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포스팅한 과달루페 성모에 관한 내용 중 한 부분을 짚어 어느 분이 댓글로 점잖게 이의를 제기했다. 중남미 인디언의 개종이 정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계기"가 되었는지는 이론의 여지가 있지 않을지...라는 완곡한 표현이었지만,
실제로 예나 이제나 종교를 앞세워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전쟁은 무수히 일어났으며 그에 따른 폐해와 후유증 또한 극심한 게 사실이다.
해양제국이던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옛 영화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만 아즈텍 문명, 바로 그 토양에서 비롯된 과달루페 성모신앙이다. 신앙의 신비 에 속하는 기적일까. 아즈텍인들이 개종의 계기가 된 과달루페 성모발현은 과연.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드는 확증 편향적 경향이 농후하기에 때론 자신의 신념과 사상에 매몰, 균형감각을 잃기 쉽다는 점 또한 인정한다.
어쨌거나 당시 스스로를 멕시카라 칭하던 아즈텍인들은 월요일을 제외한 날마다 신전 앞에 인신공양을 올렸다.
풍요를 기원하는 피의 제전에는 처녀들과 전쟁포로들이 산채로 바쳐져 매년 숱한 인명이 희생되었다 한다.
거기다 처해진 시대상황은 정복자 스페인 병사들이 온갖 만행을 저지르던 때. 여인들은 몸으로 그 참담한 수난을 겪어야 했으니 치욕을 견디지 못해 자진하는 자가 속출했다고 전해진다. 바로 그즈음 성모 발현이라는 신비한 사건이 일어났다.
역사는 승자가 남긴 기록에 의거한다, 따라서 모든 역사를 액면 그대로 100% 확신하기란 역시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스러진 약자는 말이 없고 어디까지나 강자의 서술이므로 얼마든지 자기 합리화나 조작 왜곡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요 근래 붙들고 있는 책은 누워서 편안히 볼 수 있는 두께가 아니다. 뒤편 색인까지 합하면 636 페이지에 달하는 묵직한 책인 데다 내용도 술술 읽히는 주제가 아니라서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겉장을 넘기면 도발적인 색깔의 첫 페이지에 싸인과 함께 친필로 이렇게 쓰였다. “한 사피엔스가 다른 사피엔스에게(from one sapiens to another)”…. 저자 유발 하라리는 다른 사피엔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궁금증과 호기심을 갖고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사피엔스>는 김영사에서 출간한 책이라 번역도 믿고 읽을만하다.
책을 한 줄로 요약하면 호모 사피엔스부터 인공지능까지, 인류사의 시간을 종횡무진 훑어내려 간 문명 항해기라 할 수 있다.
2002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중세 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교수인 저자 유발 하라리. 그는 역사를 연구하는 이유인 즉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라고 했다.
내가 어떤 시기를 살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라고도 했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란다.
세월없이 읽던 책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좀 읽어보려고 펼쳐 들었더니 우연히도 스페인에 정복당한 아즈텍이 등장하는 페이지였다.
통상 독후감은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쓰는데 이번엔 읽는 도중이지만 독후감 비슷한 거라도 쓰고 싶었다.
과달루페 성모 발현 시기보다 겨우 십여 년 앞서 벌어졌던 사건이 정밀화처럼 자세히 기술되어 있으니, 마치 무슨 계시인 듯 횡재인 듯
서둘러 자료를 정리해 나갔다. 독후감이라기보다는 <사피엔스>를 읽으며 밑줄 그은 문단들을 두루 나누고 싶은 마음에 축약해서 옮긴다.
1517년경 카리브 제도에 머물던 스페인의 식민지 개척자들은 멕시코 본토 중심부 어딘가에 강력한 제국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호기심에 들뜬 에르난 코르테스는 휘하의 550명과 함께 1519년 7월 멕시코 동부 연안에 상륙하여 낯선 아즈텍인들을 만나게 된다.
아즈텍인들에게 그들은 외계인이었다. 피부가 희고 얼굴에는 털이 숭숭 났다. 태양빛 머리칼을 한 사람도 있었다. 그들에게 스페인 사람들은 낯선 행성에서 온 존재일 밖에.
그들이 타고 온 거대한 배는 더더욱 당황스러웠다. 타고 다니는 커다랗고 무시무시한 동물(말)은 바람처럼 빨랐다. 그들은 번쩍이는 금속 막대로 번개와 천둥을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빛나는 긴 칼과 뚫을 수 없는 갑옷을 입었는데, 이에 맞서는 원주민의 나무칼이나 부싯돌 촉을 단 창은 무용지물이었다. 그들을 신이라고 믿는 아즈텍인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악마나 강력한 마법사라고 주장했다.
경계는 하되 그러나 550명이 수백만 명이 사는 제국을 상대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방심했다. 코르테스는 위대한 스페인 왕의 사절이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평화적인 목적으로 왔으니 너희 지도자에게 안내하라고 했다.
현지인들은 아즈텍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으로 코르테스 일행을 데리고 가서 공손하게 아즈텍의 지배자 몬테주마 2세에게 인도했다.
접견 도중 코르테스가 신호를 보내자 강철무기를 든 스페인 병사들이 몬테주마 2세의 경비병들을 학살하고 황제를 포로로 잡아두었다.
코르테스는 황제를 궁전 안에 감금해 두고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가장했다. 아즈텍 제국의 통치조직은 중앙집권적이었으므로 곧이어 조직 자체가 마비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이 몇 달 계속되는 동안 코르테스는 황제와 남은 하인들을 심문하여 정보를 캐어내고 현지 언어를 구사하도록 통역자들을 훈련시켰다.
아즈텍 엘리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체제에 결국 반기를 들고 새 황제를 선출한 뒤, 수도에서 스페인인들을 몰아냈다.
외곽에서 코르테스는 그동안 얻은 지식을 이용해 제국의 조직을 분열시켜 내부로부터 와해되도록 만들었다. 즉, 제국의 많은 피지배 민족들을 부추겨 지배세력에 대항하도록 유도해 나갔던 것.
피지배 민족들은 스페인의 도움을 받으면 아즈텍의 멍에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반란에 가담한 소수족들이 코르테스에게 수십만 명의 현지인 군대를 제공해 줘 이들 도움으로 쉽게 수도를 포위한 뒤 정복했다.
이 단계에서 스페인 군인들과 정착자들이 멕시코에 도착했고 코르테스가 베라크루스 항에 상륙한 지 1세기 만에 아메리카 원주민 수는 90%가량 줄었다.
협소한 시각 때문에 코르테스로부터 혹독한 댓가를 치른 피지배 민족들은 뒤늦게 코르테스를 저주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코르테스를 필두로 한 정복자들은 악랄하고 탐욕스러운 데다 특히 인종차별이 심했다. -414~417쪽 -
그렇게 아즈텍은 코르테스의 치밀한 작전에 의해 내부로부터 무너져 내렸다. 갈등을 조장, 내부 분열이 일어난 결과가 이처럼 무섭다는 걸 현재 한국인들은 어느 정도나 인지하는지..
수많은 종교가 근대에 새로이 등장했다. 자유주의, 공산주의, 민족주의, 국가사회주의가 그런 예다.
이들은 종교라고 불리는 걸 좋아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이데올로기라고 칭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용어상의 문제일 뿐이다. 공산주의는 신을 믿지 않는다. 불교 역시 신을 가차 없이 다루지만 그럼에도 보통 종교로 분류된다.
불교도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자들은 인간 행동을 인도해야 할 초자연적 질서와 불변의 법칙을 믿었다.
불교도들은 자연법칙이 고타마 싯다르타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믿는 데 비해, 공산주의자들은 자연법칙이 카를 마르크스, 프르드리히 엥겔스, 레닌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믿었다.
유사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에는 경전과 예언서가 있다.
프롤레타리아의 궁극적 승리와 함께 역사는 곧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예언한 마르크스의 <자본론> 같은 책이다.
공산주의는 나름의 기념일과 축제가 있었는데, 5월 1일 노동절과 10월 혁명 기념일이 그런 예다. 순교자와 붉은 광장 같은 성전이 있었고 트로츠키주의와 같은 이단이 있었다.
소련 공산주의는 광적이고 포교에 열심인 종교였다.
우리는 세상의 신념들을 신 중심의 종교와 자연법칙을 기반으로 한다고 주장하는 신 없는 이데올로기의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324쪽-
유발 하라리는 통상 이데올로기라고 칭하는 자유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민족주의, 국가사회주의 등도 종교라 규정한다. 상상적 허구에 대한 믿음을 공통으로 하기 때문이란다.
경제발전으로 배가 불러진 탓인가, 어이없게도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태극기와 붉은 전단, 보수와 진보가 충돌하는 작금의 대한민국 사태가 씁쓸히 떠올려지는 대목들이다.
나치는 다른 인본주의자들과 달리 인류를 보편적이고 영원한 무엇이 아니라 진화하거나 퇴화할 수 있는, 변하기 쉬운 종으로 보았다. 인간은 초인으로 진화할 수도, 인간 이하로 퇴화할 수도 있다.
나치의 주된 야망은 인류의 퇴화를 막고 진보적 진화를 부추기는 일이었다. 나치는 인류의 가장 발전된 형태인 아리아인을 보호육성해야 한다고 세뇌시켰다.
유대인, 집시, 동성애자, 정신병자 같은 호모 사피엔스의 퇴화된 종류들은 격리하거나 심지어 근절해야 한다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330 쪽-
점점 더 많은 학자들이 문화를 일종의 정신적 감염이나 기생충처럼 보고 있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새 숙주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343쪽-
이제 사피엔스는 500년 전 과학혁명을 필두로 250년 전 산업혁명, 50년 전 정보혁명을 거쳐 생명공학과 인공지능이 일으킬 혁명을 우려하고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40억 년 유기물 생명체에서 벗어난 비유기물 생명체를 만드는 ‘지적 설계자’가 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인류가 이처럼 새로운 힘을 갖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될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만들어내는 능력에서는 유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만일 신이 존재하여 우리를 들여다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오늘날의 인류는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르는 불만스럽고 무책임한 생명체’에 불과할 것이라고 본 유발 하라리가 맞다.
오늘날 우리는 행복한 사피엔스인가? 진정 행복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는가? 무한한 탐욕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지는 않는가? 정말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 걸까? 2017
*늦었지만 이번 주에는 도서관에 들러 그가 Nexus에 쏟아놓을 충격적 경고를 접해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