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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03. 2024

제주의 돌과 함께 노는 즉흥 춤

가장 순수한 춤과 제주의 자연이 만나다,를 주제로 한 즉흥 춤 공연을 보러 갔다.

돌문화공원은 위치가 까다로워 탐방길 쉽게 작정하기 어려운 장소다.

벼르지 않았는데 우연히 기회가 닿았다.

홍선생이 즉흥춤 축제가 열린다는 연락을 해와서 얼씨구나 옳거니~따라나섰다.

네덜란드와 대한민국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으로 국립 현대무용단과 계명대 양승희 교수 및 네덜란드 아티스트 외 여러 팀들이 즉흥 춤을 보여줬다.

여기에 해와 달처럼 서로 조응하며 반드시 짝을 이루는 요소가 음악이다.

바이올린·북·징·풍경이 참여하고 인도의 라가 음악이며 아프리카 풍의 모로코 음악이 춤과 서로 어우러졌다.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 건 제주를 구성하고 있는 자연 그 자체였다.

잎잎 눈부신 신록과 달리 회색 구름장이며 어지러운 바람까지 을씨년스러워 더 안성맞춤.

간간 비 듣는 우중충한 하늘이 분위기를 더 고조시켰다.


물장오리오름의 분화구를 상징하는 연못에서다.

제주 설화에 따르면 설문대할망과 오백나한 신화가 시작되는 연못이다.


한라산 영실에서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창조 여신 '설문대할망과 오백 나한' 설화는

척박한 제주의 삶이 얼마나 지난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설문대할망이 스스로 빠져 들어간 가마솥의 죽을 배불리 먹은 아들들은 뒤늦게 알게 된다.


막내가 죽 솥에서 커다란 뼈다귀를 발견한 뒤였다.


자신들을 살리기 위해 희생한 어머니를 생각하며 통곡하다가 499개의 바위로 화해버린 아들들.


500번째 아들은 어머니를 먹은 형들과 살 수 없다 하여 차귀도로 날아가서 외딴 바위가 됐다고.


이 설화를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인 남정호 교수가 즉흥 독무로 보여줬다.


적막하면서도 고요한 몸짓으로.


즉흥 춤은 창작 주체자의 무의식으로부터 이미지를 끌어내는 작업으로, 규격화된 공연 형식에서 벗어난 춤이다.

어느 무대는 요가나 쿵후 같기도 하다.


어느 땐 인디언 춤처럼 사뭇 겅충대기도 하는가 하면 참선 삼매에 든 수행승의 초월경과도 같다


그보다는 동굴에서 화톳불 아래 돌고 도는 원시의 춤판 같기도.

아니 아니 깃털보다 가벼이 작두를 타는 접신한 무녀 같았다.

 그런가 하면 너무도 적요로워 이 세상 것이기라기보다 명부의 풍경과도 닮은 정적인 이미지도.

현대무용이되 난삽하거나 난해한 몸짓이 아닌 인간 본연의 자연스러운 몸짓들이야말로 절로 미소 짓게 할 정도로 유쾌한 자유분방함 자체였다.

아, 본디의 야성으로 돌아간 저 아름다운 자유로움이라니.  

마그마처럼 뜨겁게 들끓는 관객과 함께 하는 즉흥 춤판의 자유로움은 숫제 초월적 경계 밖의 자유로움이었고.

어머니와 돌 이미지를 형상화한 제주돌박물관 진입로는 현실 세계와 신화 세계를 잇는 통로였다.


제주도는 돌들의 고향이자 신들이 거하는 신전인 셈이다.


제주돌문화공원은 한라산 영실에서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설문대할망과 오백 나한' 설화를 구심점 삼아 돌문화 전반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박물관이면서 생태공원이다.


이곳에는 제주 돌문화가 영험스럽게 살아 숨 쉬는가 하면 그와 동시에 제주의 정체성, 향토성, 예술성이 한데 어우러져 신비로이 빛을 발한다.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쌓아 올린 방사탑과 

오백 나한을 상징하는 거석들이 울멍줄멍 서있는 돌문화공원.


하늘연못에서 볼레로와 노니는 객들의 즉석 춤과 굿거리장단과 볼레로가 만나서 서신 굿을 펼치는 하늘호수.



입구에, 제주의 서예가 소암 현중화 선생의 글씨가 마중한다.

수급불류월(水急不流月), '물은 급히 흘러가지만 물속의 달은 흘러가지 않는다.'

생은 유수처럼 빠르게 흘러가지만 참된 것은 흐르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세태가 아무리 빠르게 변한다 해도 초심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원뜻을, 저마다 자유로운 영혼 되어 벌인 즉석 춤판의 주체들은 어찌 해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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