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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24. 2024

성모성월에

거두어 주소서



어머니,

희로애락의 격랑이

험하게 파도치는 바다를

오늘도 항해하였습니다.



끝 모르게 아득한 망망대해

그 위를

보잘것없는 조그만 잎새 되어 떠다녔습니다.



거친 물굽이 헤치기란

여간 힘겨운 노릇이 아니었으나

노 젓는 손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까닭도 모른 채로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존재이니까요.



마침내는 기진해서 주저앉을 것 같은 순간

어깨 부축해 주며

부드러이 품어 안는 당신 가슴에

무너지듯 전신을 맡기며

그리고 보았습니다.

연민 가득한 눈길로 애틋이 굽어보시는 당신의 시선을.



가엷어 가엷어 애타하시는

그이는 어머니, 당신이었습니다.



당신은

저희 행복 진정으로 기뻐하시고

저희 슬픔 통절히 아파하시며

저보다 제 마음 잘 헤아려 아시는 분

저보다 더 저를 지극히 아껴 사랑하시는 분.



더러

아이가 엄마에게 떼쓰듯 부리는

객기 어린 투정과 엄살마저

자애로이 보듬어 다독여 주시려고

아, 거기 항시 계셨던 어머니

공기를 느끼지 못하듯

바로 곁에서 늘 함께해 주신 어머니, 당신을

그럼에도 오랫동안 지우고 살았습니다.



온누리에 장미 향 충만한

아름다운 계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귀 열리고 눈 뜨이며 遭遇하게 된 어머니.



‘나 기꺼이

지친 그대 쉬게 하는

구원의 쉼터가 되리니

그대가 짊어진

고통의 멍에며 환난의 질곡

모진 시련의 괴로움

모두 다

내게 벗어 주렴’



그분의 음성이 따스한 위로되어

다시금

기운 추스르게 해 주었습니다.



어머니께

아직은 풋기 가시지 않은 초발심의 미욱한 저

감히 청하오니

용광로로 끓는 애증이며

인간사 욕망일랑 세간에 부려두고

말갛게 빈 마음으로

온전한 평화 속에 살기를 소망합니다

끝없이 용서하고 화해하면서요.



어머니,

손 이끌어 거두어 주소서

교만과 아집으로 누더기 진 영혼

고이 깁고 다듬어

이제는 낮은 자리

어머니 가까이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2003. 5월-


그분의 자리

 

한참을 찾아 헤맸네

그분 사신 나자렛에서 에페소까지

역사의 책장 넘겨가며

흔적 찾고자 했네

그분 발현하신 파티마에서 루르드까지

신비의 기적 가운데서

자취 찾고자 했네

막연한 표상이 아닌

숨결로 맥박으로 느끼고 싶었네

생명의 뜨거움으로 확인하고 싶었네

골몰히 찾아봐도

도무지 알 길 없었네

멀고도 아득할 뿐이었네

나 어느 날 이윽고 알았네

지고의 모성, 그 거룩한 어머니 자리에

항상 계시는 성모님이심을

내 어머니

주고 또 주어

드디어 말갛게 비운 채로

가벼이 始源으로 향하신 날

그렇게 어머니 안에

성모님 현존하셨음을 비로소 알았네

痛苦의 피에타 상

십자가에서 내려진 아드님 품에 안고

눈물로 기도하신 어머니

바로 그 자리가 어머니 자리였네

향기로운 장미꽃 송이송이

그러나 꽃자리가 아니었네

정성되이 밝힌 촛불 촛불

그러나 빛의 자리가 아니었네

존경과 찬미 넘치는

기쁨의 자리 영광의 자리가 아니라

어머니 자리는

차마 견디기 어려운 아픔

오롯이 참아내는 자리

하늘 뜻 순종하며

끝없는 희생으로

기꺼이 작아지는 자리

어머니 자리는 아주 낮은 자리였네

말씀 완성하시려

주님 떠나기 전

골고다 언덕에서였네

눈물 젖은 성모님 바라보며

이는 네 어머니다,

제자 향해 이르신 그대로가

본디 지음 받은 모상

바로 어머니 모습인 것을

그리하여 어머니는 눈물인 것을

인간사 모든 고통 다 감싸 안은 채

오래 참고 오래 기다리며

모든 것 믿고 모든 것 견디시는 어머니

나 때로는 가시 되어 상처 줄지라도

가슴 깊이 품어주는 사랑

어머니의 가없는 절대 사랑만이

창조계획 잇게 함이니

성모님은 바로 지금

이 세상 聖化시키고자

우리 곁에, 우리 안에

자비의 어머니로 자리하고 계시네

연민의 어머니로 기도하고 계시네.

-2005. 5-



어머니 앞치마에



유년의 강가

새벽 단잠 머리맡에

설핏 들리던 소리

그리고 스치던 내음

내 어머니

가는 허리 동여맨

광목 앞치마에서는

서걱서걱 갈잎 소리 났지요

온종일 동동걸음

물기 마를 새 없던 앞치마

왜 그때는

당연한 줄 알았던지요

오늘 홀연히

쉰 듯 땀내 배인 앞치마

밀가루 풀 먹인 그 내음 그리워집니다

언제라도 달려가 싸 안길 수 있는

내 구원처 위로처

어머니 그 품

앞치마에 얼굴 묻으면

스르르 눈 감기던 평온

아직도 여전히

저는 당신의 미거한 들풀

어두운 땅에 떨군 씨앗

껍질 터지는 아픔 속에 싹 틔운

그렇지요 저는

당신이 생명 주고 사랑 준

작은 들풀이지요

연하디 연한 순

풀벌레에 쪼여 행여 상할까

휘청이는 여린 줄기

모진 비바람에 상처 입을까

노심초사 애태우며

가슴 졸이는 어머니 마음

이는 네 어머니다

예수님 말씀하신 대로

성모님 당신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 되어

거듭거듭 부활하시는 분

저마다의 어머니로 다시 오시어

넘치도록 무량이 건네주는

맹목의 자애지정

어머니 이름은

희생입니다

헌신입니다

그래서 고통입니다

주님 뜻 기꺼이 순명하신 그대로

죽고 다시 죽어

세세생생 사시는 내 어머니

곡절 깊은 속내 안으로 다스리며

부러지고 꺾이고

마침내 썩어 삭아지도록

온전히 비움으로

채워질 수 있는 평화

그 구원의 완성

전 생애로 가르쳐주신 어머니



끝 모를 자식 바라지에

흰 수건 앞치마 차림

여느 어머니 그러하듯

우리의 전구 하많은 바람들

귀 기울여 보듬어 주시는

성모님 당신은

아득히 먼 관념 속 천상의 모후로

높다라니 계신 분이 아니지요

인간사 한가운데

七情의 파도 타고 부침하는 굽이굽이

지척에서 동행해 주시는 어머니

그렇게 저와 함께 계시며

고통 중에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는 어머니

십자가의 길

내내 눈물로 따르며

차마 못 견딜 통고마저

기도로 품어 안은 어머니처럼

죽어야 사는 이치

깊이 묵상하는 오월

그리하여

심저 복판에 녹슨 채로 박힌 못

용서의 은총으로 거두어서

어머니 앞치마에

장미꽃 한송이로 올리고 싶습니다.

-2006.5-


어머니, 그 이름은


미혹의 바람에 흔들리던 그때

저를 향한 어머니 눈길

내내 잊히지 않아요

자못 애련해서

못내 안타까워서

말문조차 트이지 않던 어머니

차마 부여잡아 말리지도 못하고

어여 가라 떠밀지도 못한 채

눈물보다 더 애틋한 시선

이윽고 거두시던 어머니

그래요, 저는 어머니의 평생 애물이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이었지요

홍역으로 땀 젖은 이마 짚어주시고

아픈 횟배 잠들도록 쓸어주시던 손길

한번쯤은 단 한번쯤은

내 볼에 비벼보고 돌아설 수 있었으련만

수도 없이 덮어주고 감싸주며

거듭거듭 용서하신 어머니 앞에

다시금 저지른 허물

깊이 속죄드린다는 그 한마디

끝끝내 전하지 못했네요

무에 그리 황망하여 서둘기만 했던지요

어이 그리 매몰차게 모질기만 했던지요

미안해요, 어머니

힘들어도 내색 없이 안으로 삭히고

괴로워도 지그시 참아 신음마저 삼키던

언제나처럼 그저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지요.



힘겨운 십자가 심곡 깊숙이 품고 사신 어머니

어머니 그 이름은 가없는 희생이었습니다

아낌없는 헌신이었습니다

오롯이 내어주고 하얗게 비워내

드디어는 자식 위해 마지막 한 조각까지

생 전부를 봉헌하신 어머니

사랑의 본질은 희생임을

사랑의 원형은 헌신임을

行으로 몸소 보여주신 어머니

완덕은

자기를 소멸시킨 뒤 마침내 다다르는 곳이었습니다

무릇 산다는 건 고통과 동행하는 일

그리하여 참고 견디는 사바세상이라지요

어머니 자애의 품 뒤로 한 이후

五欲七情 풍랑 거센 뱃길 떠돌며

갈등과 반목으로 피폐해진 채 퍽도 지친 여정이었습니다

방향 잃고 헤맨 적도 숱했으며

좌초의 위기 겪기도 여러 차례

사는 일이 곤고할수록

명주 피륙처럼 따스하니 진솔한 위로와

저물녘 종소리 같은 평화의 안식이 절실해졌지요

그 순간

불현듯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어머니 그 이름은

상본 속에 그려진 옛 모습이 아니었지요

성서 안에 기록된 먼 이름도 아니었지요

관념 그 너머 추상의 존재가 아닌

바로 내 어머니

저마다의 어머니로 顯顯하신 성모님

성모님은 내 어머니로 가까이에 나투셨더랬지요.



서러울 때 부르는 이름

환난 중에 찾는 이름 어머니

걸핏하면 하소연하고 떼쓰며 보채기만 한 저

어머니께 날마다 떠안긴 짐 보따리

얼마나 버거우셨을까요

주어도 주어도 만족 모르는 욕망

채워지지 않아 허기진 채로

매양 어머니께

청하고 원하고 바라고 구하고…

끝 모를 갈구가 부끄러운 이 밤입니다

하루만이라도 어머니께 저

염치없는 손 자꾸 내미는 대신

두 팔 벌려

안아주고 받아들이는 온유한 사랑

어머니 그 마음을 닮아보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걸어 잠근 빗장 풀고

굳어진 얼음장 녹여

이 자리 모두와 하나 되는

온전한 일치

어머니께 오늘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2007.5-

어머니의 자리




예수님 십자가에서 어머니 바라보며 “이는 당신 아들입니다”

또 제자를 바라보며 “이는 네 어머니다” 하셨지요

처음에는 ‘내’ 어머니라고 들렸어요

성모님이 당신의 어머니 이심을 천명하신 걸로 이해했더랬는데

다시 듣고 보니 '내'가 아니라 ‘네’였어요

아하, 떠나시기 전에 홀로 남으신 어머니를 제자들에게 부촉하시는구나 싶었는데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자리, 역할, 모습에 대한 상징으로 하신 말씀임을요

오래전 유럽여행 중에 베드로 성당에서 만났던 피에타 상이 생각났습니다

당시 미켈란젤로의 그 조각 작품 앞에서 혼잣말을 했더랬지요

전능하시다는 분이 차마 견디기 어려운 이런 일을 어찌 일어나게 하셨나?

저리 처절한 일을 겪은 성모님 속은 아마도 까맣게 타버렸겠다 싶은 게

생각만으로도 눈가가 뜨거워지더군요

피에타 상 앞에 봉헌된 꽃과 촛불이 그래서 물기에 젖어 어룽댔지요

그때는 가톨릭에 입문하기 전이니 성서에는 문외한일 적이었구요

이제 겨우 조금씩 깨우쳐가는 입장이라 성모님에 대한 표현이 제대로일 수 없으나

그저 성모님은 사랑의 어머니, 바로 그분이신 것 같아요

저를 위한 은총의 선물 예비해 두고 조용히 그분 기다려주는 오월

신록 눈부신 오월, 어머니날이 이 달에 들어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테지요.

20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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