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세리성당에서 비롯된 신약

서해 바닷물이 들고나던 아산만 한 모퉁이 시골인 공세리(貢稅里).

삼국유사를 훑어보면 주몽의 아들 미류가 고구려에서 남하해 정착했던 미추홀이 이곳이라 하더이다.

훗날 나당 연합군과의 전투로 백제가 멸망하게 된 전쟁터인가 하면 청일전쟁이 처음 불붙었던 시발지이기도 한 곳이라오.

삽교천 못 미쳐 아산시 인주면에 위치한 공세리.

예전엔 서해 바닷가 어촌으로, 가까이 중국 뱃길이 통하는 주요 교역지였다 하외다.

20세기 들어 서해안 시대의 개막을 알리며 평택항이 번창하게 된 이유도 여기 있었던 거라오.

고향땅 당진이란 지명도 당나라로 가는 나루터에서 비롯되었다시피 그만큼 중국과 최단거리에 위치한 지역이기도 하다오.

조선 성종 9년인 1478년에 이 지역에 세곡 해운창이 처음 설치되었다 하오.

특히 공세리는 아산만의 물길을 이용, 서해안 부락에서 거둬지는 조세미를 배로 이동시켜 한성부와 머지않은 내포에
저장시켜 두던 공세곶 창고지였다 하더이다.

중종 18년인 1523년에 여든 칸의 창고가 증축되어 영조 38년인 1762년 폐장될 때까지 삼백여 년간 운영되 오던 바로 그
자리에 성당을 지었다고 합디다.

해서 성곽과도 같이 마을 중앙에 우뚝 솟은 언덕 밑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창고를 지을 당시 바다와 경계 이루고자 든든히 쌓아둔
석축을 볼 수가 있다오.

지리적 여건상 공세리는 중국에서 들어오는 초기 선교사들이 포구로 상륙하여 전교를 시작한 유서 깊은 터라오.

그런데다 천주교 박해를 피해 서울에서 숨어든 신자들이 다수 유입되어 교우촌을 형성한 곳이라오.

공세리 성당은 1890년 충청도에 창설된 최초의 본당으로, 준공된 지 90년 훨씬 넘은 서양식 뾰족탑인 고딕 양식의 단아한
고 건축물 이외다.

이 성당은 성일윤(成一論)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프랑스인 에밀 드비즈 신부가 세웠다 하더이다.

의학에도 관심이 깊은 이 신부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비방의 고약을 만들어 종기로 고생하는 가난한 이들을 무료 치료해 주었다 하오.

드비즈 신부는 라틴어로 된 약용식물학 서책과 한의학 지식을 응용하여 고약 만드는 비법을 창안해 냈소이다.

당시 그는 자신을 돕던 신자 이명래 요한(1890~1952)에게 고약 비법을 전수시켰다 하외다.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근세까지 검고 찐득거리는 촌스러운 그 약이 종기에는 특효약이었소이다.

일제 치하 고관들에게도 그 효능을 인정받아 한방 면허를 내주겠다 해도 거부했다는 요한.

해방 직후에야 비로소 면허를 취득한 자존심 꼿꼿한 조선인이었던 이명래 요한이라고도 합디다.

본인 이름을 상표명으로 내건 이명래 고약은 그렇게 한국형 신약 1호가 되었다오.

뒷날 이명래라는 이름 석자 방방곡곡에 알려지게 되며 요한의 가계는 눈덩이처럼 크게 번성한다오.

이 고약 제조 비법이 전해진 공세리성당은 충남 지정문화재 144호이며 한국의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로 건축미가 뛰어나 성당 기행문에도 자주 등장하는 곳이라오.

350년 넘는 국가 보호수가 다섯 그루나 있으며 오래된 마을다이 노거수가 성당 경내에 많아 고풍스러운 운치를 더해준다오.

더욱이 이 지역은 서른 세분의 순교자를 낸 순교성지라오.

신유박해 때 최초의 순교자가 나온 이래 병인박해 시 박 씨 삼 형제인 의서, 원서. 익서를 비롯해 박마리아 부부가 옥사 또는 참수형을 당하게 된다오.

순교자 박원서 마르코는 "내 평생 천주 공경을 실답게 하지 못하였더니 오늘 천주께서 나를 부르셨노라."며 주저치 않고
기꺼이 죽음을 택했다 하더이다.

일요일 아침 미사 시간에 맞춰 도착하니 자그마한 성당 안은 성지순례 온 단체팀들로 이미 자리 가득 메우고 있습디다.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미사를 마치고 이어서 사제관과 박물관 및 순교자현양탑을 둘러본 다음 14처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며 걸음 느리게 옮겨놓았다오.

공세리성당은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인데 오래전부터 다녔던 곳처럼 푸근하니 낯설지 않고 고향이듯 아늑한 느낌을 주더이다.

성당 뒤로하고 안개비 내리는 언덕길을 내려오다 문득 돌아서서 "저 불원간 다시 올게요.' 약조를 하였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