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나의 연인은 내놓고 자랑시킬 만큼 격이 갖춰진 멋쟁이다. 전망 좋은 강가 높직한 언덕 위에서 필라델피아 다운타운을 품에 안고 그리스 신전처럼 장엄하면서도 우아하게 서있는 미술관이 바로 그다. 무미건조한 일상이 팍팍하게 여겨질 때면 윤활유를 치듯이, 괜히 마음이 갑갑하고 심란스러울 적엔 환기창을 열듯이 슬몃 그에게로 발길이 향해진다. 갈증 난 목을 축이는 나만의 옹달샘이자 잡다한 세간사로부터 해방되는 마음의 쉼터인 그곳. 그가 나를 청해 부르기보다 내쪽에서 기꺼이 데이트를 신청한다.
강을 건너고 도심을 가로질러 플라타너스 고색창연한 가로수길에 접어들면 저만치 그가 보인다. 곳곳에 샛노랑 은행나무 고목이 왕관처럼 찬연히 빛나고 있다. 그 옆으로 유유히 녹색 띠를 두른 스쿨킬강이 흐른다. 너른 광장의 기마상과 분수대 일별한 뒤 높직한 층계를 오르노라면 벌써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들뜬 속내를 들키고 싶진 않다. 크림색 대리석 벽에 잠시 얼굴을 기댄다. 홍조가 가라앉고 고르게 조절되는 동계(動悸). 이윽고 문을 밀면 미술관은 조용히 두 팔 벌려 나를 안는다. 행복한 데이트의 시작이다.
언젠가 필라델피아 한인회에서 미술관 내에 한국관을 꾸민다고 하였다. 뜻있는 독지가들의 후원과 미술 애호가들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관련 미술품들을 기증받아 독립공간의 한국관을 만들겠다는 취지는 가상했다. 동양관 한 귀퉁이에서 거의 있는 듯 없는 듯 청자 몇 점과 고가구 서넛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현 한국관이다. 자리는 초라하고 내용은 허술하다. 그럼에도 궁색스럽다거나 남세스럽지가 않다. 소홀한 대접이 서운하다기보다 오히려 반갑다.
관점에 따라서는 미슬관 측의 홀대가 무관심과 무성의로 비쳐 자존심을 자극할 수도 있겠다. 우수한 한국문화를 알리는 데 한몫할 수 있는 장소이자 기회를 놓친다 싶기도 하겠다. 반만년 역사와 전통을 지닌 문화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이 드높은 우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층 전시실의 인도관과 중국관을 둘러보고 나면 생각이 본질적으로 달라진다. 휴~빈약스러운 게 차라리 천만다행이라며 안도의 숨을 가만히 내쉬게 되니까.
아예 통째로 주추에서 지붕까지 들어다 옮긴 힌두 사원과 불교 사찰은 규모도 대단하다. 기도 바치던 신앙의 대상이었고 정신적 귀의처 역할을 하던 그것은 한 민족의 얼이 담긴 상징적 문화재였을 터다. 낯선 이역에서 지금은 단지 이국 풍물에 대한 호기심 어린 구경거리의 하나로 격하되고 말았지만. 춤추는 여신의 팔은 떨어져 나갔고 코는 이지러졌다. 풍만한 가슴은 희롱객의 손때를 타서 반들거린다. 가부좌한 부처님의 발은 뭉그러졌고 필시 광채 신비로웠을 백호(白毫)는 사라져 버렸다. 거대 화강암 불상을 토막 냈다 붙인 이음새 땜질 자욱이 거슬리기만 한다.
태어난 제 땅을 떠나 근본을 잃고 이국에서 한낱 관상물로 전시되고 있는 각 나라의 문화유산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리스를 떠나고 이집트를 떠나고 멕시코를 떠나고 캄보디아를 떠나고 한국을 떠난 미술품들로 가득 채워진 세계 유수 박물관들. 한 국가의 힘이 약해지면 먼저 영토를 야금야금 잠식당한다. 이어서 언어를 잃고 역사를 잃고 급기야 정신마저 잃고 만다. 그렇게 유형무형의 문화를 잃게 되면 결국 송두리째 모든 걸 잃게 되는 것이다. 정글의 법칙에 따라 약육강식, 적자생존이 적용되는 세상사다. 따라서 강한 나라는 침략국이 되고 약한 나라는 식민지로 전락한다. 탐욕스러운 약탈자만 나쁘다 탓할 게 아니라 제 것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수탈당하는 백성들이야말로 조상에게 면목없는 못난이다.
미술관 한국 코너에 이르면 버릇처럼 박병선 루갈따 박사님이 떠오른다. <직지심경>이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재불 사학자로 1975년 베르사유 국립도서관에서 외규장각 의궤(조선시대 왕실과 국가의 주요 행사를 글로 쓰고 그림으로 남긴 국가 기록물) 191종 297종을 발견해 세상에 알린 분이다. 이는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해군이 약탈해 간 우리 문화재로 몇 년간의 외교 줄다리기 끝에 마침내 저지난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한 다큐멘터리 영화에서처럼 '프랑스는 문화를 사랑하는 나라이고 약탈해 간 책을 소장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니 외규장각 도서를 한국으로 반환해 주길 촉구'하는 등 범국가적으로 노력한 결과이다
서울대를 마치고 유럽으로 유학을 떠난 그분은 학자로서 연구정진에 도움이 되는 좋은 조건의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지만 한국인의 DNA는 바뀌어지지 않는 것. 우리에겐 영광과 수난의 역사를 다시금 일깨우며 국력을 길러야 함을 말없이 각인시켜 준 고마운 어른이다. 여늬 미술품과는 달리 기록문화유산의 꽃이라는 의궤, 채색 비단에 그림도 선명하고 놋쇠 경첩을 물린 장정이 아름답다는 그 의궤를 한국에 가면 만나보게 될까. 현대 미국을 대표하는 조각 작품에서부터 루벤스 렘브란트 모네 고호 등의 그림으로 눈을 호사시킬 수 있는 이곳. 은행잎 날리는 만추, 연인과의 꿈결 같은 데이트는 그래서 '국력'이라는 묵직한 화두를 곱씹으며 마무리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