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수 없음을 아파하고

2015

by 무량화


인덕이 많은 편이라 살면서 주위로부터 크고 작은 도움을 무수히 받았다.

그럼에도 고마웠던 기억은 쉬 잊히는 반면, 섭섭한 일을 당해 서운했던 감정은 잘 잊히지 않고 앙금으로 남는다.

해서 '남에게 베푼 은혜는 모래에 새기고, 남에게 받은 은혜는 바위에 새기라'고 했으리라.

어제 일이다.

쓰레기 수거일이라 일찌감치 쓰레기통을 여럿 길가에 내놓았다.

깜박하고 있다가 해질녘에 나가보니 우리 집 대문 옆에 빈 쓰레기통들이 얌전하게 조루루미 서있었다.

언젠가처럼 아마도 옆집에 사는 테드가 친절을 베풀었지 싶다.

테드는 여나믄살쯤 된 소년으로 얼굴에 주근깨가 많은데 가시나처럼 수줍음도 많이 탄다.

마당에 나와 장난감 산탄총을 갖고 놀다가 스티로폼으로 된 길쭉한 총알이 우리 집 잔디밭에 날아오면 선뜻 꺼내가지 못한다.

언제든 들어와 집어가라 했건만 울밖에서 머뭇거리며 바라만 볼 뿐이다.

몇 번인가 그걸 주워서 테드집과 우리집의 경계인 블록 담 위에다 올려놓아 두었다.

태드 엄마가 번번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

부모가 다 직장에 나가니 쓰레기통 들여오는 일은 학교에서 일찍 돌아오는 테드 몫이었다.

언젠가 저물도록 방치된 채 덩그러니 서있는 우리 쓰레기통까지 녀석이 끌어다 놓는 걸 창 너머로 본 적이 있었다.



서부로 이사오기 전 인사차 메릴랜드에 사시는 막내이모를 뵙고 오던 길이었다.

딸내미가 교민과 결혼하자 손주들 돌보러 오셨다가 그 연결 고리로 작은아들도 미국에 건너와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럭저럭 미국할머니가 된 구순의 이모시다.

한국정서가 어디가랴.

이모는 손수 담근 포기김치, 오이소박이, 부추김치를 각각 밀폐용기에 담아 보자기 매듭도 야무치게 묵어서 가방에 바리바리 싸주셨다.

거기다 워싱턴 한인성당 주임신부님 강론집 세 권을 챙겨 넣은 가방까지, 양손 짐이 꽤 묵직했다.

필라델피아행 암트랙을 탔다.

기차역에 닿으면 곧바로 뉴저지 가는 지하철이 연결될 테니 혼자서도 충분히 집에 갈만 하다.

혼자서도 잘해요~ 치기어린 아이같은 발상에 스스로 만족해하면서 내심 빙긋거렸다.

지레짐작을 혼자 해버리는 데다 매사 단순하게 생각하는 평소 성향대로였다.

필라 역에 내렸을 때까지만 해도 자신만땅에다 의기양양, 뉴저지행 지하철 노선을 찾기 시작했다.

으레 한자리에 집결되어 있으려니 했던 지하철 타는 곳은, 역 주변 여기저기 둘러봐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었으나 잘 모른다며 고개를 젓고 더러는 설명을 해주는데 도무지 어딜 말하는지 감이 안 잡혔다.

누군가는 서브웨이 위치를 물으니 당당히 인근 샌드위치집으로 인도해 줬다.


하긴 지하철 명칭이 뉴욕에선 서브웨이, 워싱턴 디시에선 메트로, 샌프란에선 바트, 보스턴에선 더 (The T), 필라에선 셉타였으니.




그렇게 한참을 헤맸다. 점점 난감해졌다.

해는 뉘엿뉘엿 져가고 길은 모르겠고 짐은 무겁게 들고..... 맥이 풀렸다.

요셉에게 데리러 오라는 전화를 하려다 슬그머니 오기가 발동, 끝으로 한 번만 더 물어보기로 했다.

간호보조원 복장을 한 검은 피부의 아가씨는 네 블록을 걸어가야 한다며 손짓까지 섞어 설명을 해주었다.

하건만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되고 동서남북도 도통 모를 판이었다.

풀 죽은 표정에다 피곤한 기색 역력한 내가 딱해 보였던지, 잠시 망설이다가 그녀는 자기를 따라오라 했다.

양손에 든 짐 중 부피 큰 가방을 선뜻 받아 들고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녀의 넓은 보폭을 따라잡으려니 나는 반쯤 뜀박질하듯이 걸어야 했다.

도심의 뒷골목은 대개 어디나 그렇듯 후미지고 지저분하다.


특히 필라는 범죄가 잦은 도시의 하나이기도 하고.

아마도 질러가는 길을 아는 듯 그녀는 좁은 길로만 들어서는데 그것마저 께름하니 미심쩍어졌다.

낯선 이를 따라 이리 음침한 길을 가도 되나? 슬그머니 겁이 나며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힘들어서 그만 택시를 타야겠다며 짐을 건네받으려 하자 이제 거의 다 왔다면서 그녀는 길 건너편을 가리켰다.

정말이지 엉뚱한 자리인 저 건너 한쪽에 낯익은 지하철 역사 입구가 보였다.

그녀는 계단을 내려와 매표소 앞까지 짐을 들어다 놓고는 표를 사라는 눈짓을 했다.

비로소 긴장이 풀리며 안도감이 들었다.

동시에 길안내를 해준 그녀의 호의에 대한 고마움과 아울러 잠시지만 그녀를 의심했던 것이 너무도 미안스러웠다.

선입견이란 게 이리 고약한 것임도 재삼 느꼈다.



도저히 땡큐~한마디 만으로는 부족했다.

영어가 자유로우면 이 고마움을 충분히 언어로 전달할 수 있으련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사의 뜻을 무언가로라도 대신하고 싶었다.

마침 표를 사려고 지갑을 열었기에 20불짜리를 한 장 더 꺼내 그녀 호주머니에 넣어주려는 찰나.

놀란 표정으로 천만에~하고는 얼른 층계 쪽으로 돌아서면서 그녀는 손을 크게 흔들어 보였다.

당신 얼굴에 당신 마음이 고스란히 씌어있으므로 그 진정을 다 헤아렸어요, 라는 듯이 뒤돌아 환하게 미소를 보내는 그녀.

그때 바라본 그녀 이마에 윤기같이 어린 물기를 보았다. 땀이었다.

족히 15분을 그 무거운 짐까지 들고 앞장서 걸었으니 그럴 만도 하였다.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그녀에게 되갚지 못한 이 고마운 심정 어이할거나.

살면서 누군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나 또한 말없이 이처럼 도움 주리라 다짐했으나, 막상 닥치면 그게 생각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걸 안다.


노고의 질량과 소요되는 시간을 재고 따지느라 선뜻 돕기 주저가 될 터라서.


선한 선택이 그렇듯 항상 쉬운 것만은 아니라서다.


그녀처럼 이해상관없이 망설이지 않고 기꺼이 남을 돕는다는 것이 아무에게나 가능한 일인지.

주기만 하는 사랑이라 지치지 말고 / 더 많이 줄 수 없음을 아파하고... 한용운선생의 인연설 한 구절이 한참을 맴돌았다.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