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벚꽃, 체리힐 생각 문득

by 무량화

고사리장마가 들었는지 이틀거리로 빗발 흩날리는 오후.


볼일이 있어 동문로터리 근처를 지나던 차였다.

나이테 별로 굵지 않은 벚나무에서 분홍색 스카프 자락 나부꼈다.


설마 도로변에 복숭아나무를 조경수로 심기야 했으려고...

꽃 색깔이 마치 복숭아꽃처럼 도화빛을 띠고 있어 의아한지라 꽃나무에게 다가갔다.

벚꽃은 긴 꽃자루 쪽에만 붉은 기가 스몄고 대체로 미미하게 분홍 느낌이 감도는 정도이다.

그렇다면 정체성 모호한 이 꽃은?

바짝 다가서서 올려다보니 홍매도 체리꽃도 아닌 리얼 벚꽃이 확실하다.

품종개량 기술이 워낙 발달해 색깔이야 더 짙거나 옅을 수도 있겠고.


오래전 학창 시절, 영랑사 봄 소풍 때마다 보았던 겹벚꽃이 꼭 이런 색이었다.

숱 많은 단발머리처럼 한 느낌을 주던 영랑사 겹벚꽃은 색이 짙었다.


그보다는 한결 맑고 고운 분홍색 벚꽃.



​가든 스테이트 뉴저지의 봄은 수양버들 겨잣빛으로 낭창거린다 싶으면 곧장 봄꽃들이 팝콘 터지듯 팍팍 피어났다.

벌써 이십 년 세월 저편으로 물러난 체리힐 우리 집 창 앞에는 체리나무 한 그루가 서있었다.

봄빛 무르녹는 사월, 드라이브웨이로 들어서며 바라보면 흐벅진 한 송이 꽃 같아 보이던 체리나무.

꽃잎 나부끼며 흩날릴 때는 그 아래 약간 경사진 잔디밭에 자리 깔고는 일부러 낙화 아래 앉아 꽃비를 맞기도 했다.

현관 바로 옆 짙푸른 호랑가시나무는 겨우내 하얀 꽃 향그러웠으며 지붕 물받이 홈통에서 떨어진 물로 겨우내 수정 고드름을 달고 지냈다.

도로변에 죽 늘어선 떡갈나무 해묵은 거목도 늦잠에서 깨어나 새잎 돋우기 시작했고 캐나다 단풍나무는 이즈음 바람개비 닮은 홀씨 뱅그르르 날려 보냈다.

그래도 한국처럼 길가에 개나리꽃 명자나무 꽃 피고 박태기꽃도 피던 사계 뚜렷한 체리힐.

흘러가버린 날들은 이렇듯 아릿한 그리움이 된다.


뉴저지 체리힐에 흐드러지던 체리꽃 생각 문득


우산으로 봄비 가렸으나 운동화는 이미 축축해졌다.


젖은 김에 더 후질러진들 어떠리. 발길은 가까운 정모시공원으로 향했다.


연못가 버드나무 얼마쯤이나 물올라 겨잣빛 출렁출렁 허공 빗질하고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겨자색 보다 더 눈길 사로잡은 진분홍 낯선 꽃무더기.


느닷없이 눈앞이 환해졌다.


처음 보는 그 꽃나무는 함빡 꽃잎 만개한 채 의외로 공원 여기저기 서있었다.


빗줄기 사이로 보이는 분홍빛은 맑은 영혼처럼 투명했다.


폰을 바짝 비에 젖은 꽃송이에 맞추자 긴 꽃자루가 드러났으며 그 꽃은 영락없는 벚꽃이었다.


비는 점점 세차게 내렸다.


바람까지 가세하자 꽃들은 몸부림치듯 가지 끝에서 하롱하롱 꽃잎을 날려 보냈다.


벤치에 점점이 내려앉은 꽃잎, 물가에 분홍 낙화가 무리 지어 맴돌았다.


아까 가로에서 본 벚나무와 비슷한 시기에 심은 듯 어린 나무임에도 꽃숭어리 숱하게 매달려 축 쳐진 채 빗물 뚝뚝 떨궜다.


마치 눈물처럼 하염없이.


가슴 저린 작별이라도 한 듯이.





































78ㅔㅑ9ㅕ06ㅠ

ㅇㅂ⁰ㅔ











PM 12:32

그래, 틀림없는 벚꽃이다



단풍 드는 순서가 그러하더니 꽃도 우듬지부터 피기 시작하는지 위쪽은 화들짝 만개한 벚꽃.

하늘 향해 촉수를 있는대로 뻗어올린 꽃송이들이 저마다 저요! 저요! 손을 흔들고 있는듯하다.

아니 그보다는 꽃잎 포개 맞잡고 고개 우러러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는 걸까.

같은 나무라도 아랫단은 새초롬 봉오리만 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