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제주 섬 일원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다.
사부작거리며 소문난 명소 위주로 훑고 다녔더랬다.
등잔밑이 어둡다 했던가.
그간 소홀했던 서귀포 원도심이다.
내 손바닥 손금이듯 훤하리라 여겼는데 아니었다.
올레시장통이나 이중섭거리만 해도 좌우로 골목이 이리저리 뻗어있다.
동마다 찾아다니기 앞서 가까운 골목길부터 걸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슬몃 든 데는 까닭이 있다.
친구가 방문했다가 돌아가는 날, 우체국에 들렀다.
제주 특산물을 골고루 사서 자녀집에 택배로 부치기 위해서였다.
우체국 근처에서 공항 리무진울 타려면 샛기정공원 앞에 가야했다.
샛기정공원? 이름은 낯익은데 어느 곳인지 퍼뜩 감이 잡히질 않았다.
앱을 보고 걷다가 근처에 닿으니 아, 여기 맞네! 했다.
친구가 공항으로 떠난 후 건너편 샛기정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대로변에 길쭘하게 면해있는 공원, 조각물과 각종 운동기구가 솔밭에서 기다렸다.
파도타기, 윗몸 일으키기, 허리 돌리기, 달리기 운동 기구 등이 한가로이 쉬고 있다.
장소가 바로 길가라서일까, 아니면 주택가 아닌 숙박업소 동네라서일까.
깔끔하게 도색된 기구에 운동 효과와 사용 방법이 상세히 적혀있었다.
노는 입에 염불한다고 실없이 다니느니 운동이라도 해보자 싶어 잠깐 파도타기에 올라봤다가 싱거워서 금세 내려왔다.
솔밭 옆은 곧장 절벽, 제주어로 기정이다.
암반 사이에서 샘솟는 '생수개 " 단물을 물허벅에 퍼담아 지어나르던 샛길이 있는 기정길, 샛길과 낭떠러지가 합쳐진 이름 샛기정이다.
한라산 남록에서 발원한 연외천이 솜반천과 만나 흘러내리다 수직 벼랑에서 천지연폭포로 내리꽂힌다.
그 물 흘러서 서귀포항 바닷물과 합치기까지의 물길따라 나있는 높직한 언덕 위 숲에 샛기정공원은 자리했다.
소나무 숲에는 흙바닥에 누렇게 떨어진 마른 솔잎인 갈비(솔가리, 충청도에서는 솔껄)가 복닥하게 덮여있었다.
여기저기 아까운 솔방울도 함께.
촌에서 자란 이들의 경우, 학교 파하면 책보따리 마루에 던져놓고 갈퀴 들고 뒷산에 가 갈비 긁어모으는 게 일과였다.
50년대 한국은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펴 취사와 난방을 동시에 해결하였다.
당시 사용하던 땔감은 대부분 장작과 청솔가지였다.
그때 갈비를 불쏘시개 삼아 불을 피웠기에 집집마다 갈비 깍짓동이 쟁여있었고, 조석으로 굴뚝에선 연기가 매캐하게 피어올랐다.
소나무 잔가지는 쳐내고 솔잎은 싹싹 긁어, 앞뒷산 산림을 죄다 먹어치우는 대식가 아궁이란 소리 들을만도 했다.
산지마다 나무를 심는 녹화 사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은 화석연료 구공탄이 보급되므로써다
산업화 시대의 상징이 변화하 듯 무연탄이 점차 석유로. 도시가스로, 전기로 바뀌어간 궤적을 함께 한 우리 세대.
그뿐인가.
잡음 지지직거리는 광석라디오에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듣다가 흑백 TV 시대를 거쳐 컬러 TV로 옮겨진 세상.
인터넷 기술에 놀라워 했는데 이제는 아이폰도 곧 뒷전으로 물러나고 AI를 배워야하는세월이라니 멀미가 날 지경이다.
급변하는 첨단기술 따라가려니 아날로그 원시인 어지럽게 하는 디지털 기기들.
머리 흔들고는 잘 정비된 조붓한 오솔길 걸어내려가니 읍민관 터 안내판이 나온다.
정방동은 '우리 마을 옛터 기억하기' 사업을 통해 마을의 자긍심을 높이고 사라지는 옛터를 보존하고자 고증에 따른 홍보시설물을 설치해놓아 한눈에 역사가 읽혔다.
서귀포 최초의 대중문화 시설이었던 읍민관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 서귀포의 문화 중심 공간이었나 보다.
읍민관 건물은 서귀 극장으로 사용되다가 폐쇄된 후 창고 등으로 쓰였다.
이 역사적 건물도 낙후돼 현재는 건물을 헐어낸 뒤 공원 및 농구 코트 같은 체육 시설로 바뀌었다.
먼나무 빨간 열매 때롱한 눈으로 늘어선 지금, 오월되면 등나무 시렁 연보라 주렴 향기로이 늘어뜨리고 벌떼 꽤나 부르겠다.
이번에 찾은 곳은 뱃머리동산이다.
안내판이 없었다면 무심코 지나칠 정도로 너무나 평범한 언덕.
로렐라이 언덕이 그러했고 영화 모정(慕情)의 라스트신에 나온 추억의 언덕이 그러하듯.
비탈에 서있는 나이 먹은 팽나무는 누군가 부여잡고 몸부림치는 바람에 기우뚱해졌을까.
관광객에게야 서귀포구와 범섬까지 바다 전경이 눈 아래 좌악 펼쳐지는 탁 트인 멋진 조망권이다.
새연교와 새섬이 바로 보이는 전망터로, 바다에서 귀항하는 뱃머리가 훤히 내려다 보이겠다.
어로작업 떠난 아방을 기다리는 아낙이 포대기에 싼 아기 업고 야윈 목 길게 뺀 채 서있을 것 같은 장소.
뱃머리동산은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쌓은 서귀포의 망루이자 등대다.
겹겹이 포개진 세월의 지층, 이곳은 기다림의 성소(聖所)가 되었으리.
팽나무 뿌리짬에서 흙을 한 줌 쥐어본다.
어쩐지 소금기 서린 눅진한 눈물자국이 섞여 있을 거 같다.
이어도만큼이나 먼바다로 어부는 떠나고, 풍랑이라도 일면 동산으로 달려와 바다 향해 "제발 무사하게 돌아옵서" 비손하는 아낙있음을 그가 부디 기억하기를.
누구나 마음속에 뱃머리동산 하나쯤은 품고 살았으면 좋겠다.
소중한 존재를 잃지 않기 위해, 혹은 언젠가 돌아올 그대를 마중하기 위해 서 있어야 할 자신만의 좌표로.
기다림은 절망이 아닌 희망의 좌표다.
뱃머리동산이라는 고정된 좌표가 있기에, 일엽편주로 망망대해를 떠돌지라도 어부는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이곳은 돌아올 이들에게는 '집'의 상징이며, 남겨진 이들에게는 '연결'의 끈이 아니랴.
혹여 영영 떠난 이후라도 어부는 바람이 되어 팽나무 가지를 흔들고 지날 것이라는 믿음.
간절한 기다림이 고여 지층이 되고, 그리움이 쌓여 풍경이 된 이곳에서 비로소 깨닫는다.
기다림은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 내면의 길을 닦는 기도라는 것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는 한, 아무도 아주 떠나버린 것은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