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파도

색달해변

by 무량화

요즘 기상도는 맑으나 거의 날마다 시야 흐리다.


봄철이면 더욱 기승 부리는 황사 때문이다.


가까이 붙어있다 보니 중국에서 마냥 날려 보내는 공해 찌꺼기들이 계절풍 따라 덮치곤 하는 한반도.


인천 서울은 더 심한 영향권, 제주 역시 서쪽으로 쏠려있어 부산보다 훨씬 미세먼지 농도가 높다.


해서, 아침에 한라산 자취가 희미하다면 바깥활동에 제동이 걸린다.


그렇다고 오는 듯 가고 마는 이 짧은 봄날을 두문불출, 죽치고 앉아있을 수야 없는 일.


피할 수 없으면 나름껏 즐기라 했다.


바람 고요하고 청명한 날은 마스크 챙겨 무조건 바다 쪽으로 향한다.


시야 뿌연 터라 청명하다고 해도 가시거리는 짧다.


도리 없다.


이번엔 벚꽃길 따라 중문 관광단지에 있는 바다를 찾기로 한다.


벚꽃과 상쾌한 파도 소리 따르는 색달해변이다.

며칠 전 미라지로 유채꽃 보러 갈 때만 해도 봉오리 꼭 다문 채 시침 떼던 벚꽃.

기온이 오르자 중문 가로를 따라 그새 벚꽃 개화해 얼마 후면 꽃터널 이룬 채 길 양 켠에 꽃구름 화사할 터다.


오션 뷰가 멋진 데다 벚꽃 피어나기 시작하는 신라호텔 쪽에서 해변으로 나있는 계단을 내려갔다.



서귀포 해안은 거개가 현무암 뒤덮여 새카만 바위투성이다.

반면 주상절리가 발달한 중문 해안만은 고운 모래톱이 펼쳐져 있다.

태평양 바닷가, 그중에서도 말리부를 연상시키는 풍광인 이유는 걸릴 거 없이 탁 트인 수평선 외에도 여럿.

이국적인 물색과 늘씬한 야자수와 결 부드러운 모랫벌 그리고 계절 없이 파도 즐기러 찾는 청춘들로 해서다.

먼바다는 은가루 뿌린 양 아름다이 윤슬 빛나며 물굽이 연달아 일궈 해안으로 해안으로 크고 작은 파도 밀어 보낸다.

그렇게 파도 거듭 밀려와 통쾌하게 산화하며 하얀 물거품으로 잦아든다.


그리고 다시 밀려오는 파도 파도.

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와서 허무로 끝나버릴 수밖에 없는 처절한 사랑 영겁토록 해야 하는 파도.

파도소리 들으며 해변 저 끝까지 맨발로 걸었다.


Stranger on the Shore ~ ♫ ♬ ...클라리넷 선율 맑은 해변의 길손되어.


오랜만이다.


물은 차갑지 않았고 찹찹하게 젖은 모래는 발바닥을 간질렀다.


봄바다다이 찰싹대는 물결 유순하다가 한 번씩 파도 느닷없이 쳤다.


바지를 무릎 가까이 접어 올렸음에도 옷이 젖고 말았다.


케세라세라~이제 바지 젖는 것쯤 안중에도 없이 더 바닷물 쪽으로 다가간다.


조심하던 처음과 달리 한번 후질러지면 마구 젖어버리고 싶은 심리의 근저는?


에라 모르겠다 식의 체념이 아니라, 조심할 명분이 사라지자 오히려 자유로와지며 절제 풀린 해방감을 느껴서일까.


이는 리셋 증후군(Reset Syndrome)의 일종으로 심리적 부담을 없애기 위해 '완전한 포기'를 선택하게 되는 건지도.



수질 환경조사 결과 전국 해수욕장 가운데 최고의 청정 해수욕장으로 인증받은 중문색달해수욕장.

높다란 사구 위에 자리 잡은 건물 대부분이 대형 호텔들로 아마도 내부관리를 철저하게 잘하고 있는 모양이다.

해변에 밀려와 널브러진 해조류가 많은 걸로 미루어 보건대 생태계도 아직은 건강한 편인 듯.

관광 제주가 품은 바다라도 주변 환경에 따라 오염되거나 죽어가는 바다도 더러 있기에 하는 말이다.

특히 육상 양어장이 즐비하게 들어선 구역이라거나 하수처리장이 있는 인근 지역 바다 생태계는 심각한 상태였다.

딴에는 지나쳐 쓰잘데기없는 오만 잡념 떨구고 바다멍 때리며 무진 앉아있고 싶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는 색달해수욕장.

가끔씩 휘리릭 들러, 한참을 바다 바라보다가 오고 또다시 다녀오고 싶은 나만의 공간 하나로 추가해 둥 곳이다.

모래사장 그리 긴 편은 아니나 모래 둔덕 알맞게 깔아두었고 주상절리대와 해식동굴이 있는 쪽으로 나가면 곧장 주차장에 이르는 장점도 있다.


언덕길 너머 별 내린 전망대 아래 성천계곡은 매해 봄, 물소리 새소리 즐기며 정갈한 햇쑥을 뜯는 나의 비밀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