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생태숲 얼음새꽃

by 무량화


이른 봄 숲 속에서 가장 먼저 피는 꽃.

'눈 속에 피는 연꽃' 또는 '봄의 전령사'라 불리는 꽃.

설연화는 채 녹지 않은 눈 속에서 노란 꽃을 피우며 봄을 부르는 꽃이다.

잔설 깔린 산자락이나 마른 풀섶 사이에서 가장 먼저 피는 꽃 중 하나다.

얼음새꽃, 눈새기꽃, 원일초(元日草), 설연화(雪蓮花), 측금잔화(側金盞花)라고도 불리는 복수초(福壽草)다.

행복과 장수를 기원하는 이름이나 증오서린 복수와 겹쳐서인지 제주에 와서는 얼음새꽃이라 부르고 있다.

햇볕이 나면 꽃잎을 열고 해가 지면 꽃잎을 닫는 꽃이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산지 계곡이나 숲 속에서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하는 대표적인 야생화다.

설연화 외에 신춘을 알리는 야생화가 더 있다.

꽃이 하도 작고 귀해서 보기 힘든 꽃, 가녀린 줄기에 솜털 보송보송한 노루귀와 애틋한 전설이 깃든 청순한 바람꽃을 복수초와 더불어 봄의 전령사라 칭한다.

유난히 하늘 맑은 오후. 한라생태숲 양지바른 산길에서 고개 숙인 채 마른 풀섶 유심히 훑어봤으나 샛노란 복수초만 보였다.

아마 좋이 두 시간을 야생화를 찾아 그리 헤맸으리라.

찾다 찾다 어디에서도 노루귀와 바람꽃을 만날 수 없기에 한라생태숲 관리실로 문의전화를 해봤다.

해마다 숯모루길 건너편 연리목 근처에서 야생화를 만났는데 올핸 복수초만 있고 다른 야생화는 안 보인다 했더니 어딘가와 연결해 물어보고는 복수초만 핀 게 맞다고 하였다. T: 064-710-8688



양치식물원과 구상나무숲, 혼효림, 산열매나무숲 등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암석원 지나 첨 가보는 낯선 길까지 헤매다시피 쏘다녔다.

비자나무와 키 큰 수국이 마른 꽃 달고 서있는 으슥한 길이었다.

수도 없이 한라수목원을 찾았지만 전체면적이 어찌나 넓은지 안 가본 길도 더러 있더라는.

일정 바운더리 안에 들어있으므로 휘휘하진 않았으나 늪지와 웅덩이가 있어 좀 께름하긴 했다.

하필 이럴 때 영화 '양들의 침묵' 영상은 왜 떠오르는지.

아는 길로 나와 호숫가 억새 흔드는 바람과 물빛에 취한 채, 전에 서있던 솟대 조각을 아쉬워 하기도 했다.

길가 연리지 나무와 십자고상 닮은 나무 이윽이 바라보기도 하다가 수생식물원 인근 숲에서 무리 지어 피어있는 눈색이꽃 군락지를 우연히 만났다.

해충기피제도 지참하지 않았으면서 풀섶 폴짝 풀쩍 건너뛰며 꽃사진 삼매경에 한참을 빠져있었다.

낮은 자리에서 납작 엎드린 채 미소 짓는 복수초는 햇살 함뿍 머금고 빛살처럼 밝게 웃었다.

이리 작은 꽃송이들이 신춘의 문을 연다는 경이로운 자연의 섭리.

낮은 키로 차디찬 대지에서 조용히 솟아나 꽃 피워낸 그 존재만으로도 숲은 후광 같은 빛무리에 싸여있을만.

겨우내 얼어 있던 땅을 뚫고 올라왔을 인고의 시간을 문득 떠올려봤다.

차가운 바람과 눈발을 견디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준비했을 새 봄.

그렇게 내공을 쌓다가 때 되자 고개 반짝 드는 모습은 대견하면서도 가슴 뭉클하게 만든다.

살다 보면 우리에게도 긴 겨울 같은 시간을 통과해야 할 적이 있다.

아무리 애써도 터널 끝이 보이지 않고, 기다림의 시간이 더디게만 느껴지는 그런 나날들.

오늘 숲에서 만난 노란 꽃이 조용히 일러 준다.

모든 기다림의 시간에는 감춰진 뜻이 있고, 모든 기다림의 끝에는 빛이 기다린다고.

봄은 서두르지 않아도 때되면 반드시 오고야 만다고.

올봄에는 조금 더 느리게 걷고, 조금 더 깊이 바라보며, 나 또한 내 안의 가능성을 열어보고 싶다.

숲이 보여 준 그 단단한 생명의 빛처럼, 내게도 고요하지만 찬란한 봄이 머물기를 바라면서.

참꽃나무 숲을 스치며 꽃망울 제법 도톰해진 걸 보고 사월의 재회를 기약하고는 그쯤에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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