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차~

2017

by 무량화

어디선가 고소한 내음이 풍겨왔다.


옆집에서 버터로 반죽한 쿠키라도 굽나 보군, 흐음~~

굿 스멜! 하며 입맛을 다셨다.


조금 지나자 이번엔 탄내가 진동했다.


오븐에서 쿠키 들어낼 시간을 놓쳤나 보네, 오지랖 넓은 염려까지 해줬다.


부엌 쪽에서 연기가 새어 나오자 그때서야 아차차~ 주방으로 냅다 쫓아가 가스레인지 불부터 껐다.


옥수수 삶는 냄비뚜껑을 열어젖히는 순간 화기가 팍 밀려 나왔다.


세 자루의 옥수수 중 밑에 깔린 옥수수는 군 옥수수가 되었고 위에 올라앉았던 옥수수 하나만 성했다.


시커멓게 탄 냄비바닥, 또 손목 시큰하도록 문질러야 할 번거로운 일감을 만들어 놓고 말았다.


옥수수를 들어내고 단 냄비에 물을 붓자 치지직 소리도 요란했다.


일단 물에 담가놓아 탄 부분을 불리기로 했다.


어쩌다 한두 번 일어나는 사고가 아니라 기가 차게도 번번 이 짓거리다.


곰국이나 백숙도 더러 그럴진대 호박잎, 양배추, 고구마, 감자를 찜틀 받치지 않고 그냥 삶거나 찌다간 내용물 태워먹기 일쑤.


제철을 맞아 참하게 알이 찬 옥수수가 마켓에서 세 자루에 1불이었다.


여름이면 한번쯤은 먹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딱 1불어치만 샀다.


한국 찰강냉이보다도 연하고 달큰한 Sweet corn을 나는 좋아한다.


미 동부 대평원에서 재배되는 스윗 콘, 농장지대를 지나다가 한 마대에 5불이면 살 정도로 아주 가격도 저렴하다.


껍질을 벗겨내자 쪽 고른 이처럼 단정히 박힌 옥수수 알갱이가 맛깔스러운 노오란 빛을 띠고 있었다.


옥수수수염차를 만들 요량으로 옥수수수염은 따로 정하게 모아 건조시키려고 햇볕 아래 내놓았다.


여기까지는 '알뜰한 당신' 역할을 제대로 하며 그럴싸한 살림꾼 흉내도 내봤다.


그러나 냄비에 물을 알맞게 깔고는 옥수수를 포개 넣고 가스불 위에 얹은 다음이 문제였다.


단순한 한눈팔기나 건망증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컴놀이 삼매경에 빠져서, 불위에 얹어놓은 냄비는 깡그리 까먹고 말았으니..



다른 일하며 부엌에 머물렀다면 목전에서야 태우는 일 없으련만.


그 잠시를 못 참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간 사달이 나기 십상이다.


컴이 Come! Come on! 하며 홀려대는 데야 어찌 그녀의 유혹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을쏘냐.


술, 도박, 마약, 게임, 모든 도락이 중독성이 있어서 한번 사로잡히면 헤어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흡인력이 강하다.


마찬가지로 컴 안에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희한하게도 애어른 할 거 없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푹 빠져들게 만든다.


인터넷 고을로 마실 나간 시각과 청각은 몽유도원도 같은 별유천지에서 노니느라 정신줄 놓은 채 그 외의 딴생각은 못한다.


그나마 다행히 후각 덕에 냄비째 온통 숯검댕이를 만들지 않고 그 정도 사태에서 그친 셈이다.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 했다.


두 신선이 두는 바둑 구경에 정신 팔려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나무꾼 도낏자루는 썩어버렸다던가.


爛柯之樂이 주는 교훈을 하얗게 잊고 ‘컴퓨지락에 빠져 날 새는 줄 모르는 나'에게 들이미는 따꼼한 경구 아닌가 싶다.


집중해야 할 본연의 임무는 제쳐두고 이렇듯 다른 일에 정신 쏟다 보면 시간낭비는 물론 어이없는 실수를 되풀이하게 된다.


무슨 도락이건 도를 넘어 빠져들었다가는 틀림없이 보다 큰 문제를 야기시키고야 마는 법,


이쯤에서 절제와 조율의 묘를 곰곰 숙고해 봐야겠다. 2017



*​ 십년 전인 그때나 이제나 여전히 제버릇 못 버린다. 어제도 고구마를 찌다가 냄비를 통째로 구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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