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레낭&번행초
남들은 죄다 꽃놀이에 빠진 주말.
도반 셋이서 올레 7코스를 타고 서건도로 향했다.
뭍에서 섬까지의 비닷길이 넓게 그리고 오래 열리는 물때라서였다.
간조 시기라서 물이 가장 많이 빠진다는 사리 때란 얘길 들은 터라 우린 해변을 따라 걷기로 했다.
올레길을 몽땅 섭렵한 친구가 앞장서, 길 흔적 희미한 언덕길 바윗길을 오르내리며 걸었다.
걷다보면 범섬이 나타나고 어느 굽이 돌다보면 서건도가 나타났다.
기상상태 좋다면 바다뷰는 물론 서귀포 앞바다 섬들과 강정항 풍경까지 전망 멋지겠다
법환에서 서건도까지는 빤히 보이는 만치 실제 멀지 않은 거리다.
그럼에도 시간은 제법 걸렸다.
언덕 위 볼레낭마다 주렁주렁 달린 보리수 열매가 한창 익어가는 중이라서였다.
우리는 미세먼지로 대기 오염도 높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한주먹씩 열매를 따서 우물거렸다.
보리수는 엄청 탐스런 데다 발그레 농익어 손만 대도 제풀에 떨어졌다.
그래 그런지 숲 여기저기서 휘파람새며 온갖 새떼들 재재거렸다.
동네방네 친구 불러 잔치상 받아놓고 과육 쪼아가며 맛있어 죽겠다는 듯 희희낙락 재잘댔다.
달콤 새큰 떫떠름한 보리수 열매의 유혹에서 벗어나 바윗길로 접어들자 이번엔 방석자리만큼씩 줄기 무성한 번행초가 기다렸다.
제주에 와서 처음 통성명을 한 번행초는 염생식물로 바닷가에서 자생하는 시금치 비슷한 식물이다.
잎이 다육이처럼 두터운데, 말린 번행초를 차로 우려 마시기도 한다.
위 건강에 좋은 약초로 알려져 있어 데쳐서 나물로 무치거나 초장에 찍어 먹어도 담백한 맛 그럴싸하다.
다만 결석 위험이 있다니 주의를 요하는 식물이나, 세찬 해풍 맞으며 자란 터라 깨끗하다는 믿음은 준다.
초면이었던 우리 사이는 그새 아주 돈독해졌다.
자연스레 우리는 번행초 순을 따느라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다들 혼밥을 하니 욕심낼 까닭이 없어 적당량 채취한 뒤 일어섰다.
바람 고요한 듯 싶어도 해안가 갯무꽃 연보라 물결 살랑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봄바다다이 파도 잔잔한 해변길이라 해조음은 낮으막했다.
저만치 멀찍하던 서건도가 점점 커져갔다.
다시 숲길이 나오고 곶자왈처럼 덩굴 얼크러진 어둑신한 길, 혼자라면 무서워 전혀 내키지 않겠다.
비단풀 나붓대는 언덕 올라서자 드디어 낯익은 서건도 카라반 캠핑장이다.
서건도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 피크닉 테이블이 있기에 우리는 백팩을 내려놓고 간식을 먹으며 사진도 찍는 등 여유를 즐겼다.
목적지가 바로 저기 눈앞에 있으니까.
서귀포시 강정동에 위치한 서건도 일명 썩은섬은 하루에 두 번 열리는데, 조금때보다 사리 때 건너가기가 더 편안하다.
한 달에 10여 차례는 조수 간만의 차로 바닷길이 넓게 열려 안심하고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수중 섬이다.
이날이 바로 그 적기였다.
육지로부터 300미터 떨어진 서건도, 일명 썩은섬.
부서지기 쉬운 응회암 바윗돌은 푸석거리는 데다가 흙이 너무 척박해 식물이 잘 자라지 않아 썩은 것 같다는 의미 하나.
고래가 물 빠진 웅덩이에 갇혀 죽어서 썩었더라는 전설에 따른 썩은섬 서건도.
의미와 유래야 어떠하건 물때 맞춰 입도 가능한 섬이라는 특징으로 모세의 기적 운운하며 호기심 불러 모으는 작은 섬이다.
한 친구는 이 섬 방문은 처음, 마음이 급했다.
물기 하나도 없는 자갈길 따라서 섬에 이르렀다.
입구에 갯무꽃이 피어있었고 계단 올라서면 솔숲이다.
나무 데크길이 이리저리 숲에 나있으므로 어느 코스건 자유로이 선택해 걸으면 된다.
섬 크기는 약 4천 평 정도로 축구장 두 개에 해당한다.
소나무, 우묵사스레피나무와 이름 모를 상록수를 비롯 덩굴식물이 얼크러진 숲은 거칠다.
금세 섬 한 바퀴 돌 수 있으나 동남쪽으로 트여있는 바위 아래로 내려가면 해안 절벽에 악어 머리로도 보이고 코끼리 코로도 보이는 조각같은 바위가 기다린다.
인근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한다는데 글쎄?
서쪽 바위로는 길 없으므로 올라가 봐야 곧장 벼랑이라 어지럽다.
빙 한바퀴 섬 휘돌면 자동으로 입구 쪽, 미련 없이 섬을 벗어나 모세의 기적 끝나지 않은 자갈길 걸어 나온다.
금방 육지다.
서건도, 아무 때나 무시로 드나들 수 없다는 점도 매력이라면 매력인가.
그 시간대가 아니면 볼 수 없다는 긴장은 긴박감이 되고, 바다 가운데를 걸어서 건넌다는 특별한 경험이 서건도를 신비감, 희소성, 기다림으로 기억하게 하는지도.
한나절 도랑치고 가재도 잡아봤고 님도 보고 뽕도 땄으니 그만하면 셋 다 충분히 만족스런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