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두 곳이다.
본적지가 되는 매방리, 하나는 탯줄이 묻힌 외가인 대호지다.
정신적 귀의처이자 그 어느 보석보다 소중한 마음의 고향은 유년기를 지낸 외가 마을이다.
충청도 벽촌인 산골이자 서해를 낀 어촌이라 큰 제방둑 너머로 푸른 바다, 바다 건너는 서산군에 딸린 대산 높직했다.
지금은 대단지 화학공장이 들어선 대산이고 대호방조제 조성으로 인근 지도마저 바뀐 동네다.
어린 시절 기억이 소복 쌓여있는 대호지는 의령 남씨 집성촌이었다.
원뚝이라 불리던 의젓하고도 길게 뻗은 제방.
바다를 막아 염전 하얗게 펼쳐졌으며, 이어서 염기 빠진 간척지 드넓은 옥답 덕에 마을 형편은 꽤 괜찮았다.
더구나 제방 너머 앞바다는 뱅어포를 만드는 실치잡이 장소로 봄 한철 흥청일 정도였으니.
뱅어포 발을 말리던 원뚝은 일제 강점기 당시 만들어진 높직하고 튼실한 제방이라 어린아이 눈으로야 대단해 보였다.
아마 지금 보면 초라하니 볼품없겠지만.
막내 외삼촌이 조각배 띄워 붕어 낚던 방죽을 나이 들어 가보고는 품섶 하도 솔아 실소가 터지더라는.
이제는 웅덩이 흔적마저 메워졌다는 저수지다.
간척지에 물을 대던 커다란 방죽을 끼고 드문드문 초가와 기와집이 자리 잡은 마을은 늘 조용했다.
저 건넛집 개 짖는 소리나 들리고 움직이는 풍경이라야
조석으로 밥 짓는 굴뚝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동네.
그러나 봄이 되면 아연 생기와 활기를 띄던 들녘.
아이들은 쇠뜨기로 풀피리 만들어 불며 삘릴리~신이 나 내달렸고 어른들은 농사 준비로 바빠졌다.
새파란 보리밭고랑을 매는 아낙 머리에 쓴 수건이 유독 하얘 보였으며 논두둑 손질하는 노인네 허리는 굽어 기역자였다.
이랴~이럇~쟁기질하며 소 모는 아재가 등장할 즈음이면 폭신한 양탄자처럼 부드러이 깔린 자운영도 생애 최고의 클라이막스, 제철을 맞았다.
분홍보라 연연한 꽃 자욱이 곱게 수 놓인 논바닥, 하릴없이 보습에 갈아엎어지면서 풍기던 향그러운 풀향.
어찌 알았을까.
과학영농의 科學 자 조차 깜깜해도 선대들은 일찌감치 자운영이 질소질 다량 함유한 녹비작물이라는 것을.
벼를 갉아먹는 도열병과 벼포기 쓰러짐을 줄일 수 있는 벼농사의 금과옥조로 여긴 녹비식물 자운영이라는 것을.
생각사록 신기하고도 놀라운 일이다.
農者天下之大本이던 당시라 지혜롭기 그지없는 이 얼마나 유용한 발견이었으랴.
이는 오랜 세월 반복된 경험과 깊은 관찰 덕분이리.
화학비료가 없던 시절, 자운영은 벼농사를 풍요롭게 가꾸어 주는 천연 비료임을 경험으로 터득했던 것.
자운영을 갈아엎은 논은 풍부한 유기질 덕에 흙이 부드러워지고, 지력이 향상된다는 것을 웃대 어른들은 손과 발로 직접 느꼈을 터이다.
콩과 식물인 자운영은 뿌리혹박테리아를 통해 공기 중의 질소를 땅속으로 끌어들였고.
이로써 토양 유기물을 증가시켜 토질 환경을 개선해 준다는 이론적 원리까지는 몰랐어도, 경험으로 자운영이 벼농사를 돕는다는 걸 알아챘으리라.
이 원리는 현대의 친환경 유기농법에서도 인정받는 자원순환 농업의 핵심이다.
그 자운영이 산업화 시대가 열리며 금비라 불리는 화학비료가 일반화되면서 시나브로 사라져 버렸다.
자운영꽃은 충청도 농촌은 물론이고 전라도 평야지대에서도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오랫동안 자운영을 잊고 지냈다.
서귀포에 닻을 내린 이듬해 봄.
이른 봄 들꽃을 찍으러 하논에 들렀다가 우연히 자운영 잎을 보았다.
하루걸이로 하논 분화구를 드나들었다.
사랑에 빠진 젊은이가 연인집 주변 맴돌듯이.
드디어 자운영꽃 몇 송이와 해후했다.
그때의 벅찬 감동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반가움과 고마움에 눈물 핑 돌만큼 감격스러웠으니까.
이후 봄마다 자운영꽃을 만나기 위해 찾아오는 하논이다.
비소식이 뜬 아침이었다.
식전임에도 비 내리기 전에 서둘러 하논으로 향했다.
주로 서귀포 예술의 전당 맞은편 길로 진입해 수로를 따라 한논성당 옛터 방향으로 들어가곤 했다.
이번에는 양묘장과 미나리꽝이 있는 동쪽 수로를 택했다.
전과 달리 하논방문자센터 아랫녘 논배미 가득 자운영꽃이 융단처럼 깔렸더라는 현주씨 귀띔을 참작해서다.
이쪽 수로는 폭도 너르고 깊이도 제법 되는 데다 입구 쪽 주택들이 어딘가 모르게 음산해 드나들기 꺼렸던 터다.
이는 순전히 호러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이다.
아무튼 수로에서부터 탐스런 자운영 포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물망수라는 작은 규모의 저수지를 돌아 논으로 들어서니 보로미 주변 논바닥은 온데 절정기 맞은 자운영꽃밭이었다.
세상에나~이게 웬 떡 아니 웬 꽃잔치, 예가 곧 천상의 낙원이로구나~~~.
그 옛날처럼 논배미 가득 깔린 자운영 꽃에 취해서 아뜩하다 못해 숫제 몽롱할 지경이었다.
혼자 조르바처럼 신명에 들떠 춤이라도 추고 싶었으나 멎었던 봄비가 소리 없이 스며들기에 자운영 꽃밭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들녘 여기저기서 휘파람새 꿩 직박구리 노래불렀다.
물기 있는 논바닥인 데다 간밤 비로 젖은 풀숲이라 운동화는 진작에 질퍽거렸으며 바지 아랫단은 흙 투성이.
그럼에도 좋고 좋았다.
무어라 형언키 어려운 따스한 정서 그득 차올라 그 충만감으로 행복하고 또 행복했다.
고향의 봄을 영접한 바로 지금 여기, 그 자리에서 그 순간 행복했다면 오늘도 잘 산 거다.
감사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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