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 상쾌, 통쾌! 한바탕 즐기다

창극 배비장전

by 무량화


유쾌, 상쾌, 통쾌까지나!

경건하게 지내야 할 사순시기에 이래도 되나?

40일간의 영적 여정 중에는 금식하며 기도하고 절제 생활을 해야 하거늘 한바탕 신나게 즐기다니.

파안대소, 포복절도, 가가대소, 박장대소!

시종일관 눈과 귀를 즐겁게 한 이런 무대는 첨이다.

화끈하게 웃고 즐겼다.

그것도 무려 100분 간을 스트레이트로 쉴새없이.

웃음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최고의 자연 치유제이자 면역력 강화제가 아니던가.

환한 웃음이야말로 보약 중에 보약이다

심한 일교차로 들락 말락 하던 고뿔은 그 덕에 확실하게 제압됐다.



서귀포 예술의전당에서 '창극 배비장전' 공연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곧장 예약을 해뒀다.

공연 당일 밤, 컨디션이 난조를 보였으나 주말이라 돌아와서 푹 쉬자며 거처를 나섰다.

대극장 로비 앞은 복잡했다.

사진 몇 장 찍은 다음 시간 맞춰 객석으로 들어갔다.

무대 아래 지하공간에 위치한 오케스트라 피트에서는 이미 좌정한 관현악단원들이 악기를 고르고 있었다.

가야금 거문고 해금 아쟁 대금 소금 피리소리가 곧 창극 무대를 열리니.

공연 팸플릿 내용을 훑어보자 출연진 면면은 몰라도 무대 장식만 봐도 제대로 왔구나 싶었다.

전북도립국악원의 기획공연이라니 정통 국악은 물론 창극이라면 전라도 아닌가.

무대 장치, 의상, 조명, 관현악 반주가 어우러진 한국 고유의 오페라인 창극이다.

판소리의 창법을 기본으로 이루어지는 소리극의 하나인 창극이니 제대로 한번 흥 돋구겠구나, 얼쑤!

좌석이 앞자리라 무대 바로 턱밑에 앉았으니 출연진의 표정까지 읽히겠고 이래저래 잘됐다.



제주를 무대로 한, 제주의 멋을 한껏 살린, 해학창극으로 웃음과 풍자 담은 가무악(歌舞樂)인 배비장전.

배비장전의 등장인물은 배비장, 기녀 애랑, 김경 목사, 방자 차돌 외에 여러 기녀와 마을 주민 등이다.

제주로 부임하는 목사를 따라 배에 오르기 전 삼대독자 배비장은 부인 면전에서 큰소리치던 사내였다.

“만일 내가 주색에 빠지면 당신 아들이요, 내가 성을 갈겠오.”

여색으로 사람을 홀리는 제주라며 노모까지 길을 막자 절대 한눈팔지 않겠다며 굳게 약조를 한 그다.

풍랑을 헤치고 겨우 제주에 닿은 그는 우연히 정비장과 기생 월선과의 이별장면을 목도하게 된다.

월선에게 그간 모은 재물이며 옷가지마저 홀랑 빼앗기고 정표라며 앞니까지 뽑힌 정비장.

이 꼴을 목도한 배비장은 정비장을 비웃으며 가일층 꼿꼿하게 지조를 지킬 것을 다짐한다.

그러나 천하에 고고한 척 위선 떠는 벼슬아치의 이중성이라니.

배비장이 알몸으로 망신을 겪자 익살맞고 해학 담긴 입담으로, 하급 계층이 상류층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맨도롱 안아보곡 소랑하옵서.

돌 바람 여자가 많아 삼다도라 불리는 제주.

신비의 섬 제주에서 쉬멍 놀멍 소랑하젠 노래 부르며 평화로이 물질하는 해녀들이 여는 무대.

너영 나영 두리둥실 노닐자는 기녀들의 화려한 춤사위 속에서 술잔 기울이는 목사와 비장들.

저들을 비웃던 배비장이 어느 날 한라산 오르다가 어릴락 비칠락 애랑이 목욕하는 뒷태에 홀려버린 그.

마침내 상사병에 걸려 애랑이 환상으로까지 보일 지경에 이르자 배비장은 그녀에게 편지를 보낸다.

혼저 옵서예, 밤에 조심히 오라는 답신을 받고는 밤을 기다리는 동안 거의 안절부절 애가 끓는 사내.

벙거지를 쓰고 변장한 채 애랑의 집에 당도한 배비장은 거의 졸도 직전의 무아지경에 이르나....

속절없는 사랑타령, 모든 환상의 끝은 비참함이다.

독야청청 지조와 신의 굳은 배비장을 훼절시키려고 목사와 애랑과 방자가 꾸민 작전인 줄 모르는 사내는 급한 김에 가야금 자루에 숨었다가 사도세자처럼 나무궤 속에 갇히기도 한다.

궤짝을 바다에 던져버린다는 서슬에 놀라 결국 살려달라며 튀어나와 개헤엄 치는 배비장의 꼬락서니라니.



창극단·관현악단·무용단 등 총 110명 규모의 예술단을 이끈 예술 총감독은 김차경, 무대감독 정채홍이다.

극본은 정선옥 작가, 작·편곡 이화동, 안무 이윤경, 음악감독 이용탁, 지휘는 황승주 관현악단장이 맡았다.

특히 관현악단의 안정감 있는 연주가 빛났으며, 음향으로 극적 긴장감 고조시키며 관중 몰입도를 높였다.

혼연일체 되어 각자 위치에서 창극단과 무용단 저마다 최선을 다한, 전체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무대였다.

배비장 역을 맡은 김도현 명창은 전주대사습놀이 명창부 대통령상을 수상한 실력파다.

애랑을 통해 전통 창극의 매력을 관객 앞에 펼쳐 보인 최현주 명창은 전북 무형문화재 이일주선생 심청가 이수자이다.

단선 구조의 에피소드를 주 재료 삼아 제주 목사의 비장으로 섬에 따라온 배비장이 기생 애랑에게 홀려 혼쭐난다는 줄거리를 맛깔스럽게 잘도 버무렸다.

화려한 무대와 의상, 조명과 춤, 판소리 등 통해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 배비장전은 한마디로 유쾌 통쾌.

모처럼 맘껏 파안대소하며 신나게 즐긴 창극 배비장전이다.

이튿날 오후 공연 예약해 꼭 관람하라며 두 친구에게 적극 추천한 무대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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