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캘리포니아/2015

by 무량화


부산에서 동인으로 자주 만나던 유시인은 알코올 냄새만 맡아도 어지러워할 정도로, 전혀 술을 입에 대지도 못하는 분이었다.

동인 대부분이 학계나 문화계 종사자인데 반해 직업도 글과 별 상관없는 전기통신 분야 일을 했다.

그런 그가 취기 흥건한 칵테일 바나 포장마차 술꾼 기분을 그럴싸하게 아니 천연덕스럽게 잘도 읊었다.

시인은 얼마든지 은유와 환유로 자기감정을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지만, 포장이나 허구 허용이 인색한 문학 장르가 수필이다.

수필의 경우, 글쓴이를 만났을 때 글과 사람이 일치되지 않으면 일종의 묘한 배신감과 사기 같은 생각마저 든다.

실제로 접해보니 여태껏 갖고 있던 그의 이미지(분위기든 색깔이든)와 글이 서로 다른 경우 당혹감까지 느껴진다.

그처럼 가장 자기 다운 면모를 명명백백하게 드러내는 작업이 수필 쓰기다.

수필이야말로 글쓴이의 면모가 투명하게 반영되는 명경대, 그 정도로 적나라한 자기 고백의 글이란 인식이 강한 편이다.

좋은 수필은 깔끔한 문장력에 논리력도 체계적이어야 하지만 그 무엇보다 우선은 진실하고 진솔 담백한 글로 글쓴이의 진정성이 담겨야 한다.

이점이 바로 시나 소설과의 차이점이다.

글은 곧 그 사람이다. 뷔퐁의 말이 가장 적확하게 대입되는 장르가 수필 아닌가 싶다.

어떤 글이나 그 사람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며, 고로 글은 그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수필은 특히 더 그러하다.

수필을 잘 쓴다는 것은 생각과 느낌을 잘 표현한다는 말, 나아가 수필은 그 자신의 성품이므로 한 편의 수필에는 글쓴이의 인성과 품격이 배어있게 마련.

또한 자연스레 생활환경이나 인생노정 및 일상습관 등이 녹아 스며들어 있기도 하다.

처음 글과 만났던 삼십 대 때의 일이다.

동인 모임에 초빙된 국문학 교수로부터 한자 사용이 잦다며 글의 흠결로 당시 지적받았다.

한문 세대이기도 하지만 말을 축약시켜 주는 장점 때문에 여태껏 그 버릇 그대로 수정을 못한 채 굳어져 오늘에 이르렀다.

흔히, 좋은 글을 쓰려면 자신의 생각을 질서있고 조리에 맞게 구성하여 표현하되 통일성을 갖추어야 하며 관점이 분명해야 한다고 이른다.

즉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해야 하고 논리적이어야 하며 주제 및 접근 방식이 새로워야 한다는 것.

그러나 상허(尙虛) 이태준 선생이 쓴 <문장 강화>에서는 난삽한 설명 대신 목적에 알맞은 ‘도구’의 역할을 하는 글을 좋은 글이라 보았다.

디지털 시대인 오늘날은 말보다 글로 소통하는 일상 속에서 살고 있으니, 누구라도 아마 글쓰기와 분리된 삶은 생각하기 어려울 터.

그렇듯 모두가 '도구'로써의 글과 스스럼없이 친해져야 할 환경이다.



블로그에서 댓글로 만난 O님 내외분과 N님 등을 오프라인상에서 만날 기회가 주어졌다.

물론 사이버세상에서 인연 닿은 친구를 가상공간 아닌 현실에서 만나본 적이 더러 있긴 있었다.

부산 살던 오래전에도 홈페이지를 통해 만난 익명의 이웃들을 '행복한 동네'란 이름의 산행 동호인으로 모여서, 일 년여 근교 산행을 다녔다.

교구청 전산실 신부님을 비롯 대부분 젊디 젊은 성당 교우들이었다.

당시는 가톨릭에 입문하기 전이라, 초파일날 산행 시에는 내가 가끔 가던 절에서 다 같이 둘러앉아 비빔밥을 먹기도 했다.

미주중앙일보의 J블로그를 시작한 것은 2천 년 초 뉴저지에서였다.


그 후 LA 가까이 살다 보니 이곳에 거주하는 비슷한 취향을 가진 분들과 시에라네바다 산행을 통해 만나기도 하였지만, 근자 들어서는 연달아 타 지역 웹친구들과도 만나게 되었다.

Voice of America 기자로 근무하는 동부의 S님도 초면이지만 오래전 벗과 재회한 양 거의 호들갑스럴 정도로 반가운 데다 아무 스스럼없음은 참으로 신기한 노릇.

하긴 왜 아니 그러하겠는가. 오만 때만 자질구레한 속뜰을 이틀 거리로 죄다 펼쳐놓고는 댓글답글 주거니 받거니 한 사이 아닌가.

해서 하루 일과는 물론 우리 집 멍이와 괭이 이름이며 주방에서 쓰는 그릇 모양까지 파악한 분들이다.

O님 내외분이 마련한 자리는 분에 넘치게 풍성했으며, 다채로운 화제가 유쾌히 이어지므로 줄곧 파안대소를 터뜨리게 되었다.

댓글 봉사왕이신 O님의 순발력 넘치는 재치와 유머는 식탁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는데, 이를 시의 적절히 강약 조율하는 마나님의 내조가 바로 호방한 탱고웃음을 빚어내게 하는 원천임도 알았다.

갑장인 그분을 통해 나 자신을 바라보며, 훌륭한 내조란 서로를 돋워 굄돌 되게 하는 것임을 새삼 숙고하게도 되었다.

어~하면 아~눈빛만으로도 척척인 부창부수(夫唱婦隨)에 여고금슬(如鼓琴瑟), 정스럽고 건강하게 나이테 늘려가는 두 분 모습에서 근사한 연리목이 겹쳐졌다.



오리건에서 캘리를 방문한 N님 숙소인 메리어츠 리조트는 뉴포트비치에 자리해 있었다.

카타리나 섬으로 내리는 장엄 낙조가 감탄스럽다며 꼭 보여주고 싶다 했으나, 그곳에 닿았을 때는 이미 까만 어둠살에 태평양은 잠겨있었다.

밤 이슥토록 문학이라는 공통의 화제로 이야기는 끝 모르게 이어졌으며, 이른 시각 운무 감긴 해안길을 걸으면서도 우리의 관심사인 글쓰기를 주제로 한 대화는 끝간 데 없이 계속됐다.

블로그 운영을 오래 한 바도 아닌 분이니 블로거에 대한 얘깃거리가 적어 자연 문단이나 문예지 얘기가 주를 이뤘다.

같은 길을 걷거나 성향이 닮은 사람끼리는 만나면 대화가 통해 편안하므로, 그래서 비슷비슷하게 만나 교류 나누며 친분 쌓게 되는 모양이다.

특히 N님은 보편적인 이민생활자와 다른 특수 정보분야 전문직에 종사했으며, 미국인 부군이라 타국살이를 하며 대개가 겪는 애환과 고충에 관련된 여느 얘기는 들어설 공간이 없기도 했으니 화제의 중심은 줄곧 글이었다.

그녀는 남다른 경험과 독특하고도 다양한 체험이 쌓여있기에 일반 아녀자 한계를 뛰어넘어, 그야말로 글 소재가 무궁무진했다.

얼마든지 글 쓸 거리가 쟁여져 있으니 뒤늦게 들어선 길, 부디 곁눈 팔지 않고 오롯이 정진 또 정진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윤오영 선생의 지론인 즉 이러했다.

'작가마다 환경과 생애가 다르고 그 개성이 같지 않다. 내게는 내 소리가 있고 나만이 해야 할 말이 있으며 나만이 가진 수법과 비밀이 있으므로 여기에 준할 글을 써야 한다'라고 <수필 입문>에 적었다.

그렇다. 그녀에게는 그녀만의 고유한 음색, 나에게는 나만의 목소리가 있고 색채가 있다.

멀리 떨어져 살지만 글을 통해 서로 자극 주고받으며 격려와 성원 보내는 바람직스러운 관계의 문우로 남게 되길 바래본다.



단도직입적으로 쉽게 풀이하자면 자신의 생활 속 생각, 체험, 느낌을 사실적으로 자연스럽게 쓴 글이 수필이다.

수필을 사전적 의미로만 파악하면 '붓 가는 대로 쓴 글'이 되나, 사실 붓 가는 대로 글을 쉽게 써 내릴 수 있는 경지란 천의무봉 완벽한 신의 경지에 다다라야 가능하리라.

형식 자유로운 글이라 녹록하게 보는 수필이다.


이는 형식이 다양하다는 뜻이지 형식이 없다는 말은 아니며 무형식이 형식이라는 아주 까다로운 주문이 동시에 따른다.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많고 많은 글 중에 눈에 뜨일 만한 글쓰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힘들고 아득한만치 더욱 매력을 느낀 적도 젊어 한때는 있었다.

기왕이면 글 속에서 치열하게 활활 불타보고도 싶었다.

뜨겁게 타고 또 타 마침내 재마저 다 타 버린 들 어떠랴 싶었다.

그 가운데 하늘로 오르는 한 마리 불새에 빛 부셔하다 혼절해도 좋으리, 하면서.

수필은 소설로 쓴 시가 아니면 시로 쓴 철학이어야 한다고 윤오영선생은 수필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누누이 강조했다.

그렇듯 수필은 위대한 문호의 글(몽테뉴의 수상록처럼)이 아니면 깨끗한 문사의 글이라 정의 내린다.

선비 유림들의 심심파적 여기였던 문인화 같은 글, 조선조 달항아리 같은 정갈함이 담긴 글이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싶던 적도 있긴 했었다.

그러다 내가 쓰는 잡문 정도로 기운찬 산맥 되어 우뚝 서긴 어림없으므로 그저 조촐하니 만만한 뒷동산으로 만족하자 하였다.

허나 내 그릇, 나의 한계를 알자 의기소침에 빠져들게 되면서 슬그머니 짝사랑의 끈도 던져버렸다.


그러나 숨을 쉬듯 글이 숨결인 사람이다.


아주 외면하고 살 수는 없었다.


다시 돌아와 편편하게 맘 내키는 대로 쓰기로 했다..

수필은 자조 문학(自照文學)이라 하듯, 가식 없이 진솔하게 내면의 심경이 투사되는 자기 고백 문학이란 특성을 지녔다.

따라서 수필은 글쓴이의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 취미, 정서, 하다못해 숨기고 싶은 습관까지도 은연중에 노출되고 만다.

오래전에는 솔직히, 나를 가감 없이 드러내놓고 자신의 삶과 인생을 진실의 거울 앞에 비춰 보인다는 게 영 쑥스럽고도 부담스러웠다.

아직 마흔 안된 시기에 첫 책을 묶으며 나를 뭇 대중에게 드러낼 용기가 도저히 생기지 않아 제목조차 <주렴을 반쯤 열고>로 살짝 가렸던 이유다.

이제는 신변잡기만 늘어놓는 날라리 놀이판을 벌이고 사는지라, 의식적으로 수필이란 이름을 나와는 멀찍이 떼어 놓고 산다.

철이 든 지금에야 나의 글이 감히 난이길 바라지 않는다. 학이길 원하지도 않는다.

수수한 이웃, 무간한 친구로 족하며 나아가 무엇에도 구애됨 없는 마냥 자유로운 마음의 산책으로 충분하다.

욕심이 있다면 나의 글은 청자도 아니고 백자도 아닌 분청이길 바란다.

태 고운 청자나 백자보다는 쓰윽 휘두른 귀얄무늬 하나로도 멋스러운 풍류 간직한 분청이 되어 매화 저절로 꽃 피어나는 그런 경지를 터득하고 싶다.

그 꿈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2015


*브로컬리꽃ㅡ 대정뜰 브로컬리 밭이 수확기 지나자 브로컬리 송이마다 꽃이 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