흡 몇 번 하고 잠시 명상에 잠겨본다
그렇다고 오래 머물지는 않는다.
아직 찬 바람결 거세게 사방에서 휘몰아쳤고, 사람들의 발길 분다웠으므로.
관광객의 웃음소리도 바람 따라 흩어져간다.
잠시 스친 그 발걸음 모두 저 거대한 응회암의 기억 속에는 한 점 흔적으로 남았을 터.
객은 잠시 스쳐 가는 풍경이지만 성산일출봉만은 그냥 그 자리를 여전스레 지킨다.
봉우리를 오른 것이 아니라, 나 어쩌면 둥근 시간을 한 바퀴 돌아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만 년 전의 폭발이 남긴 흔적 위에 앉았던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섰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여전히 출렁대며 그새 썰물되어 해안선 따라 물이 빠르게 밀려나가고 있었다.
분화구를 다시 한 번 둘러보고는 난간을 짚고 천천히 내려간다.
오르는 동안 숨이 차올랐으나, 하산 시에는 숨이 가벼워졌다.
내려오는 내내 ♬ 일출봉에 해 뜨거든~~♬♬ 노래를 흥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