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강이 흐릅니다

2014

by 무량화


아~

얼마만인지요

모처럼 은하수를 보았어요

Galaxy보다는 Milky way가 더 정겹게 들리긴 하나
그보단 미리내라는 우리말을 좋아합니다만.

별의 강이라고 부르는 것도 근사하네요

나만 그런지 모르나 은하수를 본 것이 언제인지 너무 아득해서 거의 기억도 나질 않아요

사실, 은하수가 지금도 존재하기나 하는 건가 할 정도로 그간 까마득 잊고 살았어요

심심하면 버릇처럼 하늘을 올려다보는 나였지만
한국의 도심에서는 스모그로 희미한 별빛 띄엄띄엄

그중 청산도 바닷가에서 본 별빛은 유독 영롱하게 반짝거려, 마치 까만 우단에 쏟아부은 색색의 보석알같았구요

미국에 와서는 초롱한 별밤을 자주 접하므로 유성도 가끔 만나나, 이처럼 선연한 은하수를 보긴 처음이거든요

얼마 전 브라이스캐년의 별자리 관측 프로그램에서도
은하수 비슷한 것조차 구경하질 못했어요

그런데 이처럼 은하수가 아직도 살아있었다니... 바보처럼 그랬다니까요.

무한한 시간과 만물을 포함하고 있는
끝없는 공간의 총체인 우주가 존재하는 한 사라질 리 없는 은하계이건만요

어머, 어머나~감탄사가 절로 터지며 그만 가슴이 뭉클해지더라구요

어릴 적 여름날, 평상에 누워 마른 쑥대와 모싯대로 피운 모깃불 연기가 오르는 하늘가를 따라가다 보면 보오얗게 흐르던 은하의 물길

그 별들의 강물을 다시 만나다니 정녕 눈물이 날 정도로 감회 벅찰 밖에요

인디펜던스데이 연휴에 우리는 휘트니 아랫동네 방갈로에서 머물었지요

어느 팀인지 밤늦도록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사위는 청남빛 어둠에 깊이 잠겨있었어요

사방 환하게 불 밝혀진 수영장,

산밑이라서인지 수질이 좋아 시간 모르고 물장난을 했지요


밤 이슥해지자 그만 선뜩 추워지더군요

모닥불을 피웠지요

둘러앉아 맥주캔을 들이붓는데, 어~낯익은 북두칠성에 뭇별이 빛나는 천공은 광활했어요

헌데 동녘하늘에서 서쪽으로 활처럼 구부정하게 이어지는 은빛 구름띠 같은 게 길쭘하니 보이더라구요

알고 보니 2천억 개의 별무리로 이루어진 미리내는
지구가 은하의 중심방향을 보고 있는 여름철에 가장 선명하게 잘 보인다네요

우린 다 같이 고개 젖히고는 정신없이 은하에 빠져든 채
축복처럼 만난 하늘의 선물에 고마워했답니다

벌겋게 타오르는 불잉걸을 들쑤셔대며 까만 허공으로 불티를 날리던 손주 녀석 역시도, 동작을 멈추고는 난생처음 본 별들의 강을 아주 신기해하며 오래오래 하늘을 올려다보더군요

또렷하게 보이는 은하수를 찍어보겠다고 아득히 먼 밤하늘에다 렌즈를 연신 들이대고 있는 나

아무리 잡아보려 해도 디카로는 초승달마저 막막한 점.....

어림 한 푼 없는 생각임에 아쉽지만 은하수 담기를 포기하고 슬몃 디카를 치웠지요

할머니가 멋쩍을까 봐 손주 녀석은 고모를 향해 큰소릴 칩니다

고모, 여기서도 보이는 은하수이니 저 산 위라면 더 잘 보이겠지,

내가 올라가서 은하수 사진도 멋지게 찍어올게!

휘트니 등정을 올해 안으로 꼭 해낼꺼라 다짐하는 손주 녀석.


날쌘돌이처럼 산을 잘 타니 체력 보강하고
체계적으로 훈련받으면 휘트니 정상에서 미리내 사진을 찍는 것도 가능할 테고요.

이제 성능 좋은 카메라를 장만하는 일만 남았네요

그 밤 천공 가득 뿌려두고 온 은하의 잔영은
겨운 감동의 여운 되어 오래도록 남아있을 겁니다. 2014 사진:픽사베이


은하수의 꿈을 대신한 바다의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