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대 세대는 디지털 시대가 버겁다

이제는 AI

by 무량화


세상은 나날이 아니 초 단위로 계속 진화한다.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초고속으로 발전해 나가는 디지털 시대가 반갑기보다 버겁기만 하다.

낮에 시내 돌아다니다가 입이 말라 마실 것을 사려니 편의점이 안 보였다.


때마침 가까이 KFC 매장이 있기에 들어갔다.

카운터에 서있는 점원은 주문을 받기는커녕 손님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제 할 일만 하고 있었다.

참다못해 "저기요, 음료수 하나 주세요."채근했더니 대답 대신 손으로 옆의 모니터를 가리킨다.

필요한 품목을 직접 찍은 다음 카드를 넣고 계산까지 원스탑으로 자기가 처리하니 구태여 말이 필요 없다.

새로운 기계나 전자제품에 적응이 얼른 안 되는 구시대 사람인 경우 잠깐 혼란이 인다, 키오스크는 또 뭔공?


한번은 아들네 아파트 초입에서부터 진입 차단이 되었다. 그것도 밤중에 홀로.

숫자 외우는 번거로움을 대신해 줄, 칩 카드를 들고 나오지 않은 데다 배터리 제로 상태라 전화기는 무용지물이었다.

아파트 각 가정마다 자체 보안설비가 잘 되어있기에 굳이 필요성을 못 느낀다며 경비실을 폐쇄한 상태라 도움받을 길도 없다.

설상가상, 순간 퍽 난감했으나 누군가 입구 게이트를 여는 사람이 있어 문을 열면 딸려서 들어가려고 무작정 기다렸다.

한참 후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고 피자 배달원이 도착한 덕에 아파트 첫 단계 관문을 돌파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열려라 참깨! 현관 벨을 눌러 쉽게 해결이 됐다.

집안에 들어서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이 되며 이놈의 첨단 시스템 때문에 잠깐 허둥거린 당황스러웠던 순간이 헛웃음 되어 터져 나왔다.

바보가 따로 없이 잠시 멘붕 상태가 된 자신에게 어이가 없었고 기도 찼다.

이렇듯 헛똑똑이에 문명 지진아인 난, 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자주 첨단과학 앞에 무기력하게 무장해제 당하는 일이 빈번하리라.

무참스럽지만 사실 어쩔 도리가 없다.

요즘 아파트 현관문 잠금장치는 거의가 디지털 도어록 방식 즉 전자식이다.

첨단 시스템을 적용, 보안성이 보다 뛰어난 지문 인식이나 홍채 인식을 통한 생체 인식 기능을 가진 제품도 있다.

디지털 도어록은 스마트폰과 연동이 되면서 보안이 더 철저해졌는가 하면 여러모로 한층 안전이 보장된다고 한다.

한참 전의 방식은 비밀번호를 누르는 동안 누군가 엿보기도 할뿐더러 숫자판이 마모되며 번호가 유출될 수 있는 단점이 있었다.

최근 들어서는 이를 보완, 비밀번호를 누를 필요 없이 전자 키를 이용하는 원터치 방식이라 문 열기가 아주 쉽다.

그러나 작동이 쉬운 반면 자칫 실수로 칩카드를 안 들고 나올 경우, 여타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는 속수무책 상태가 되며 졸지에 할망 수준 노출돼 본색을 드러내고 만다.

자고로 순경 열 사람이 지켜도 한 도둑 막기 어렵다 했던가.

실제 어떤 잠금장치라도 시간만 충분하다면 다 열 수 있다 하나, 반면 완벽을 기하기 위한 문단속 기술 역시 일취월장할 것이고.



먼 옛적엔 야심한 밤, 정 휘적거리면 방문 고리에다 숟가락을 걸쳐두었다.

여간해선 대문 빗장도 지르지 않았으며 사립문은 늘 열어놓고 살았다.

집집마다 키우던 삽사리나 누렁이가 토방에 엎드려 신실한 파수꾼으로 밤낮없이 집을 지켰으니까.

하긴 서로 간에 뉘 집 설겅의 밥그릇이며 수저가 몇 갠지 살림규모를 훤하게 꿰고 있는 형편 아닌가.

굳이 꽁꽁 잠그고 자시고 할 거도 없는 데다 일부러 눈에 불 켜고 지켜야 할 보화 따위가 애당초 없어서 이리라.

금붙이가 많아 패물함이 있는 양반 댁이나 수하에 하인 거느린 토호 집 쌀뒤주에나 붕어 모양의 백통 자물쇠가 걸렸었으니.


볏섬 마지기 거두는 부잣집 곳간에는 당연 큼다큼한 무쇠 자물통이 채워졌을 뿐이었다.

차츰 집집마다 살림이 피면서 고가품 늘어나 문을 잠그는 방식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자물쇠를 열 수 있는 열쇠는 필히 챙겨 들고 다니게 됐다.

열쇠라는 게 성가시기도 하지만 자칫 잃어버리기 쉬워 아예 외출 시는 식구끼리 비밀 장소를 정해두고 숨겨놓기도 했다.

열쇠 간수 방법이 허술하기로는 문 앞 화분 밑이나 돌 사이 또는 구석진 틈을 보관 장소로 삼았을 만큼 어수룩하던 시절도 있었다.

심지어 아이들이 학교 가며 목걸이 열쇠를 걸고 다닌 때도 있었다.

작고 납작한 열쇠를 자물쇠 틀 안에 넣었을 때 홈이 파인 부분과 모양이 딱 맞으면 찰카닥 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

그런데 이런 초보 기계식은 보안이 취약해 자물쇠를 여는 열쇠 떨이 도둑이 성행하기도 했다.

열쇠와 자물쇠 원리만 안다면 문을 따기가 쉬운 데다 복제도 얼마든지 가능해 안전상의 허점이 컸던 것.

이제 뭐든 디지털화되는 세태 따라 잠긴 문을 열 때 쇳대를 사용하는 대신 간단 편리한 전자동 전자식 시스템이 동원된다.

세상 살기 참 편해져 가고 있으나 새 문명의 이기들과 스스럼없이 친해지기까지 적잖은 시행착오는 물론 실수도 당연한 통과의례처럼 거쳐야 함이 좀 어척없다.

결국 이해도나 응용력 또는 순발력 따위가 나이와는 반비례하는 걸 별수 없이 수긍하며 살기로 한다.

한편, 기왕이면 적극적으로 응전과 도전을 하며 약간은 긴장 유지한 채 살아가기로 내심 다부진 작정도 했다.



바야흐로 이제는 AI시대다.


쳇지피티, 제미나이와 친구 맺어 활용법을 익혀야 되는 세상이 왔고, AI에게는 무엇보다 질문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질문을 잘 던지는 능력은 인간의 지식·이해·통찰을 전제로 하기에 인문학 그중에도 철학은 필수라는데.


불원간 도래할 AGI시대에는 앞으로 대체 뭘 어찌 대비해야 하나?


예전에는 열쇠를 잃어버리면 발을 동동 굴렀고,
지금은 배터리가 꺼지면 발을 동동 구른다.


형태만 바뀌었을 뿐, 당황스러움 자체는 예나 이제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일까. 이 낯선 시대를 마냥 두려워하기보다 조금은 어설픈 채로, 조금은 느린 채로 한 걸음씩 따라가 보기로 한다.


완벽하게 익숙해지지 못해도 괜찮고 가끔은 길을 잃고 멈춰 서도 괜찮다.


그 멈춤마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일 테니까.


다가올 AGI의 시대, 새로운 벗들과 더불어 무엇을 더 갖추어야 할까를 묻기 전에 어쩌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건지 모른다.


기계는 답을 빠르게 내놓지만 질문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좋은 질문은 결국 잘 살아온 시간과 지혜의 깊이 혹은 폭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그러니 서두르지 말고, 내가 살아온 방식대로 세상을 이해하고 궁금한 것을 물어야 할 때는 묻고, 낯선 것에 손을 내밀며 조금씩 이 시대와 악수 나누면서 살아갈 것이다.


변화 한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잘 잡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받아들이기로 한다.


쇳대를 쥐고 살던 시절의 내가 이제는 보이지 않는 열쇠를 꼭꼭 누르며 살아가듯,


우리는 그렇게 시대가 바뀔 때마다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문을 열어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