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내린 눈이 돌담 위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검은 현무암 위에 얹힌 흰 눈은 먹과 여백이 어우러진 한 폭의 수묵화, 혹은 추상화로 완성돼 있었다.
누구의 손도 거치지 않았고, 누구의 의도도 없었다. 다만 하늘은 내리고, 돌은 받아 안았을 뿐이다.
도가에서는 이를 ‘무위(無爲)’라 부를 것이다.
억지로 꾸미지 않고, 애써 다듬지 않아도 스스로 그러한 상태.
눈은 내리려 애쓰지 않았고, 돌담은 특별히 준비하지 않았다.
둘이 만난 자리에는 이미 완벽한 풍경이 놓여 있다. 아무것도 더하지 않아도 모자람이 없고, 아무것도 덜지 않아도 답답함이 없다.
돌담의 굽은 선은 직선이 되려 하지 않는다.
눈 또한 평평하게 다듬으려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울퉁불퉁한 비정형 위에 눈은 고요히 얹히며, 굴곡을 따라 머문다.
억지로 고르게 덮지 않는 그 여여함이 천연스러워 오히려 더 아름답다.
세상은 그렇게 자연의 궤도 안에서 저절로 조화를 이룬다.
어쩌면 겨울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무 가지려 애쓰지 말고, 너무 고치려 들지 말라고.
순수하게 질박하게 꾸밈없이 타고난 본디 그대로 살아가자고.
홍윤숙 시인이 '장식론'에서 "여자가/장식을 하나씩/달아가는 것은/젊음을 하나씩/잃어가는 때문이다" 라 고 썼다.
홍시인은 그러나 88세에 편 시집에 실
린 "봄이오니"란 제목의 시에서는 '이 나이에도'라고 첫 운을 떼었다.
이 나이에도
봄이 오니 내 마음 마른 살갗에
푸른 잎 돋아날 것 같고
어디선가 그리운 소식 올 것도 같은
조용히 들뜨며 물살치는
생명의 불씨 피어오르는
황홀한 떨림 알 수 없는 그리움....이라 읊었다.
십년 뒤의 나도 그러하리라 여겨진다.
마음이 솔직해지는 것, 그것은 굳이 단단해 보일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며 오히려 삶이 잘 익었다는 증거일지도.
필요할 때는 함께 생각을 나누고, 또 어느 날은 홀로 조용히 걸으며. 그 사이 어느 땐 부담스럽지 않게 이어지는 우리들 인연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풍경 스며들자 덕분에 잠시 마음 기대어 숨 고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돌담은 사계절을 버티며 묵묵히 서 있지만, 겨울에는 더 말이 없다.
그 침묵 속에서 오히려 깊은 호흡이 느껴진다.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더 크게 존재하는 것. 그것이 곧 도(道)의 자리일 터다..
잠시 멈춰 서서 그 풍경을 바라본다.
굽이진 돌담의 곡선은 붓끝이 한 번에 그어 내려간 선처럼 자연스럽고도 힘이 있다.
돌의 거친 숨결은 눈 아래에서 부드럽게 다스려진다. 그 가장자리에 눈이 선을 따라 고요히 걸터앉았다.
누군가의 심미안이 아니라 다만 바람과 눈이 스스로 완성한 수묵화들이다.
이것은 어쩌면 추상화일지도 모른다.
정해진 형상도, 뚜렷한 설명도 없이 그저 흑과 백, 차가움과 고요, 무거움과 가벼움이 서로 기대어 있다.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산이 되기도 하고, 파도가 되기도 하며, 오래된 기억 속 표정이 되기도 한다. 겨울은 말을 아끼는 대신 여백을 넉넉히 둔다.
그 여백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이야기를 그려 넣는다.
굳이 해석하려 들지 않고, 의미를 붙이려 하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바라보고, 함께 고요해질 뿐이다.
눈이 돌담을 덮듯, 생각의 소음도 차분히 가라앉는다.
겨울이 남긴 선물은 형상물이 아니라 잠언집일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이미 충만하게 채워진 상태.
그 앞에서 우리는 무언가가 되려 하지 않아도 된다. 조용히 그 자리에 서서, 스스로 그러한 존재로 머물면 된다.
그 순간, 눈 쌓인 돌담은 더 이상 풍경이 아니라, 우리에게 건네는 장장의 그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