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리 녹산로 꽃샘추위
봄은 그렇게 온다. 완벽한 날씨로, 완벽한 풍경으로만 오지 않는다. 때로는 차가운 바람과 함께, 혹은 기대와는 영 어긋난 풍경되어, 더 깊은 기억을 남기고 오는 듯 가버린다.
벌써 고사리장마가 들었는지 하루 걸러 비소식이다. 오전까지 내리던 봄비가 정오 무렵 고맙게도 멎었다.
깜쪽같이 하늘은 푸르게 깨어났다. 봄마다 황사에 날씨까지 궂어 외출 주저되나, 간밤 줄기차게 내린 폭우로 엉또폭포 터졌다더니 큰비에 대기 정화돼 한라산 선명했다. 느지막하게 옆집 도반과 같이 가시리 유채꽃&벚꽃 축제장으로 향했다. 유채꽃에 비해 단 며칠 짧게 허락된 벚꽃의 화양연화다. 지금 한창 절정 이룬 이 시기를 허투루 날려 보낸다면 벚꽃에 대한 결례다. 또한 축제를 주관하는 주최팀의 일 년 노고를 봐서도 잔치판에 동참해 주는 게 좋은 일 하는 거다. 축제 프로그램은 풍성했다. 러닝 열풍을 접목한 유채런. 뮤지컬 하이라이트 공연, 청소년 K-팝 무대, 유채헌터스, 어린이 사생대회 등의 프로그램이 기다렸다. 빙떡·기름떡 만들기, 깡통기차 탑승, 말 도자기 그리기, 유채꽃 케이크 만들기, 유채향 조향 체험 등 가족 단위 방문객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야심차게 올해 처음 야간개장을 도입했다는데 모든 야외 행사가 그렇듯 무엇보다 날씨가 부조해줘야 하련만.
봄은 늘 한 박자 늦거나, 때로는 엇박으로 지그재그 들어온다. 가시리 녹산로에 닿기 전까지는, 마음속 꽃그림이 먼저 만개해 있었다. 노란 유채꽃 위로 연분홍 벚꽃 포개지며 만들어낼 화사한 장면이 뇌리에 그려졌다. 전국적으로 명성 드날린 10킬로에 달하는 녹산 벚꽃길이다. 그러나 막상 그 길 위에 섰을 때, 나를 맞이한 것은 봄의 환대가 아니라 거칠디 거친 광풍이었다. 몸 휘청거리도록 마구 밀쳐대며 몰아치는 바람은 꽃잎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움츠러들게 했다. 온화하리라 여겼던 공기는 피부 따가운 냉기로 잔 가시 되어 찔러댔다. 재킷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모자 위에 후드를 덮씌웠어도 봄꽃 축제장에서 떠나가는 겨울의 심술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다. 꽃샘추위가 여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꽃은 제 자리를 잘 지키고 있었다. 유채꽃은 바람에 눕듯 흔들리면서도 들길 환히 밝혔으며, 벚꽃은 그 위에서 정신없이 떨면서도 나붓나붓 미소 지었다. 두 꽃은 사방으로 강풍 받으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균형과 조화를 보여줘, 고요할 적보다 더 깊은 울림을 주었다. 아름다움이란 조건이 완벽할 때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경 속에서 더 또렷해진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서 보았다. 축제장은 그러나 자연의 의연한 태도와는 달랐다. 날씨는 사람의 기분을 지배하고, 기분은 분위기를 만든다. 바람이 거세질수록 사람들의 발걸음은 빨라졌고, 머무름은 짧아졌다. 부스 안의 상인들은 광장을 내다보는 시간이 길어졌으며, 웃음 대신 바람 소리만 공간을 채웠다. 같은 꽃, 같은 자리, 같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날씨 하나로 축제의 결은 완전히 달라지고 말았다. 즐거움이란 감각은 얼마나 외부 조건에 기대어 좌우되는지를, 이보다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예도 드물 것이다.
우리 역시 풍력단지 바람 휘몰아치는 유채밭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식당 부스 안으로 발을 들여놨다. 김 오르는 잔치국수 한 그릇이 추운 날 따스한 위로가 돼주었다. 국물의 온기가 목을 타고 내려가며, 강풍에 경직됐던 몸을 서서히 풀어주었다. 바깥의 꽃보다 양손으로 감싼 국수 그릇이 더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 인간은 결국 온기를 향해 기울어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문득, 오늘 이 바람이 단순히 돌발적이고 변덕스런 제주의 기상현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삼다도인 제주일까, 역시 바람곳 제주다웠다. 더구나 우리는 흔히 계절을 선험적으로 이해한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봄은 따스해야 하며, 꽃은 따뜻한 날씨 속에서 감상되어야 맞다고 여긴다. 그러나 자연은 그런 질서에 순순히 따르지만은 않는다. 꽃샘추위는 봄 안에 남아 있는 겨울의 앙탈이며, 강풍은 계절이 완전히 넘어가지 않았음을 알리는 경계의 징표다. 계절조차 순환의 과정을 거치며 흔들리는데, 하물며 우리의 삶이 어찌 아무 마디 없이 여여하게 이어질 수 있겠는가.
따지고 보면 우리의 계획 또한 매양 그러하다. 마음속에서는 이미 따뜻한 날씨와 흥청대는 축제를 그려왔지만, 현실은 자주 그 밑그림을 비껴가곤 한다. 준비된 기대와 실제와의 간극, 그 틈에서 우리는 우왕좌왕하고, 때로는 실망한다. 그러나 오늘의 바람은 말해주고 있다. 계획은 인간의 몫이지만, 완성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고. 우리가 설계한 길 위에 실제로 떼어놓는 발걸음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 조율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순간 떠올랐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이는 하느님이시다.” 이 구절은 단순한 위안이 아니라, 일종의 인정처럼 다가왔다. 계획할 수 있으되 통제할 수는 없고, 기대할 수 있으되 보장받을 수는 없다는 한계에 대한 무력감. 오늘의 광풍과 꽃샘추위는, 그 당연한 사실을 몸으로 납득시키게 하는 한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길, 마음속에 남은 것은 꽃잎 화려한 축제의 기억이 아니었다. 바람에 떨던 꽃들, 한산한 부스들, 그리고 국수 한 그릇의 온기만이 남겨졌다. 그 모든 장면 위에 얹힌 하나의 생각—삶은 늘 예상과 어긋나는 자리에서 제 모습을 드러낸다는 자각이다. 또한 봄은 완성된 계절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상태로 오는 듯 간다는 것. 따뜻함과 싸늘함, 기대와 어긋남이 한데 엮여 하나의 시간축을 만든다. 오늘의 가시리가 바로 그런 봄의 본질을 보여주고자 했음을, 몹시 거친 광풍 속에서 비로소 뒤늦게 이해됐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