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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22. 2024

친구 덕에 가본 카네기 홀

화창한 오월,  봄나들이 가듯 체리힐을 출발했다.

여덟 명의 여자들과 가진 모처럼의 뉴욕행.

간식을 먹으며 잡다한 수다를 떨면서 연둣빛 연연히 물오르는 숲을 지나 링컨 터널을 통과하자마자 곧바로 맨해튼.

붐비는 거리, 삶의 열기와 활기가 넘친다.

카네기 홀에 도착하니 일곱 시가 채 안 됐다,


공연 시작여덟 시부터다.

주차장에 차를 넣은(주차비가 시간당 12불이라 뉴저지 촌사람들 또 놀래고) 다음 찻집부터 찾았다.

인근 카페에서 차 한 잔씩 마시고는 카네기홀 정문을 못 찾아 또 한참 헤맸다.

촌스럽게 이리저리 출입구 찾아 들락거리다가 겨우 들어선 연주회장은 3층.

체리힐 여인들의 화려한 외출 명목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수석 비올리스트인 장중진 카네기홀 데뷔 무대 참석차였다.

서울대 성악과 출신인 엄마가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을 가르쳤으나 도중에 비올라로 전환, 12세 때 서울시향과 협연하며 국내 데뷔의 빛나는 무대를 가진 바 있다.

이듬해 가족 모두가 두 아들 교육을 위해 도미, 그는 줄리아드 음악원에 입학했다.

다시 커티스 음대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전공하고 필라 필하모닉에 들어갔다.

세계적 명문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는 장중진 외에도 줄리엣 강을 비롯 한국인 서넛이 포진하고 있다.

이렇듯 친구의 꿈대로 두 아들 다 교육면에서 큰 성취를 이루어, 한 명은 음악가가 되었고 큰 아들은 와튼스쿨 출신이다.

그러나 운명은 꽃길만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후 친구네 가족은 얼마나 숱한 우여곡절을 거쳐야 했던지......




뉴욕 Carnegie Hall.

카네기 홀은 부연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곳이다.

비올리스트 장중진의 연주회가 드디어 리사이틀 홀에서 열렸다.

주관은 코리안 뮤직 파운데이션.

중세풍의 고전적인 실내, 하얀 돔 형식 천장에 샹들리에가 휘황하다.

시간이 되자 무대 조명 외의 불이 꺼지며
피아노 홀로 빛을 발하는 무대 쪽으로 집중되는 시선.


옆문을 통해 비올리스트와 피아니스트가 등장한다.

장중진과 김대진 씨.


무대 중앙에는 검정 그랜드 피아노 한대 덩그러니.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인 김대진 씨가 피아노를 맡았다.

검은 턱시도 차림에 작은 비올라를 안고 피아니스트 김대진 씨와 함께 입장한 장중진.

객석에서는 브라보를 외치며 기립박수로 환호하는 청중들.

전면이 하얀 무대, 그곳에 선명한 검은색의 대비.

그 이상 찬연할 수 없는 비경의 황홀미, 완벽한 조화다.

슈만의 첫 곡이 흐르고.... 솔로 비올라를 위한 소나타가 이어진다.

막간에 손가락의 긴장을 푸는 연주자.





연주자를 바라보는 친구는 더욱 긴장한 채  자세가 경직된다.

재작년, 손가락에 부분적 마비가 생겨 그로 인해  발생한 손떨림 현상으로 치료를 받는다며 친구가 아들 걱정을 하던 말도 들었던 터.

그때 뇌심부 자극술을 받는 등 심적 타격 크게 겪으며 침체기를 갖기도 한 아들이다.

마침 그의 엄마가 바로 내 옆자리에 앉았기에 초조한 긴장감이 자연스레 읽혔다.

그녀는 좌석에 편안히 깊숙하게 앉지를 못하고 상체를 앞으로 숙인 채 연신 손을 주무른다.

심장이 너무 뛴다며 가슴에 손을 얹기도 한다.

오로지 두 아들 위한 헌신적인 뒷바라지에 홀로 노심초사, 그예 음성마저 상한 그녀다,

성악가가 목소리를 잃는다는 건 삶의 의미를 빼앗아가는 것.

그럼에도 어려운 여건의 이민생활, 세탁소를 하면서 최전선에 서 현실과  맞싸워온 맹렬 투사인 그녀였다.

이날도 아들 좋아하는 김밥을 준비해 온 모정, 1자식일이라면 무한정 속깊은 마음씀씀이 도탑고 훈훈하기만 했다.

같은 엄마의 입장이라서일까.

막상 연주자보다 이런 친구를 바라보자니 절로 화살기도가 바쳐진다.

침착하게.... 그간 닦은 최대치로 발휘하기를....





연주회를 지켜보는 내내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인연의 끈으로 칭칭 동여매어진, 아니 가까운 친족인 듯 그냥 절로 감회 아릿해지면서도 뿌듯!

연주회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무대 조명은 꺼졌다.


한 시간여의 연주회를 마치고 로비에서 명성 화려한 김대진 씨 정경화 씨 등을 만났다.

줄리아드 같은 동문인 장중진씨와 인사를 나누며 정경화 씨는 말한다.

한국인으로 너무나 프라우드 하다고...

순간 그 자리의 친구는 또 얼마나 자랑스러웠겠는가.

덩달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로비에서 땀을 닦으며 연주자가 한마디 한다.

특히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려운 몇 분들이 참석한 까닭.

줄리아드 교수들과 줄리아드 동문인 선배 피아니스트 김대진 씨와 역시 동문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씨가 객석에 있었던 때문이라고.

조용한 웅성거림 감도는 로비에서 지켜본 정경화 씨.

무대에서는 그리도 강한 카리스마로 객석을 휘어잡던 당당하기만 한 그녀가 아닌가.


세계적 명성을 누리는 딴 세상 사람 같은 그녀였는데, 자그마한 덩치의 아주아주 수수한 중년 여인으로 다가선다.

거리에서 만난다면 평범 속에 묻히고 말 그저 그런 소탈함.

평소 거인 같던 그녀는 나만큼 여린 몸매에 작은 키를 가진 48년생.

까만 정장 차림의 그녀는 나보다 겨우 몇 달 차이질 뿐이었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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