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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23. 2024

함안의 재발견, 서산서원

함안, 하면 함안 조 씨 밖에 따로이 아는 게 없었을뿐더러 가본 적도 없는 지역이다.

부산에서 과히 먼 거리도 아닌데 어찌 그리 태무심한채 여태 격조하게 지냈던지.

일전 주말에 오후 짬을 잠시 이용해서 두서너 시쯤 아들네와 함안으로 향했다.

함안 뚝방 축제인 '꽃길을 걸어보자' 란 테마대로 목적 단순했던 발걸음이다.

꽃보다 더 마음 사로잡은 것은, 모내기 마친 고즈넉한 농촌 풍경과 목리 유현한 고택들이었다.

안동으로 영주로 먼 거리 마다하지 않고 서원을 찾아다녔으면서도 등잔 밑이 어둡다 했던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함안에 서원이 있다는 것조차 금시초문.

그 정도로 함안과는 유다른 인연 고리도 없었을뿐더러 도시 아는 게 전무한 완전 문외한이었다.

지방자치제가 되며 저마다 지역 광고하기 바쁜 이때, 왜 그 훌륭한 관광자원 소식을 여태껏 못 들었을까.

청동기 시대부터 고대인이 살았던 자취 남겨진 아라가야의 옛 터이니 당연 숱한 보물을 품은 고장이 함안이다.



고분군과 마애불도 있다는 역사 깊은 함안에 대한 재발견, 취향을 저격한 사적지들이 산재해 있어 자못 흥분될 지경.

더군다나 단종의 비사를 떠올리게 하는 곳이 함안 땅에 있을 줄이야.  

왕위를 찬탈한 세조가 왕위를 이은 뒤부터 평생 관직을 마다하고 숨어 지낸 생육신들을 모신 서산서원이 있는 곳이다.

생육신이 어떤 분들인가.

누구나 갖는 욕망, 부귀공명의 보장된 신분 내려놓고 표표히 한양을 뒤로한 뒤 평생을 두문불출하며 독서로 지낸 생육신.

불의한 현실과 결코 타협하지 않는 그분들의 대쪽 같은 절개는 충절과 의리의 표상으로 역사에 길이 새겨져 있다.

절의파라 불리는 생육신은 신동 소리 듣던 수재가 머리 깎고 산으로 들어간 김시습 남효온까진 외우나 그다음부터는 어물어물....

이맹전 성담수를 비롯 조려 원호 이렇게 여섯 분이 끝내 출세간 한 채 초야에 묻혀 지낸 생육신이다.

호는 어계(漁溪), 시호는 정절(貞節)이며, 본관이 함안(咸安)인 조려는 성균관 진사시에 합격한 명문가 집안의 인재였다.

그런 그가 출세간의 기회 덮어버리고 서른 초반에 고향으로 돌아와 오로지 선비의 가치를  오롯하고도 올곧게 지켜나갔다.

생육신의 고결한 뜻 기려 위패 봉안하고 제향하던 사당에 숙종이 서산서원의 현판과 함께 제물을 내린 사액서원인 서산서원이다.

조선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훗날 지역 유생들과 후손들이 복원해 오늘에 이르렀다.



입구에 홍살문이 마음결 경건히 가다듬게 하더니 석교 아래 연못 무성한 연잎이 청정심을 절로 불러일으킨다.  

옷깃 삼가 여미고 숭의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너른 뜰 오른쪽에 양정당과 왼쪽에 숭의당이 먼저 시선에 든다.

중앙 높직이 유생들이 학문에 정진하던 규모 가장 큰 강학 공간인 숭의당, 서산서원 현판이 마주 보인다.

생육신의 '충절과 의'를 기린 서산서원답게 이름 역시 서원의 중심인 강의실 이름은 숭의당, 서쪽 유생의 숙소는 상의재라 불리며 정절공 행적비 거북 등에 우뚝하다.

각 건물의 기둥마다 힘차고도 유려한 필체의 주련, 서원의 정신을 또박또박 아로새기게 해 준다.

숭의당 건물을 휘돌아가면 뒤편에 태극 문양 선연한 내삼문인 경앙문이 나서는데 사당이라 그 안의 충의사는 지붕만 보일 따름.

매년 음력 9월 9일 생육신의 후예들과 유생들이 모여 국천제를 올린다고.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90호로 지정되었다.

서산서원 바로 옆에는 정묘호란과 임란에 맞서 의병 일으킨 함안 조 씨 문중 13인의 충의를 기린 비와 독립유공자비가 서있다.

희미하게 노을이 지는 산자락, 어계 그분이 은거하던 서산은 마을사람들이 백이숙제의 고사에 빗대어 백이산이라고도 했다.

비구름 가득찬 흐린 날씨라 저녁이 성큼 다가와 찬찬히 둘러볼 순 없었지만 다음 연꽃 필 때를 기약하고 아쉬운 마음 접었다.

하긴 귀가 때까지 비 출출 내리지 않은 것만도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주소: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 5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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