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가지에 닿을 무렵 오후 여섯 시였다.
시간 넉넉하진 않았으나 서둘러 가면 법환 바닷가에서 일몰 순간을 접할 터였다.
해넘이 시각은 6시 37분이었다.
우리는 이심전심, 남쪽 바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서귀포터미널에서 내려가는 이 법환리 길은 훤했다.
제주 일년살이를 계획하고 거처를 찾아보려 첨 왔던 곳이 신시가지.
검색 통해서 결정한 집은 범섬이 마주 보이는 전망 좋은 집이었다.
근처 중개사 사무실에 들러 계약관련해 문의했더니 문제 있는 집이라며 오히려 현지 공인중개사가 말렸다.
다른 집을 찾기로 하고 주택단지를 벗어나 일단 심신 환기시키려 바다 향해 걸어 내려갔다.
걷기라면 하루 종일도 무작정 잘 걷는지라 그렇게 휘적휘적 법환바닷가에 닿았다.
훗날 알고 보니 그 자리가 두물머리공원.
게서 우연히 만난 두 교우를 통해 서귀포 원도심이 생활조건 낫다는 조언에 따라 그녀 차를 타고 중앙로터리로 향해 현 거처를 결정하게 됐다.
벌써 오 년 전 일이다.
그 이바구를 나누며 걷다 보니 서쪽 하늘이 눈에 띄게 붉어졌다.
노을을 맞기 위해 그때부터 헛둘헛둘 달음박질을 쳤다.
헉헉, 숨이 찰 즈음 우리는 두물머리에 닿았다.
왼편 수평선 위로 멀찌감치 범섬 모습이 드러났으며 법환방파제와 강정항 크루즈도 나타났다.
해는 점점 바다 가까이로 내려왔다.
일출 하늘만이 선혈처럼 붉은 게 아니라 해넘이를 앞둔 하늘도 지켜보니 처연하게 붉었다.
적당한 구름이 배경으로 받쳐줘 붉은 하늘 열정으로 불타 올랐고 서녘으로 스러지기 직전의 석양은 장엄 풍경을 연출했다.
바다가 아니라 구름층 사이로 조용히 침몰해 사라져 가는 해를 눈도 깜빡이지 않고 지켜보았다.
참으로 찬연하면서도 평온했다.
우리네 삶의 종결도 저처럼 고요할 수 있다면, 이승과 평화로이 작별할 수 있다면, 그 누가 소멸을 두려워하랴.
겨울 지나 봄 오고 밤이 가면 아침 맞듯 영혼의 부활을 믿는다면 그곳은 곧 피안이려니.
사바의 번뇌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이르는 경지라면 우리 미소 지으며 그 길 가리니.
노을이 잠기고도 한참토록 서건도에 은은히 감도는 빛의 여운은 아주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종당엔 바다와 하늘 모두 푸르스름한 침묵 속으로 빠져들자 괜히 심사 멜랑코리해지며 착 가라앉는다.
해가 지고 어스름 내릴 때마다 스며드는 묘한 정서.
하늘과 땅에 남아있는 마지막 햇빛의 기운으로 따뜻하면서도 차분히, 고요하면서도 애연히 풍기는 아득한 이 분위기, 참으로 좋다.
하루의 마무리가 건네는 따뜻한 위로가 배인 쓸쓸한 아름다움이랄까.
너울거리며 흔들리는 바다는 붉은 여명 더불어 하늘의 푸른 잔광 스며들어서인지 무척 어둔 색이다.
농도 짙어지며 컬러 톤이 한층 깊어졌을 터다.
파도소리 바람소리 더불어서였을까, 은밀스럽고도 애틋한 정서를 자아내게 하던 서건도의 선셋.
실루엣만 드러난 그 섬은 드러냄과 숨김을 최대로 절제, 이미지의 완결성 대신 오로지 어둠의 여운에 몸을 맡긴 듯.
사라짐과 떠남이 주는 허무감은 그러나 無爲요, 텅 빔은 없음이지만 공백이 아니라 비워져야만 비로소 충만할 수 있다 하였거늘.
문득 한기가 느껴져 팔짱을 끼자 심장이 규칙적으로 힘차게 뛰는 고동이 전달되며 새삼 생의 의욕 뜨거이 솟구쳤다.
이 순간 감사하게도 아직 건강히 살아있으며, 우리의 역사는 단편 스토리일망정 계속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